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궁금증을 풀어드리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재미로 가볍게 읽으면서 궁금증도 해소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회는 ‘악수(握手, Shaking Hands)’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다양한 의미의 악수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누군가를 만났을 때 상대방의 손을 잡는 인사법을 악수라고 하죠.

부드럽게 상대의 손을 잡는 사람도 있는 반면 우악스럽게 상대의 손을 움켜쥐는 사람도 있고, 오래도록 손을 놓지 않고 흔들어 상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악수를 하면서 자신의 악력을 과시한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거죠.

기선을 제압하는 방법 치고는 참으로 원시적이고 치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네 깡패라면 모를까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말이죠.

악수는 서양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였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터기 지방에 남아있는 조각상에 남자 둘이 악수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요. 기원전 50년 경 제작된 것이라 합니다.

악수는 남자들끼리 서로 무기가 없으니 안심하라, 혹은 우리는 친구라는 의미로 나눈 인사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남자들이 만나면 악수를 나누는 경우가 상당히 많지만 남자 대 여자, 여자 대 여자의 만남에는 악수가 동반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수가 무기가 없음을 표시한다는 의미에서 기원했으니, 무기를 가지지 않은 여자가 악수를 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악수에는 비즈니스적인 이미지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양에서 유래하긴 했지만 악수는 적어도 2천년 이상 중요한 인사법의 하나로 통용이 되었습니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는 악수도 있습니다.

1945년 7월 23일 포츠담에서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 영국의 처칠 수상, 소련의 스탈린 총리가 3자 악수를 했습니다.

2차 대전 후 거의 50년 동안의 세계 질서를 결정짓는 약수였죠. 전후 한국의 독립을 확인하는 것도 이 악수에 담겨 있었던 의미 중의 하나였습니다.

2018년 6월 12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악수를 했습니다.

이 악수의 의미는 아직 역사적으로 판정이 나지 않은 미완의 악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명장면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이렇게 악수는 세계사의 명장면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진=미국 백악관 페이스북]
지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제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 악수를하고 있다. [사진=미국 백악관 페이스북]

손은 생화학 무기

코로나 19 펜데믹 이후 악수 인사법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지난 4월 영국의 BBC에서는 ‘악수는 생화학 무기를 내미는 행위’라며 다른 인사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악수는 무기가 없는 손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량의 세균이 있는 위험한 손을 내미는 행위로 판명이 난 것이죠.

사실 이런 주장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미국의 29대 대통령인 워딩이 재임하던 시절, ‘대통령 악수 금지법’이 미국의회에 제출된 적이 있습니다.

미남 대통령이었던 워딩이 후보 시절 워낙 악수를 많이 해서, 혹 세균이 전염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런 법이 제출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법안은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도 세균의 정체를 알긴 했지만, 그 위험성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던 거죠.

사회적 거리두기, 물리적 거리두기 등의 거리두기가 중요시 되는 요즘에는 악수를 하지 않는 것은 신체적 거리두기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악수 대신 피스트 범프(fist bump)가 권장되기도 합니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자주 사용한 인사법이기도 하고 스포츠에서 선수들이 종종 사용하는 인사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주먹치기’ 혹은 ‘주먹인사’ 정도가 되겠지요.

앞으로 악수 대신에 주먹인사나 눈인사, 손바닥을 펴 보이는 인사법 등 신체적 거리두기에 해당하는 인사법이 보편화되어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악수 대신 국가나 공동체의 특성과 관습과 정서에 맞는 신체적 거리두기의 인사법이 서서히 정착해 나가겠지요.

악수로 대체한 결혼식 세레모니

위에서 언급한 세계사적인 악수 정도는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린 악수도 있었답니다.

1925년 12월 7일 동아일보에 “박열 결혼식은 악수로” 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무소 회의실에서 거행될 듯.

일본 옥중에 있는 박열 부부의 옥중결혼식에 대하여는 긔보한 바 어니와 그 동안 정식으로 결혼 수속을 이삼일 중에 마치고 시곡형무소 회의실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거행하리라는데 두 사람은 악수정도를 허한다더라(동경전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영화로도 나왔지만 박열은 1902년 경북 문경 출신으로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무정부주의 운동에 투신하였으며 비밀결사 흑도회를 조직하였죠.

1923년 그의 애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협조를 얻어 일왕 암살을 실행하려던 직전에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1925년 재판을 받는 와중에 박열과 가네코는 결혼을 하기로 하였답니다.

결혼이란 신체의 접촉을 전제로 한 것인데 둘 다 옥중에 있으니, 신체적 거리를 좁힐 방법이 있어야 하겠지요.

다행히 이들은 둘 다 도쿄의 이치가야(市谷)형무소에 갇혀 있었고, 이들의 사정을 일본 사법당국은 잠시 눈을 감아 주었습니다.

형무소 회의실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과 그 결혼식에 세레모니로 둘이 악수 정도를 하는 것은 허용하기로 했답니다.

이 결혼 소식은 조선 민중들에게는 화제가 되었습니다. 신문사에서는 이 결혼식을 취재하기 위해 도쿄로 특파원을 파견했고, 박열의 친형 역시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북 문경에서 도쿄로 갔던 거죠.

우여곡절 끝에 박열과 후미코는 사형선고를 이틀 앞둔 1926년 3월 23일 정식으로 혼인신고서를 제출해서 합법적인 부부가 되었죠.

악수를 했는지는 후속 보도가 없어 알 수가 없습니다. 아나키스트에게 합법적인 결혼이란 사실 우스운 것이기도 하죠.

가네코는 3월 25일 재판정에서 “나는 박열을 사랑한다. 그의 모든 결점과 과실을 넘어 사랑한다... 우리 둘을 함께 단두대에 세워 달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만족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죠.

이들은 열흘 후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형이 됩니다만, 가네코는 그해 7일 23일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형무소 측에서는 자살이라고 했지만, 일본인에 의한 타살이라고 봐야겠지요. 이렇게 가네코 후미코라는 일본 여인은 박문자라는 조선 여인이 되어, 고작 23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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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의 운명

악수의 기원이 무엇이건 악수의 역사적 의미가 무엇이건, 코로나19 이후 악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미는 행위는 “나의 생화학 무기를 받아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나와,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성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악수는 코로나19 이전의 보편적인 인사법의 위치로 돌아가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악수의 종말까지는 아니겠지만, 악수는 다른 인사법으로 서서히 대체되겠지요.

그래도 연인끼리, 부모 형제끼리, 친한 친구끼리 다정히 손을 잡는 것이야 사라지겠습니까?

세균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것은 사람간의 소통과 사랑의 확인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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