전(傳) 진감여(陳鑑如), 1319년, 비단에 채색, 117.3cm×93.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傳) 진감여(陳鑑如), 1319년, 비단에 채색, 117.3cm×93.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인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이다.

초상화 화폭 상단에 적힌 제발(題跋)에는 이 초상화가 어떤 연유로 그려졌고, 작가가 누구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 내용을 보면 이제현이 33세 때이던 1319년, 고려 26대 왕인 충선왕을 시종하여 중국을 유람하던 중 왕의 하교로 원나라 화가 진감여(陳鑑如)가 이 초상을 그리고, 석학인 탕병룡(湯炳龍)이 찬문을 썼음을 알 수 있다.

탕병룡의 찬문에 이어 이제현 자신도 시를 남겼는데, 고려로 돌아올 때 가져오지 못했던 자신의 초상화를 31년 뒤에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소감을 적어놓았다.

초상화 속 이제현은 왼쪽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데, 검은색의 두건을 쓰고, 곧은 깃인 직령(直領)의 심의를 입고, 두 손을 소매 속에 넣어 공수 자세를 하고 있다.

소매가 넓은 백색 심의(深衣)의 깃과 소매, 밑단에는 푸른색의 다른 옷감을 댔고, 소매 아래로 보이는 매듭은 허리에 두른 띠를 나비 모양으로 묶은 것이다.

또한 심의의 아래쪽에는 세로로 4줄의 푸른색 띠를 댔는데, 이 띠에 사용한 천은 깃에 댄 것과 같은 천으로 보인다.

이 초상화는 이제현이 중국에 체류하던 때 그린 초상이므로, 그가 입고 있는 옷도 고려의 복식이라기보다 중국의 문인들이 집안에서 입던 평상복에 가까워 보인다.

원나라 화가인 진감여는 이제현의 얼굴을 그릴 때, 주로 선을 사용하였고, 필선의 부드러움과 강함을 적절하게 조절했다.

이것 때문인지 이제현의 표정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현재 초상화의 얼굴 하단 부위의 안료가 많이 박락되어 코와 수염, 입의 형태는 정확하게 알아보기 어렵지만, 눈썹과 눈을 그린 솜씨가 매우 섬세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앉아 있는 이제현의 왼쪽 뒤편으로는 주역(周易)책과 청동기 등의 기물이 놓여있는 칠기로 만든 탁자가 있는데, 이는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의 다른 초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구 배치이다.

이제현의 초상을 그린 사람이 비록 고려인이 아닌 중국인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제작된 초상화의 숫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작품은 여말선초에 제작된 초상화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려와 원의 문화적 교류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다.

이제현의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이지공(李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글을 잘 지었으며, 충렬왕 27년(1301)에 성균시에 1등으로 합격했다.

이어서 과거에 합격한 뒤, 본격적으로 관리생활을 시작했다.

충숙왕 1년(1314)에는 상왕인 충선왕(忠宣王)의 부름을 받아 원나라의 수도 연경으로 가서, 만권당(萬卷堂)에 머물며, 중국의 지식인들과 교유를 시작하였다.

이제현이 중국에 체류할 때 만나고 사귀었던 문인들과 학자들은 모두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인재들이었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접했던 중국의 성리학을 고려에 도입하여 발전시켰다.

이제현이 충목왕 때 성리학의 이론인 격물치지(格物致知)와 성의정심(誠意正心)을 바탕으로 개혁안을 제시했던 것도 성리학에 대한 이러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또한 그는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업적을 많이 이루었는데,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들을 소재로 한시를 저술하는 등 고려의 한문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이유로 이제현은 한문학에서도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초상화-형과 영의 예술(조선미, 돌베개, 2009)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후기 초상화(이태호, 마로니에북스, 201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http://www.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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