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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5-29 18:00 (금)
[성우제의 문화비평⑥] 언론개혁 위해선 기득권부터 내려놔야
[성우제의 문화비평⑥] 언론개혁 위해선 기득권부터 내려놔야
  •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5.1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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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취임 3주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3주년 특별연설 이후 SNS에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

문제가 된 것은 회견장 맨 뒤에 앉은 사람의 ‘츄리닝’ 복장.

대통령과 공적으로 만나는 자리에서 기자가 어떻게 저런 복장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보기에 츄리닝(정확하게는 모자 달린 재킷)을 입은 사람이 기자 같지는 않았다.

동영상을 보던 중에 오히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남자 기자들의 차림새였다.

취재 중 넥타이와 관련한 강렬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1996년 프랑스 칸영화제를 취재한 적이 있다.

1989년 창간 당시부터 우리 회사(옛<시사저널>)는 기자단에 가입하지 않아 모든 일을 따로 해야 했다.

프레스카드 신청 안내서를 보니 회사소개서와 영화 관련 본인 기사 2건, 증명사진 2장을 칸영화제 사무국에 내라고 했다. 소개서와 기사는 영어로 번역해 팩스로, 사진은 우편으로 보낸 기억이 난다.

신청만 하고 승인 여부는 확인 못한 채 비행기를 탔다. 프레스카드를 받지 못하면 현장에서 어떻게 해보자고 생각했었다.

국내에서는 우리 매체가 출입처도 없고 기자단에도 속하지 않았던 탓에 그런 어려움에 이미 익숙했었다. 취재 노하우도 나름 갖고 있던 터였다.

칸영화제 사무국에 갔더니 국가와 회사 이름, 기자 이름 및 증명사진이 들어 있는 프레스카드를 바로 내주었다. 한국에서보다 일이 훨씬 더 수월했다.

국내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매체라 해도 출입기자단 소속이 아니면 프레스카드를 단번에 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자단도 배타적이었지만 출입처 또한 기자단 소속 기자들만 기자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칸영화제의 프레스카드는 주상영관을 비롯해 시내의 어느 극장에도 무상출입할 수 있는 만능 열쇠 같았다. 그것은 진짜 열쇠가 되기도 했다.

프레스센터에는 기자 개개인의 작은 사물함이 있었다. 매일 새로운 자료가 그곳에 들어왔다.

영화 홍보자료들이었다.

그 사물함들은 기자회견장 입구의 벽 하나를 가득 채웠다. 내 사물함 번호는 1572였고 내 프레스카드로만 열 수 있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사무국이 기자한테 개별적으로 신청을 받아 출입증을 발급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나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문화충격이었다. 더 큰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본선에 오른 영화는 매일 아침 주상영관인 뤼미에르극장에서 한 편씩 상영되었다.

극장 입구에는 프레스카드로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까다로운 드레스코드였다. 정장에 넥타이만 매도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극장 앞을 지키고 선 턱시도 차림의 덩치 큰 안전요원 두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입장을 허용하지 않았다.

최소한 나비 넥타이라도 매야 했다.

내 앞에서 기자 한 명이 항의를 하자 민머리에 검정색 선글라스를 쓴 안전요원 두 사람이 그 기자를 번쩍 들더니 계단 아래로 옮겨 놓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극장 앞 가게로 갔다. 거기에 나비 넥타이가 있었다.

퍽 인상적이었던 것은 드레스코드든, 프레스카드든 기자들의 취재와 관련한 이 모든 일들을 영화제 사무국에서 모두 관장한다는 사실이었다. 프레스카드를 발급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여부도 회사 소개와 기사를 보고 사무국이 자체적으로 판단했다.

국내에서와는 달리 주간지라고 배타적이지 않았다. 사무국은 오로지 내가 제출한 회사 소개서와 기사만 보고 판단했다.

기자단에 속해야 언론 대접을 하던 국내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아가 출입증이 있다 해도 영화제 사무국이 정하는 드레스코드에 따르지 않으면 절대 들여보내지 않았다.

기자단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었고 기자단이 개입할 여지도, 필요도 없었다. 기자단에 속하지 않아 국내에서는 불편을 겪었으나 외국에서는 취재하는 데 불편함이 거의 없었다.

1989년 우리 잡지가 창간할 당시 박권상 주필(편집인)의 언론관은 매체의 정체성이었다.

그분의 언론 철학은 뚜렷했다. 박 주필은 기자들을 매주 한 번씩 아침 일찍 불러모아 강의를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기자단에 관한 내용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랬다.

“기자단은 한국 언론이 가진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제도이다. 기자단은 출입처와의 유착 때문에 언론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언론을 부패하게 만든다. 기자단을 해체해야 한국 언론이 산다.”

결국 우리 매체는 기자단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매체에서 온 선배 기자들은 “기자단에 안 들어가고 어떻게 취재하라는 거냐?”고 이의제기를 했으나 박 주필은 요지부동이었다.

일간지의 유명 정치부기자 출신으로 영국에서 언론학을 공부한 ‘대선배 말씀’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언론부패 온상 출입기자단’ 같은 내용이 우리 잡지의 커버스토리로 기사화되었고, 언론의 촌지 관행에 관한 기사 또한 우리 지면에 자주 등장했다.

벌써 30년 전에도 문제로 여겼던 한국의 기자단 제도는 지금까지도 굳건하게 살아 있다.

재미있는 것은 법원과 검찰, 경찰 같은 주요 공공기관의 기자실 출입 여부, 곧 기자단 가입 여부를 해당기관이 아니라 출입기자단이 투표로 정한다는 사실이다.

기자실은 언론사가 돈을 내어 빌린 공간이 아닌 공적 공간인데도 출입 기자들이 기득권자라는 이유만으로 그곳을 그렇게 ‘관리'한다. 그런 관행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공적 공간 사용뿐만이 아니다. 공적 기관에서 나오는 각종 발표 자료 또한 기자단 소속 출입 기자들이 독점한다. 이같은 배타적인 출입기자단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만의 독특한 언론제도이다.

최근 들어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모든 언론사가 ‘공영’이 아닌 이상 사법부나 검찰 같은 개혁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신문은 사기업이 만드는 언론 상품인 만큼 불법만 없다면 외부의 어느 누가 개혁하라 마라 할 대상도 될 수 없다.

그래도 언론 분야에서 개혁할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 기자실을 기자단에서 떼어내어 반듯하게 운영만 해도 한국 언론의 지형은 많이 변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칸영화제 사무국이 하는 것처럼, 다른 나라 공공기관들이 하는 것처럼 매체의 기자실 출입 자격을 기자단이 아니라 해당 기관이 심사해 정하면 된다.

기관이 요구하는 일정 요건을 갖춘 언론사에 대해서는 기자실 문턱을 낮춰 출입을 허용하고 상주 공간을 원하는 언론사한테는 임차료를 받으면 된다. 캐나다만 해도 공영방송이든 큰 신문사든 공적 공간을 공짜로 사용하지 못한다.

그 공간의 주인은 언론사가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성우제(캐나다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성우제(캐나다 사회문화연구소 소장)

따지고 보면 기자단만큼 오래되고 질긴 적폐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언론은 자기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눈감아 왔다.

그들은 기자단 제도 안에서 독점적 지위와 권력을 누렸고 그 결과는 오늘날 독자들의 불신과 외면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국 언론의 위기와 추락은 언론 환경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변화를 거부한 언론의 자업자득이다.

요즘 한국 언론의 위상과 내용을 보면, 과거 박권상 주필이 왜 그렇게 기자단 제도를 못마땅해 하며 비판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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