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민심과 부합, '샤이 표심' 야당 기대 밑돌아
통합당 '막말', 진영 논리 격화시켜 중도층 이반 초래

【뉴스퀘스트=김선태 부국장】 4·15 총선 결과 유권자들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압도적인 승리를 안겨준 것으로 나타났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포함)은 103석으로 간신히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넘긴데 그쳤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포함)은 180석을 얻어 국회선진화법을 뛰어넘어 단독으로 국회를 운영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다. 

지난 20대 국회와 총선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처럼 사상 초유의 '진보 압승'이 가능했던 걸까.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시민당 이종걸 상임선대위원장, 이인영 원내대표, 이해찬 대표,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1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종합상황판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시민당 이종걸 상임선대위원장, 이인영 원내대표, 이해찬 대표, 더불어시민당 우희종 공동상임선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 '샤이 보수'는 없었다

개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은 지역구에서만 163석을 얻어 단독 과반을 확보했고, 여기에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17석), 열린민주당(3석)의 의석수와 함께 복당이 점쳐지는 무소속 이용호(전북 남원임실순창) 당선자의 1석까지 합쳐 총 184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정의당(6석)을 포함하면 범진보계의 의석수는 190석에 달한다.

통합당은 지역구에서 84석에 그쳤고, 여기에 미래한국당(19석)과 복당이 예상되는 무소속 홍준표(대구 수성을), 김태호(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권성동(강원 강릉), 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을) 4석까지 합쳐도 총 107석에 그친다. 

범보수계에 국민의당(3석)을 더해줄 경우 총 110석인 셈이다.

선거막판 일부 혼전 양상이 빚어진 것을 제외하면, 이런 결과는 3월 이후 전국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부터 예고됐다.

뉴스퀘스트는 '총선 D-20일' 판세 점검에서 지역구와 비례 모두 민주당이 우세하며, 통합당은 TK(대구경북)와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만 우세를 보일 뿐임을 확인했다.

총 101곳 지역구 여론조사가 발표된 'D-12일' 판세 점검에서는 이번 선거가 '영남-비영남 양당구도'로 압축되고 있으며 보수 우세지역이라는 기대와 달리 강원·충남이 혼전 양상임을 확인했다. 

마지막 여론조사를 살핀 'D-5일' 판세에서는 여론조사 분석으로 민주 95석, 통합 56석으로 양당간 격차가 거의 두 배에 이를 것으로 보았는데 실제 결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론조사가 대체로 민심을 반영할 수 있었던 이유로 이번 총선이 이전과 달리 민심을 억제할 사회적 기제가 미미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언론 민주화가 정착하면서 숨은 표심이 대폭 줄어든 결과다. 

사전 여론조사에 비해 양당 격차가 더 벌어진 이번 결과는 통합당 측이 강조한 '샤이 보수층'이 기대치인 10%에 미치지 못함을 입증했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제21대 총선 경기 부천병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차명진 후보가 막말 논란으로 당에서 제명된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차 후보 선거사무소 건물에 부착된 선거홍보물 절반이 그림자로 가려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21대 총선 경기 부천병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차명진 후보가 막말 논란으로 당에서 제명된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괴안동 차 후보 선거사무소 건물에 부착된 선거홍보물 절반이 그림자로 가려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 영-호남 대결구도 재연...중도층 '정권지지' 택했다

무엇보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 총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코로나19 감염병의 영향이 컸다. 본격 선거전에 돌입하면서 민주당은 코로나19 방역 성과를 부각하며 '국정 안정'을 호소했고, 통합당은 그보다 경제 파탄의 책임을 물어 '정권 심판'을 호소했다.

결과는 민주당이 내세운 '방역 선진국' 논리가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불거진 진영대결 논리가 이번 총선까지 이어졌고, 실제 경기 남양주병과 안산단원을은 '조국 탄핵' 대 '조국 수호'의 대리전 양상까지 벌어졌다.

한국 사회의 특성상 진영 대결은 자연스럽게 지역대결로 이어지게 마련인데 그 결과 영호남은 몰아주기의 정점을 찍었다.

당연히 나머지 지역에서 양 진영이 중도층 표심을 얼마나 얻을지가 선거의 승패를 결정지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중도층 견인'이 양당 모두에게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이 지점에서 여당은 진영 논리보다 '코로나19 대응'을 앞세웠고, 반대로 마지막까지 '정권 심판'을 되풀이했던 야당은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총선 다음날 김종인 위원장이 “통합당은 보수만 외치다가 지금까지 온 것”이라 말했지만 만시지탄이었다.

제21대 총선에서 패배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개표상황실에서 사퇴를 밝힌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21대 총선에서 패배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가 15일 국회도서관 강당에 마련된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 개표상황실에서 사퇴를 밝힌 뒤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선거운동 막판 '막말'...야, 참패 자초

게다가 선거운동 막판에 등장한 통합당의 '막말' 시리즈는 불붙은 '보수 수호' 열기에 기름을 퍼부은 꼴이 되었다.

김대호(서울 관악갑) 후보나 차명진(경기 부천병) 후보의 막말이 대표적이다.

차명진 후보의 '세월호 발언'은 당이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진영 프레임에 갇힌 지지세력의 반발로 무산되었고, 이로 인해 통합당의 과거 행태까지 거론되며 '막말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진 꼴이 되고 말았다.

이는 김진태, 이언주, 민경욱, 전희경, 김병민 등 '설화'로 이름을 날렸던 후보들이 대체로 보수 우세 지역구에서 출마했음에도, 마치 봄비 맞은 벚꽃처럼, 우수수 탈락한 배경이 됐다.

강성 이미지가 패인의 하나로 분석된 나경원 후보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통합당의 막말이 일반적인 흑색선전의 범주를 넘어설 정도로 큰 문제를 야기한 이유는 그것이 개인의 일탈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극우 진영논리와 결합돼 집단최면 속에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진영논리와 결합된 막말은 증오와 공포를 유발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무기가 된다. 외관상 그 효과가 아주 커 보이기 때문에 진영 내의 모든 사람들이 막말의 유혹에 점점 더 빠져들게 마련이다.

'혐오사회'의 저자 카를린 엠케의 "증오와 공포로부터 이득을 취하여 그 맛을 보고 나면 너도나도 증오와 공포에 불을 붙이는 일에 뛰어들고 말아 마침내 모두가 공범이 된다"는 말처럼 된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 지도부는 보수야당의 정체성을 중도층으로 확대하는 대신 당을 '보수의 성지'로 만들어 지지층 결집에 골몰한 우를 범했다.

정치사상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지도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할 일만 함으로써 자신의 천재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돌이켜 보면 통합당 지도부는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너무 오래 매달렸다.

그 결과 선거를 진영 대결에서 시작하여 지역 대결로 몰아갔고 여기에 선거 막판에 더해진 막말 시리즈로 중도층 이반을 자초했다.

황교안 대표가 사태의 엄중함을 깨닫고 대처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지층 반발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통합당이 증오와 공포를 부추기는 막말로 우열을 가리는 '보수의 성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민심을 받들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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