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정치권 "4차산업시대 미래차로 '한국판 뉴딜' 선도해 달라"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국내 재계서열 1·2위의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총수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만남에 재계는 물론 사회 각계와 정부도 주목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SDI 천안사업장 초청에 정 수석부회장이 응하면서 만남이 이뤄졌는데, 두 사람은 13일 오전 10시부터 3시간가량 공장을 둘러보며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사업장은 차세대 전기차용 배터리를 연구개발, 생산하는 삼성그룹의 전략적 요충지로 두 총수가 문재인 대통령이 '포스트 코로나시대'에 대비해 강력히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에 적극 호응하며 반도체에 이어 우리나라의 차세대 먹거리로 여겨지는 전기차 배터리산업 육성에 손을 맞잡은 모습을 연출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대에는 배터리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며 "실리를 중시하는 두 젊은 총수의 비즈니스 만남은 미래 먹거리를 확대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부회장(왼쪽)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배터리 업계 '판 바뀌나' 촉각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그동안 삼성 배터리를 전혀 쓰지 않았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의 전동화 모델에는 각각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삼성SDI 배터리를 쓰지 않은 데는 배터리 형태 때문이다.

현대차는 파우치형 배터리를 사용하는데 삼성SDI는 캔형 배터리를 만들고 있어서다. 전고체 배터리는 배터리 형태 문제에서 두 그룹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기아차는 내년 초 양산하는 순수 전기차용 배터리 1차 공급사로 작년 말 SK이노베이션을 선정했다. 5년간 약 50만대 분량으로 10조원 규모다.

이어 현대기아차는 순수 전기차에 탑재할 배터리를 3차례 추가 발주할 계획인데 이번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회동을 계기로 배터리 설계 단계부터 두 회사가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두 사람의 비즈니스 만남 결과에 대해선 아무런 발표도 없었지만, 양측의 조건만 맞으면 현대차가 삼성SDI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코나 일렉트릭에 배터리를 납품하기 위해 현대차와 공동 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고,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리스크 분산과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배터리 공급처 다변화할 필요성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오는 2025년까지 44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이며 23종은 순수 전기차로 출시할 방침을 세웠다"며 "내년 초 양산하는 순수 전기차용 배터리 1차 공급사로 SK이노베이션을 선정했지만 추가 발주나 후속 차량에는 삼성SDI 배터리를 쓸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 '경쟁' 관계에서 '협력' 단계로

정부와 업계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분야에서 두 그룹의 협력을 기대하는 눈치다.

삼성과 현대차 그룹의 과거사를 살펴보면 해방 이후 70년 넘게 재계 서열 1·2위 자리를 다투며 경쟁해 왔다.

주력 분야는 전자와 자동차로 각각 다르지만 한때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나선 경험이 있고, 현대는 전자 및 반도체 사업도 영위했다.

특히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과 정주영 명예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번갈아 맡으며 개인적으로도 친분을 과시했지만, 1980년대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가 나란히 반도체 시장에 진출하며 경쟁을 벌였다.

이후 삼성이 1995년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자동차)를 설립하고, 자동차 사업에도 진출하며 양사의 경쟁구도는 더욱 강화됐다.

이에 삼성이 지난 2016년 말 국내 M&A(인수·합병) 역사상 최대 규모인 9조원을 들여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인수했을 때 현대차가 일부 신차에서 쓰던 하만 카오디오를 다른 브랜드로 바꾼 것도 두 그룹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삼성과 현대차 그룹은 이번 '천안 만남'을 계기로 본격적인 협력의 길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다.

이는 명분이 아닌 실리 목적이다. 전장부품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집중 육성하고 있는 삼성의 이해관계와 자동차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선두주자로 나아가려는 현대차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 떨어졌다.

게다가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의 만남이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3주년 특별연설 사흘만에 이뤄지면서 정치권과 재계도 주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특별연설에서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와 함께 미래차를 3대 신성장 산업으로 강력히 육성하겠다"고 밝혔는데 이에 재계가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인것이라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단독 기업만으로 시장을 선도하기 어렵다"며 "전략적 협력이 필수인 상황에서 이번 삼성과 현대차의 협력을 계기로 IT와 자동차 업계의 협업이 더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