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作 '처네를 쓴 여인', 1805년, 비단에 채색, 28.3cm×19.1cm, 신윤복필여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윤복作 '처네를 쓴 여인', 1805년, 비단에 채색, 28.3cm×19.1cm, 신윤복필여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이 그림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풍속화가인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813 이후)이 그린 풍속화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중인《신윤복필여속도첩》에 들어있다.

푸른색 치마를 입고 치마의 색보다 옅은 옥색의 처네를 쓴 여인이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는 모습을 담은 풍속화이다.

이 여인이 지나가는 담장 너머로 보이는 기와집의 벽은 낡아서 허물어져 있고, 남루하고 처량해 보인다.

신윤복은 여인의 뒷모습을 그림의 소재로 삼아 화면의 중앙에 배치했는데,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운 경우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여인의 표정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과 허물어져 가는 흙벽을 통해 주인공의 감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더욱이 푸른 치마와 대비가 되는 붉은색 신발의 날렵한 선은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는 그녀의 처지를 말해 주는 듯하다.

그림 속 여인은 더 이상 불러주는 곳이 없는 늙은 퇴기를 찾는다는 소식에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몸도 마음도 지치고 병들어 쉬어야 할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러 가는 고달픈 여인네일 수도 있다.

쓰개를 덮어쓴 모습에서 연민과 쓸쓸함이 배어나온다.

조선 시대에는 여인들이 외출할 때 얼굴과 몸을 가리기 위해 둘러썼던 쓰개 종류가 많았다.

너울은 주로 궁중과 반가의 여인들이 사용하였으며, 너울대신 더 간편하게 쓰려고 만든 것이 치마모양의 쓰개치마다.

장옷은 두루마기 같은 모양의 내외용 쓰개이고, 처네는 치마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윗부분에 깃과 동정이 달려 있으며, 머리에 쓰기 좋게 주름을 잡았다. 처네는 한자어 천의(薦衣)가 변해서 된 것으로, 주로 서민층 여인들과 기생들이 착용하였으며, 방한용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동안 <처네를 쓴 여인>으로 알려져 왔지만, 여인의 머리에 둘러 쓴 것이 처네가 아니라 쓰개치마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신윤복(申潤福)은 고령 신씨로 호는 혜원(蕙園)이다.

아버지 신한평(申漢枰, 1726~?)은 도화서 화원으로 특히 초상화와 속화에 빼어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윤복 또한 화원이 된 것으로 보이나, 그의 생애나 행적에 대한 문헌의 기록을 찾기는 어렵다.

다만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이 그림 오른 쪽 하단에 “旃蒙赤奮若孟秋 蕙園 寫 (전몽적분약맹추 혜원 사)”라고 그림의 제작 년도와 호를 적어 놓아, 그의 생애와 다른 작품의 제작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가 되고 있다. 전몽은 을(乙), 적분약은 축(丑)의 다른 표현이다.

또한 맹추는 음력 7월을 의미하므로, 1805년 음력 7월에 신윤복이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신윤복, <장옷 입은 여인>, 비단에 채색, 28.2cm×19.1cm,《신윤복필 여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참고문헌】

간송미술관 소장<蕙園風俗畵帖>을 통해 본 19세기(순종~고종년간) 민간의 복식과 생활상(이태호·양숙향, 강좌미술사 15권, 한국미술사연구소, 2000)

조선 회화의 사실정신(이태호, 학고재, 1996)

조선의 미를 사랑한 신윤복(조정육, 아이세움, 2014)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의생활편(국립민속박물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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