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앞에서 계속)

대자암 반대쪽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 배고프지만 모기들이 떼거리 달려들어 앉을 곳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오후 1시쯤 잠시 휴식이다.

땀에 젖은 장갑에 하얗게 손이 불었다.

모기들의 습격으로 점심도 놓치고 가파른 길을 오른다. 자주색 꽃 산수국 한참 지나 건너편 다래나무는 은빛, 백화(白化)증상이다. 식물의 생리를 생각하면서 땀을 닦는데 결국 모기에게 당하고 말았다.

“점심 먹고 가자.”

“안 돼. 힘들어 못 올라간다.”

“…….”

이 정도로 어찌 달마의 두타행(頭陀行)(주7)에 비하랴.

“웬 모기가 이렇게 많지?”

연천봉고개 못 미쳐 계단 만드느라 일하는 사람들까지 모기타령이다.

“일하는데 미안합니다.”

“…….”

일행은 지팡이를 쓰라 해도 불편한지 묵묵부답이다. 지팡이를 사용하면 피로를 줄일 수 있는데, 한 걸음 앞을 짚어 가면서 오른손, 왼손 바꿔 주면 좋다.

팔꿈치를 구부렸을 때의 높이로 조절해 짚어야 하중을 분산시킬 수 있다. 이때 평평한 곳은 발바닥 전체로 수평이 되게 딛고 보폭은 되도록 짧게 해야 체력소모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연천봉에서 본 계룡시, 멀리 대전시내가 보인다.
연천봉에서 본 계룡시, 멀리 대전시내가 보인다.

연천봉 고개에서 관음봉 바라보니

거의 1시 반에 연천봉 고개 위 헬기장에 앉아 점심이다.

멀리 구름이 몰려있고 잠시 반가운 햇살을 보여준다. 산에서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과식하기 십상이므로 적당히 먹어야 한다.

특히 오랜 시간 산행에는 오르막을 감안해서 식사 시간을 정해야 하고, 많이 채우면 위에 혈액이 집중되어 쉽게 지칠 수 있다.

사탕, 초콜릿 같은 가벼운 행동식(주8)을 자주 먹되, 술은 혈관 확장으로 심장에 부담을 주므로 삼가야 한다.

도시락을 펴자 쉬파리인지 하루살이인지 새까맣게 몰려 와서 젓가락 겨우 들었다.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는데 그나마 비가 안 오니 천만다행, 오후 2시에 하늘과 이어진 연천봉(連天峰, 738미터)에 올랐다.

“안개를 살며시 열어주니 이만한 것이 어디냐.”

“…….”

한쪽 편에서 산상방뇨 중인데 색깔이 노랗다. 물 섭취가 부족하면 체내 수분유지를 위해 신장은 소변을 농축시키고 혈류속도까지 떨어져서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이때 물을 자주 먹어야 되는데, 배낭에는 물통 세 개중 한 개만 남았다. 바위산에는 병꽃나무 작은 호리병을 달았고 팥배·싸리·참나무들이다.

10분쯤 내려서서 연천봉 고개 갈림길인데 노린재·피·물푸레나무, 까치수염 군락지. 사람주나무는 잎이 크고 길어서 산동백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피부처럼 매끄러워 사람주나무다. 쇠동백, 여자나무, 산호자, 신방나무, 쇠동백, 아구사리, 귀룽묵……. 한방에서는 오구자(烏桕子). 백령도, 설악산을 비롯하여 해발 1300미터까지 자라며 중국, 일본에도 분포한다.

잎은 어긋나고(互生) 타원형,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추위와 공해에 강하나 건조에 약하고 난대성으로 해안가에도 자란다.

어린잎은 데쳐 쌈으로 묵나물에도 좋다. 잎에서 나오는 하얀 진액은 독성이 강해 실명(失明)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대극(大戟)과는 거의 약재로 쓰기 때문에 즙액에 독이 있고, 열매는 식용·도료·등유용으로, 변비에 열매를 볶아 기름을 짜 먹기도 한다. 가을의 붉은 단풍은 귀티가 난다.

연천봉에서 관음봉 바라보니 2시 방향이 천황봉 정상인데, 통신시설인지 안테나 같은 탑이 삐죽 올라서 있고 출입금지 구역이다.

땀과 비에 젖어 축축해진 지도를 편다.

나침반의 북쪽을 일치시키는 지도정치(地圖定置)를 하고 방위를 본다. 11시 방향 계룡저수지·갑사, 남향 6시 방향 신원사와 양화저수지, 3시 방향이 용동저수지이고 아래쪽으로 계룡시내 엄사, 신도안이다.

엄사면은 어느 해 겨울 중학 동기모임을 조그만 절집에서 가졌는데 하루 밤 머물다 온 곳이다. 친구들은 지금쯤 저마다의 낙원을 얼마나 만들었을까? 특히 신도안은 계룡산 일대로 이상향 십승지(十勝地)로 꼽힌다.

이성계가 무학대사와 계룡산을 보고 새 도읍지(新都)를 정했으나, 공사 1년 만에 이설(異說)이 많아 중단된 곳이다.

이 근처는 도참·풍수설에 의한 정감록(鄭鑑錄)(주9) 깃들어 있다.

무속인들이 많았으나 1989년 육·공군본부가 들어오면서 계룡대가 생기고, 2003년 논산에서 분리, 계룡시가 됐다.

도읍지 안쪽이라는 신도내(新都內), 새 도읍 예정지, 아직 새 도읍지가 안 되었다는 뜻의 신도안(新都案)으로 불린다.

조선 태조 때 신도안 공사에 전라도에서 부역 온 사람이 있었다. 아내가 절색(絶色)이라 처가에 가 있으라 했지만 한사코 만류하였다. 그런데 공사 중단으로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남편을 찾으러 뒤따라갔다는 것이다.

다시 신도안으로 왔지만 끝내 만날 수 없었고. 오매불망(寤寐不忘) 아내를 기다리던 그는 결국 신털이봉에서 죽고 말았다.

지금은 조그만 언덕인데 얼마나 많은 부역자들이 신에 묻은 흙을 털었으면 신털이봉이라 했을까?

1393년 대궐공사에 경상·전라 등지의 백성들은 물론, 승려들까지 동원했으나 신령이 계시한 태조의 꿈과 경기 관찰사 하륜(河崙)의 주장이 받아들여 중지되었다.

“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될 것인데, 계룡산은 지대가 남쪽에 치우쳐 동서북면과 서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중략) 산은 건방(乾方)에서 오고 물은 손방(巽方)에서 흘러간다 하오니, ~ 물이 장생(長生)을 파(破)하여 쇠패(衰敗)가 닥치는 땅이므로, 도읍을 건설하는 데 적당치 못합니다.”

이 산의 쪽동백나무는 열매를 맺었다.

2시 25분 관음봉 고개(연천봉0.9·동학사2.4·관음봉0.2킬로미터). 여기서 은선폭포 40분, 0.8킬로미터 거리인데 곧바로 올라갔다. 2시 30분 관음봉 정상(816미터)에 서니, 관광버스 일행인 듯 단체 사진을 찍고 표석에 앉아 비켜주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사진 좀 찍겠습니다.”

“방 빼줘.”

“…….”

이런 사람들 때문에 분위기 망쳤다.

멀리 삼불봉, 세 개의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고 천황봉(854미터)은 구름에 가려졌다. 산 아래 동학사 계곡이 줄을 그은 것처럼 선명하다.

2시 45분 자연성릉을 타고 간다. 어느 해 겨울, 이 능선으로 가다 겨울 장비 없이 미끄러워 혼난 적 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비비추, 나리꽃을 보는데 경유지인 은선폭포 가는 길을 그냥 지나쳐 왔다. 관음봉 고개에서 곧바로 동학사 길이 은선폭포 구간이다.

가파른 바위산과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산수국 너머 구름이 산봉우리에 걸렸고 여기서는 계룡저수지, 갑사 쪽이 잘 보인다.

3시 방향이 갑사, 8시 동학사, 1시 방향 문필봉·연천봉, 11시 방향이 천황봉이다. 자연성릉에서 바라보면 왼쪽이 천황봉, 가운데부터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이다.

몇 년 전 갑사 근처에 앉아 잔 기울이던 일을 생각하며 3시 25분 금잔디 고개 갈림길까지 왔다. 가파른 철 계단 10분 더 올라서니 삼불봉(775미터, 관음봉 1.6킬로미터).

암릉구간에서 이곳이 계룡산 최고 조망지점이지만 낙뢰(落雷)에 위험한 곳이다. 번개는 쇠붙이나 수분을 타고 가는데 안테나, 철재난간, 고무 없는 스틱은 피해야 한다.

높은 곳, 큰 나무 밑, 피뢰침 주변이 특히 위험하다는 것은 상식이나 당황하면 허둥대기 일쑤. 낮은 지대가 안전하고 최선의 방법은 자동차 안이지만 산속이라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팔자에 맡기는 수밖에…….

다시는 안 온다고 투덜대는데 산은 말이 없다.

오직 운해(雲海)를 흘려 산자락을 가렸다, 보였다 할 뿐……. 삼불봉 고개 내려가는 철 계단에 병꽃·당단풍·쪽동백·층층·팥배·쇠물푸레나무들이 쪼르르 바위에 붙어산다. 10분 내려가면 삼불봉 고개갈림길(관음봉1.8·삼불봉0.2·금잔디고개0.4·갑사2.7·남매탑0.3킬로미터).

자연성릉에서 바라본 계룡산, 왼쪽 천황봉, 가운데부터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
자연성릉에서 바라본 계룡산, 왼쪽 천황봉, 가운데부터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

남매탑에서 삼불봉 고개 구간은 깔딱 고개다.

내려가는 길, 까마귀 까악 까악 오랜만에 정직하게 우는 소리를 듣는다. 요즘 까마귀들은 먹다 버리고 간 음식물을 잘못 먹어서 그런지 우는 소리도 곽곽곽, 과르륵 과르륵 스트레스 소리같이 각양각색이다.

어떨 땐 바위에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면 가까이 날아와서 노려보는 놈들도 있다.

인간이 남긴 가공식품에 맛 들여진 탓에 까마귀들도 꽤나 영악해졌다. 4시경 다시 오뉘탑이다. 아침 무렵보다 상원암의 안개는 걷혔다.

거의 5시간 30분 만에 돌아와 물통 세 개를 다 비우고 다시 채운다.

일행은 남매탑에 촛불 켜고 주문(呪文)을 한다. 어떤 사람에게 셔터 한 번 부탁했더니 탑은 가려놓고 인물 위주로 찍었다.

자연이 무시된 액정을 지우면서 돌계단을 딛는다. 여기서 동학사1.7·천정골3.5킬로미터. 계곡에 물장난 하는 청춘들이 들킨 듯 우릴 보고 멋쩍어 하는데

“보기 좋습니다. 그 대신 사진 한 번 찍을게요.”

“…….”

계곡물소리 빗소리처럼 들리고 4시 40분경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갑사4.6·은선폭포쪽갑사5.6·은선폭포1.7·관음봉2.7·연천봉3.4킬로미터)에 닿는다.

계룡산 등산 구간 중 제일 오래 걸리는 곳이 동학사에서 은선폭포, 관음봉, 자연성릉과 삼불봉, 신선봉, 장군봉, 박정자 삼거리를 거치는 구간인데 8~10시간 정도 걸린다.

밀양 박씨가 심은 정자나무가 있어 박정자 삼거리다.

이절은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계룡산 동쪽 계곡에 학이 깃들었다 해서 동학사라고 하였다. 최초의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알려진 동학 강원(講院)은 원래 금강산 유점사에 있던 것을 고종(1864년)때 옮겨왔다.

신라 성덕왕(724년)시절 상원조사가 암자를 지었던 곳에 청량사(淸凉寺)라 하였고, 고려 때 도선국사가 중창, 박제상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면서 동학사로 바뀌었으며, 길재·정몽주·단종·김종서·사육신 등 여러 충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절집을 나오면서 승가대학 입구의 출입문 숫대살 창호(窓戶)가 멋스럽다.

창호는 집의 얼굴이라 했거늘 화려하고 장식적인 중국에 비해 일본은 섬세·조밀하고, 우리나라는 공간 비례를 최고로 쳤다.

내가 어릴 적에는 집집마다 띠살 창을 많이 썼는데, 좀 행세하는 집에서는 방과 방 사이에 아자(亞字)창, 만자(卍字)창을 놓았다. 숫대살은 정면 창호로 많이 썼고 왕궁에는 빗살창, 꽃살창은 사찰에 많다.

계곡에 발 담그는 사람들, 탁족(濯足)이라 해야 될까? 옛날 규수들은 몸을 함부로 드러내는 것을 꺼려 여름철 발을 담가 더위를 쫓곤 했다.

요즘엔 남녀노소 없이 드러내 놓고 다니기 일쑤다. 계곡에서 웃통 벗는 것은 다반사(茶飯事)요, 거리마다 하체 경진대회를 하는 것인지 민망스러워 눈 둘 데 없다.

발은 온도에 민감하고 발바닥은 신경이 집중되어 물속에만 담가도 상쾌해진다. 흐르는 물은 신체의 기(氣)를 자극해서 건강에도 좋다.

요즘처럼 에어컨을 틀면서 공기를 더럽히지 않았고, 자연에서 더위만 잊는 것이 아니라 심신을 바르게 하였다. 물의 정탁(淨濁)이 그러하듯 행불행(幸不幸)도 개인의 인격과 수양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문명을 떠난 소박한 산유탁족(山遊濯足)이 그립다.

동학사와 승가대학.
동학사와 승가대학.
동학사와 승가대학.
동학사와 승가대학.

동학사를 나오면서 무슨 암자가 그렇게 많은지 줄을 섰다.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매표소를 통과하면서 아침에 모두 동학사를 두고 오른쪽 천정골로 올라간 이유를 알 듯했다.

심심찮게 매표소 입구마다 등산하러 왔는데 무슨 문화재관람 요금이냐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이 낯설지 않다.

관람하지 않는데 억지로 돈을 내야 하는 문제,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현실, 지원되는 문화재 유지보수비 문제 등 결과적으로 요금 징수뿐 아니라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내려오면서 지루한 포장길을 걷는데 “우리가 만나기 100미터 전입니다.” 오로지 직설적인 화법의 시대에 이런 표현이 재미있다.

아침에 올라가던 천정골 입구에서 10분 더 걸으니 주차장이다. 오후 5시 10분, 오늘 산행 8시간 걸었다.

<탐방로>

● 동학사-갑사-동학사구간 16.6킬로미터, 8시간 정도

동학사 주차장 → (25분)큰바위 → (30분)큰배재 → (15분)남매탑 → (20분)삼불봉 고개 → (10분)금잔디 고개 → (30분)용문폭포 → (20분)갑사 → (25분)대성암 → (1시간 10분)연천봉 고개 헬기장 → (35분*점심 휴식 포함)연천봉 → (30분)관음봉 → (15분)자연성릉 → (40분)금잔디 고개 갈림길 → (10분)삼불봉 → (15분)삼불봉 고개 갈림길 → (15분)남매탑 → (35분)동학사 → (25분)주차장

* 두 사람 걸은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