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등 지역 문인들, 문화운동 일환으로 예천 계간지 펴내

예천산천 / 2020년 봄 1호 / 모천사회적협동조합 펴냄
예천산천 / 2020년 봄 1호 / 모천사회적협동조합 펴냄

“새 도약 맞는 고향 예천에 굴기(屈起)의 힘 보태고자”

【뉴스퀘스트=김선태 기자】 아름다운 내성천이 낙동강까지 이어지는 물 맑고 인심 좋은 고장, 예천을 알리는 계간 잡지 『예천산천』 2020년 봄호, 창간호가 나왔다.

물 맑다는 말이 다른 동네라면 공치사일 수 있지만 예천은 이름부터가 단술 예(醴) 샘 천(泉)이라 일찍부터 물의 격이 다른 고을이었다. 게다가 술맛까지 좋아 이름 절반에 새겨두었다니.

해서 예천이 고향인 시인 안도현은 외지에서 40년간 살다 올해 하향하게 되었다며,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하는 상향(上鄕)의 꿈을 이 잡지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창간의 변을 썼다. 

물의 고장 예천을 소개하는 마중물이니만큼 창간호 특집은 이 고장의 상징, 내성천으로 삼았다.

내성천 하면 빛 반짝이는 흰수마자가 헤엄치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남지 않은 모래강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강에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이번 특집은 그래서 독자를 향한 내성천의 호소처럼 읽힌다. 

내성천과 회룡포
내성천과 회룡포 [사진=모천사회적협동조합]

내성천 은모래강, 안타까운 사연 들려줘

특집의 첫 기사 제목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모래강, 내성천”이다. 강은 백두대간 소백산 국망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남쪽으로 내린 비가 모여서 내성천을 이룬 후 낙동강이 되어 영남 내륙을 흐른다.

그 과정에 명승 제16호 회룡포와 어울려 돌아가니 예부터 천하 절경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곳곳에 흰수마자가 서식하고 흰목물떼새가 몰려다니며 수달 삵 담비 하늘다람쥐 먹황새 독수리와 함께 높은 생물다양성을 자랑하던 이곳이 영주댐 건설 이후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저간의 변화 과정을 “내성천의 어제와 오늘” 기사가 소상하게 전한다.

“지난 수십 년 간의 과도한 하천정비사업과 수많은 댐 건설, 그리고 단군 이래 최대의 국책 토건사업이라는 4대강사업으로 이제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남은 모래강 내성천”이라는 문구에 이르면 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내성천의 앞날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는 단연 거대한 인공구조물인 영주댐으로, “영주댐, 어떻게 해야 하나?” 기사는 내성천이 급격한 퇴화기에 접어든 내력과 그로 인해 더 분명해진 내성천의 생태적 가치를 과학적인 분석을 곁들여 정리해냈다.

특집 마지막 기사는 “기억이 흐르는 마른 개천을 바라보는 일”로 이곳 모랫골 출신인 필자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내성천과 함께 한 시간을 담담한 필치로 풀어냈다. “내성천 다리 밑에서의 ‘한 잔’을 더는 기약하지 않는다”면서도, 끝내 이 강물을 “죽음으로까지 내몬 것은, 누구일까?” 묻는다. 

고평교에서 하류방향, 2019년 [사진=모천사회적협동조합]
고평교에서 하류방향, 2019년 [사진=모천사회적협동조합]

맑은 물맛 같은 고장 내력 감칠맛 나게 묘사

예천을 소개하는데 인물이 빠질 수 없다.

창간호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구한 대감’ 정탁, ‘한국문학사의 체계를 세운’ 조윤제 박사, ‘조선의 주체성을 자각케 한 『대동운부군옥』의 저자’ 초간 권문해 등을 소개한다. 수려한 경관과 정갈한 풍모를 지닌 초간종택, 초간정사와 원림은 지금도 남아 예천의 예스런 멋을 자랑한다. 

예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순간들은 ‘기억’ 편에 모았다.

근대 백정 신분 철폐 운동의 절정을 이루었던 예천 형평사운동을 소개하고, 말(馬) 무덤 아닌 말무덤(言塚)으로 유명한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의 언총 전설을 소개한다.

임란 뒤 여러 성씨가 마을에 터를 잡은 뒤로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는데 어느 과객이 마을 곳곳에 재갈을 물리라 하여 그 처방에 따르니 이웃간 정이 살아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작가는 언총이 후손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조상님들이 미리 마려해둔 이정표”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우리 소 집에 왔대이!’에서는 예천 ‘어러신’과 ‘새디기’ 사이에 오가는 걸쭉한 토박이말의 성찬이 한 판 마당굿처럼 펼쳐진다.

최재봉 기자는 전주에서 술잔 꽤나 주고받던 안도현 시인이 예천으로 내려가게 된 아쉬움을 한 편의 회고로 대신했고, 이어 태평양전쟁에서 6‧25를 거쳐 오늘까지 장사란 장사는 안 해본 장사가 없었다는 1932년생 박호녀 할머니의 파란만장 일대기가 펼쳐진다. 

예천 시골살이아이들 농촌유학센터 입구 [사진= 모천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예천 시골살이아이들 농촌유학센터 입구 [사진= 모천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여유’ 코너에서는 ‘생명’ 연작 판화가 남궁산의 글을 그의 작품과 함께 만날 수 있고, ‘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내성천의 모든 것들을 놓치기 아까워하는 시를 만날 수 있고, 예천이 주천(酒泉)인 내력을 역사적으로 훑은 이종주 시인을 고문답사기를 만날 수 있다.

소똥 위의 개똥 이야기는 포복절도하게 만들고 우천재의 설풍경은 이 고장의 간단치 않은 전통을 실감케 한다. 

이어지는 ‘오늘’ 코너는 자칭 농촌유학생, 귀농꾼 등 예촌에 눌러앉은 사람들의 고장 자랑이 그들이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함께 펼쳐진다.

‘어울림’ 코너는 임금님 간식이었다는 ‘은풍준시(蹲柿)’ 같은 고장 명물과 함께 예천을 모천 삼아 성장하는 사회적 협동조합들을 소개한다. 

계간지 『예천산천』은 평생회원과 후원회원의 회비로 운영되며 안 시인과 함께 권오휘(시인, 교사) 김두년(시인) 유경상(문화기획자) 안상학(시인) 이종주(시인, 문화기획자) 조현설(시인, 교수) 등 다수의 편집위원이 참여해 만들어진다. 

/글. 휴먼앤북스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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