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삶'에 힘들어 하는 청춘을 위한 진솔한 조언

‘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 조던 B. 피터슨 저, 강주헌 역, 메이븐.
‘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 조던 B. 피터슨 저, 강주헌 역, 메이븐.

【뉴스퀘스트=김선태 기자】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혼돈의 해독제’라는 부제가 붙은 토론토 대학 심리학과 조던 B. 피터슨 교수의 저서다.

저자의 전공을 보면 이 책이 심리학에 토대를 둔 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먼저 토론토 대 학생들이 그를 ‘내 인생을 바꾼 교수’로 뽑았다는 해설에 눈길이 간다.

인생의 진로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학생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열강을 펼치는 피터슨 교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책에 미친 다윈과 니체의 영향

본문을 살피기 전에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전제를 언급하는 게 좋겠다.

아마도 이 책에서 피터슨의 관점에 심원한 영향을 미친 두 사상가로 진화론을 확립한 다윈과 영원회귀 사상을 설파한 니체를 들 수 있겠는데 다시 니체는 다윈의 진화론 위에 자신의 철학을 구축했으므로, 이 책은 진화론의 토대 위에서 니체의 철학을 수용한 심리학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니체는 자신이 신학을 포기하려는 이유를 여동생 엘리자벳에게 설명하는 편지에서,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다짐했다.

“만일 네가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원한다면, 믿어라. 하지만 네가 진리의 사도가 되고 싶다면, 질문해라.”(니체의 1865년 6월 11일자 편지 중)

행복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만, 진리는 질문으로 얻는 것이다. 니체는 양자가 상호 무관하며 굳이 따지자면 진리의 추구가 행복의 추구에 비해 절실하다고 보았다.

사람에 따라 행복은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니체는 자신이 치유불가능한 두통으로 평생 고통에 빠지리라 느끼면서 이 사실을 직감했다. 그가 진리의 길을 걷게 된 동기 중 하나다. 저자가 니체에게 결정적으로 공감한 대목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저자가 행복 대신 ‘삶의 길’을 추구한 배경을, 니체가 행복 대신 철학을 추구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 아니라고?”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 책이 나오게 된 과정을 상세하고도 흥미롭게 서술한다. 그는 2012년부터 ‘쿼라(Quora)’라는, 우리의 네이버 지식인과 유사한 질의응답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주제는 ‘행복과 만족의 차이’, ‘나이 들수록 좋아지는 것’,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법’ 등등. 저자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많은 답을 올렸고, 그중 일부는 저자의 표현을 빌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러다 1985년부터 5년간 글을 써 ‘의미의 지도 : 믿음의 구조’라는 책을 냈고 이어 ‘유튜브’ 강연을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피터슨 교수는 점점 대중적으로 알려졌고 어떤 유튜브 강연은 이 책이 출간될 당시 누적 조회수 7400만 뷰를 넘기도 했다.

피터슨 교수가 굳이 이런 이력을 설명한 이유는 그 과정에서 축적된 그만의 독특한 사유가 이 책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수는 대표적인 경우로 ‘혼돈과 질서’에 대한 해석을 소개한다.

“질서의 공간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하므로 예측할 수 있고 협력적이다.”

반면 “혼돈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사건이 벌어지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주장을 펼친다.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 물으면 보통의 경우 “행복을 얻는 것”이라 대답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작업반장이 휘두르는 몽둥이로 한 대만 맞아도 사라질 한심한 이데올로기”가 행복이라는 솔제니친의 말을 인용하면서 “행복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사람들은 질서의 공간을 원하지만 혼돈이 한 번 찾아오면 그 질서는 우습게 무너지며, 그와 함께 사람들이 애써 가꾸던 행복은 단숨에 사라지고 만다.

그것이 인생의 일반적인 양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처럼 행복이란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므로, 저자는 “삶의 길을 걷는 것이 행복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길을 걸어야 좋을 것인가? 우리의 삶에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혼돈과 공포, 그로 인한 갈등과 다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는 충분히 살아야 할 이유를 확신하게 해줄 법칙이 있을까?

저자는 이 문제를 파고들어 연구하고 사색한 끝에 얻어 낸 결과물이 이 책이라고 말한다. 책의 부제처럼 저자는 독자에게 삶에서 제기되는 혼돈에 대한 해독제를 제공하려 한다.

그 해독제를 12가지 법칙으로 정리했는데, 이 때 법칙은 물리법칙 같은 공식이라기보다 ‘법칙과 기준, 가치’를 포괄하는, 의미 있는 삶으로 이끄는 ‘지침’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법칙들이 A=B 같은 명제로 제시되기보다 “이럴 경우 이렇게 하라”는 권고문으로 제시되는 이유다. 여기서는 그중 일부에 대한 감상을 밝힌다.

법칙 1.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

이 장은 다윈이 밝힌 진화론에 의해 자연은 물론 인간 사회조차 무자비한 경쟁 체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가령 바닷가재는 바다 깊은 곳에 살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서식지는 좁고 그들의 수는 많아서 불가피하게 영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그런가 하면 굴뚝새는 자기 집이 아닌 이웃 집 입구까지 나뭇가지로 틀어막아 미연에 있을 경쟁자를 제거하려 한다.

닭장에 수십 수백 마리의 닭을 풀어놓아도 먹이를 던져주면 언제나 우두머리가 먼저 자리를 차지해 먹은 뒤 2인자 3인자 순의 서열에 따라 먹이를 먹는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에게 “영역이 중요하지만 좋은 영역은 항상 부족”하며, 동물의 세계에서 이를 둘러싼 “충돌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동물의 세계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에서 매년 150만 종의 책이 출간되는데 그중 10만 부 이상 팔리는 책은 500종에 불과하다.”

관련 업계에서 소수 종사자가 전체 생산성의 과반수를 차지한다는 것이 아예 ‘프라이스의 법칙’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런데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못 된다. 예를 들어 침팬지 집단에서 아무리 강력한 놈이라도 건장한 수컷 두 놈이 힘을 합치면 그를 쓰러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저자는 이것이 진화론의 자연선택에 근거한 필연적인 귀결이며, 그것은 자연이 “정적인 동시에 역동적”임을, “완벽해 보이는 질서 안에도 혼돈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당연하지만 “인간의 삶에서도 이처럼 파괴적인 순환 작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로 인해 법질서가 잡히고 높은 문화수준을 갖춘 선진국에서조차 일상적으로 가학자와 피학자가 생겨나고, 괴롭힘을 당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무수하게 생겨난다.

만일 우리 자신이 그와 같은 피해자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내면에 사악한 감정을 키워 복수의 칼날을 갈아야 할까?

이 지점에서 저자는 자연법칙이 그러하듯 상황은 끊임없이 바뀌게 마련이며, “상황이 바뀌듯 당신도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우리의 힘이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파괴적인 역효과를 낳을 수 있지만, 반대로 엄청난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똑바로 하여 주어진 재앙 앞에서 얼어붙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전한다면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키울 수 있으며 현재의 혼돈을 다시 질서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닷가재조차 그렇게 하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인간인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를 저자는 간결하게 응축해서, 구부정하고 웅크린 자세를 당장 버리고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라”는 ‘법칙’으로 제시한다.

법칙 3. 당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기대하는 사람만 만나라

이 ‘법칙’은 저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 자화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저자는 캐나다 중서부 앨버타주의 페어뷰라는 신생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마을은 겨울이 5개월이나 지속되는 북구 지역이라 일 년 내내 추위와 싸워야 하는 곳이었다. 저자는 늘 화난 표정을 한 크리스라는 친구, 그 사촌동생, 그밖에 몇몇 동네 형들과 이런저런 사고를 치며 10대 시절을 보냈다.

시골 오지 마을이다 보니 그런 시절을 지낸 뒤 딱히 할 일이 없어 모두 고향을 떠나려 했고 실제로 친구들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마을을 떠났다.

때가 되어 저자는 고향을 떠나 대학에 진학했지만 크리스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30대에 정신실환을 얻었고 오래지 않아 자살했다. 크리스의 죽음은 오랜 세월 저자의 마음을 괴롭혔다.

크리스에게는 도움이 절실했을 것이고, 그에게 도움을 줄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순수한 마음으로 도움을 주려 하는지 아닌지 그가 무슨 수로 알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예로 들어 이 문제를 설명한다. 어떤 지하생활자가 거리의 매춘부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집으로 부른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구세주라는 자가당착에 빠져 도움을 바라는 그녀를 오히려 모욕하고 깔아뭉갰다는 이야기다. 크리스의 처지가 곧 그녀의 처지였다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보자. 적당히 살며 구제를 기다리거나 자포자기 심정으로 남은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어떤 도움도 제대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도랑에 빠진 사람은 누군가의 손을 잡고 조금만 노력하면 올라올 수 있지만, 낭떠러지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포자기에 빠져 상대방을 분간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가 곤경에 처하면 타인의 도움을 청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할 의지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위대한 결과는 운명을 건 도전에서 나오고, 모든 영웅은 심판의 순간에 탄생한다.”

우리의 삶이 한 때 망가질 수는 있지만 그 이유를 세상의 탓으로 돌려서는 곤란하다. 우리 주위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늘 혼재되어 있어 손 한 번 잘못 내밀었다 나락에 떨어질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므로 손을 내밀기 전에 먼저 나부터 “강인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을 통해 최고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그런 나를 기대하는 사람만이 내가 도움의 손길을 뻗을 때까지 기다려줄 것이므로.

법칙 8.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이 장은 “곤란한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게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나을까?” 하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저자가 대학생이던 어느 날 한 정신병원에서 임상 실습 교육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병원 복도에 서 있는 저자 일행 앞으로 어떤 정신질환자가 느닷없이 “여기 왜 서 있는 거냐? 나도 같이 가면 안 되냐?” 하고 물어왔다.

다른 핑계를 대서 돌려보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저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는 학생이며, 당신은 함께 할 수 없다” 답했고, 다행히 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와 같이 거짓말로 모면하고 싶게 만드는 유혹을 종종 느낀다.

그 유혹에 넘어가 “의도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세상을 조작하는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정보 조작이다. 문제는 이런 삶을 반복하다보면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히기 쉽다.

욕망이 욕망을 낳고 그 욕망을 따르다보면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세운” 사소한 목표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음흉한 ‘인생의 거짓말’로 바뀐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를 들어 “은퇴하면 한가로운 해변에서 마르가리타 칵테일이나 마시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치자. 실제 그렇게 지낼 날들이 대체 며칠이나 될까?

대개 이런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정치적 허사로 사용하기 위함이거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반복되다보면 상대방뿐만 아니라 점차 스스로도 자신의 본 모습을 알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진짜 역경이 도래했을 때 이를 극복해낼 방법도 의지도 갖추지 못할 수 있다.

‘법칙 1’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삶에서 혼란과 역경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심지어 수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를 재치와 임기응변으로 모면하려 하기보다 희생을 감수할지라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진실에 근거해 극복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거짓을 말하는 순간 우리 마음에는 의지 대신 나약함이 자리잡게 되며 점점 ‘거짓말로 삶의 구조를 왜곡’하는데 익숙해진다.

반대로 거짓을 멈추기로 할 경우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고대 이집트 오시리스 신화를 설명하면서, “악의는 신의 시력까지 훼손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눈앞의 것이 섬뜩하고 무서울지라도 이를 직시해야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개인과 사회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진실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힘이기도 해서, 니체는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진실을 얼마나 용인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작은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게 되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를 점차 왜곡시켜 더 많은 거짓을 동원하는데 주저하지 않게 만든다.

나아가 한 번 성공한 거짓은 교만과 우월을 수반하며 우리를 거짓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며 개인은 거짓으로 점철된 근거 없는 환상에 사로잡힌 삶을 살게 된다.

반대로 진실은 약간의 고통과 혼란이 따를 뿐, “현실을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

진실로 겪은 과거는 다시 우리를 괴롭히지 않으며, 그로 인해 우리 내면에서 새로운 진실을 끊임없이 샘솟게 해준다. 그 결과 우리가 어떤 “비극에 맞닥뜨리더라도 영혼이 위축되거나 소멸하지 않는다.”

법칙 12.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이 장은 저자가 사랑하는 딸 미카일라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가 일곱 살 때 자꾸 발이 아프다 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소아 류머티즘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아들 줄리언도 어릴 때 잔병치레를 꽤 했지만 딸의 경우는 저자의 냉정을 잃게 만들었다.

온갖 약과 주사제가 듣지 않아 절망에 빠졌을 무렵 동물원에 다녀온 뒤로 아이가 생기를 찾았는데 그 뒤로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고2 가을 무렵 심하게 절뚝이기 시작해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는 “넓다리뼈 일부가 죽어 인공관절로 교체해야 한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딸은 그때부터 극심한 고통으로 날마다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고 저자는 무기력하게 딸 곁을 지켰다. 너무 아파해 아편 성분의 약을 먹였고 다른 의사를 찾아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저자는 삶의 한계를 느꼈다. 그 고통을 스스로 표현할 수 없어 괴테의 ‘파우스트’ 한 구절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지나갔다고! 어리석은 말이로다. 어째서 지나갔단 말이냐?”

그때 저자는 “삶의 한계가 삶 전체를 파괴할 정도로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적었다.

이듬해 5월 미카일라는 고관절을 인공 관절로 대체했다. 그런데 얼마 뒤 이번에는 다시 발목 관절에 문제가 생겼다. 매일 매시간 뼈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이 다시 찾아왔다.

참다 실신하는 일이 잦았고 부모는 조금이라도 빨리 수술할 곳을 찾아 캐나다 전역 나아가 온 세계를 뒤졌다. 발목을 절단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할 무렵, 우연히 한 물리 치료사가 미카일라를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딸아이의 발목뼈가 어긋난 것이라며 바로잡아 주자, 거짓말처럼 아이를 괴롭히던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후로 모든 것이 좋아졌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강아지 ‘시코’의 친구이자 집 건너편에 사는 고양이 ‘진저’의 추억을 소환한다. 가까운 이웃이므로 그들은 서로 친해서 자주 어울린다.

딸애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때, 진저가 곁에 와서 잠시 머물다 가면 저자는 “뭔가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 “아무리 안 좋은 날이라도 주의를 기울이면 그런 작은 기쁨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딸아이가 치료받지 못해 온통 삶이 무너지는 가운데서도 저자는 진저를 어루만지며 고단한 삶을 잠시 잊고 긴장을 풀 수 있었으며, 마침내 다음 대목에 이른다.

“길을 걷다가 고양이와 마주치면, 존재의 경이로움이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보상해 준다는 것을 잠시나마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존재 또는 생명의 경이”를 이해하는 것, 그것은 아마 저자가 제시한 다른 모든 ‘법칙’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삶의 고통’을 극복하게 해줄 대안인 듯싶다.

마치 청년 니체가 어느 날 치명적으로 엄습한 신체적 고통으로부터 평생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 뒤, 오직 진리를 향한 추구만이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던 것처럼.

진솔함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책

이 책은 ‘인생의 법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실은 “삶을 대하는 권장할 만한 자세”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법칙을 잘 못 사용하고 있다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자세가 올바른 삶의 행로를 개척해주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자세를 법칙이라 불러도 틀렸다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저자가 권하는 자세들은 본질적으로 저자 자신의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인데, 그 경험들이 책의 제8법칙, 즉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는 것처럼 저자의 진솔함에 근거하고 있어서 더욱 의미 있어 보인다.

때로는 물리법칙처럼 부인할 수 없이 정확한 ‘죽은’ 명제보다는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있는 그대로의 ‘살아있는’ 고백이 심금을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독자라면, 특별히 독자가 ‘불확실한 삶’에 고뇌하는 청춘이라면, 저자의 조언을 경청하면 좋겠다.

처음에는 다소 공부를 강요당하는 것 같아 불편해하다, 차츰 어떤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 호기심으로 빠져들고, 이윽고 “맞아 나도 그럴 거야” 하며 시린 가슴으로 책장을 넘길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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