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와인의 역사

루마니아 와이너리 [사진=플러커닷컴]
루마니아 와이너리 [사진=플러커닷컴]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와인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 전파 역사가 크게 세 개의 시기로 구분되어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와인의 발상지라고 추정되는 조지아에서 출발하여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집트와 페니키아인들의 지중해 해상무역을 타고 크레타섬, 그리스를 지나 이탈리아에 도달하는 와인의 고(古)시대라 칭할 수 있는 시기가 하나다.   

로마제국의 서유럽 정복사를 타고 프랑스, 독일, 이베리아 반도로 전파된 중시대이고 마지막 근대사가 16,7세기의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개척으로 인해 남아공, 칠레,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와 뉴질랜드로 퍼져 나간 시기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면 4번째 현대사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서 유럽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고 소비에트 연방(소련) 체제하에 있던 중·동구 유럽 국가들의 와인이 세상에 알려지는 시기인 19·20세기가 이에 해당되겠다.

그런데 중시대인 로마 제국시대에 로마가 서진만 한 것이 아니라 동진을 해서 오늘날 중, 동구 유럽과 중동아시아 지역, 아프리카 북부의 지중해 연안을 모두 자신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이때 와인 역시 로마의 서진을 따라 동유럽으로 전해졌지만, 그런 와인에 대해서는 그동안 잘 언급되지 않았고, 당연히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유럽의 알코올 벨트 붉은색 : 와인, 노란색; 맥주, 하늘색 : 보드카(증류주) 서구 유럽과 동구 유럽은 와인이 대세인 걸 이 지도에서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래픽=위키디피아]
유럽의 알코올 벨트 붉은색 : 와인, 노란색; 맥주, 하늘색 : 보드카(증류주) 서구 유럽과 동구 유럽은 와인이 대세인 걸 이 지도에서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래픽=위키디피아]

이 지역들은 냉전시대가 끝나는 1991년까지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 체제하에 있다 보니 서방세계나 아시아 지역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설사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이들 지역의 와인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이 지역의 와인들과 이에 대한 역사는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주인공이나 주역만이 각광받다 보니 지식의 편식이 낳은 결과랄까 문화나 문명의 변두리 지역이 갖는 숙명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결국 와인의 역사 기술도 유럽 문명의 발달사와 전파사 그리고 식민지 개척사와도 직결되고 거대 시장과 소비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냉전시대가 낳은 정보 부족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지식의 편식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세인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있다가 20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역이 동구 유럽 와인이다.

이 중에서도 비교적 큰 나라 한 곳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대략적인 이 지역의 흐름을 개관해보자.

지도에서 나라별 면적으로만 봐도 루마니아가 제법 큰 나라에 속한다. [그래픽=구글지도]
지도에서 나라별 면적으로만 봐도 루마니아가 제법 큰 나라에 속한다. [그래픽=구글지도]

와인 전파 역사상 고시대에는 지리적인 조건을 통해 보더라도 조지아에서 시작된 와인이 남하하여 중동지방과 지중해를 거치는 루트이외에도 흑해를 건너 그리스 위쪽의 발칸반도 중,북쪽 지역(오늘날 터어키, 불가리아, 몰도바, 루마니아, 세르비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로베이나 등의 지역)을 지나서 북부 이탈리아 지역으로도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이 루트가 내륙지역이라 해상지역보다는 전파 속도가 늦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이 재미있는 것은 최초로 전파해준 루트를 돌이켜 로마제국의 동진을 통해 더 발전된 기술로 와인 문화가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즉 포도를 먼저 재배했으나 더 발전된 농법과 양조기술이 도입되어 이 지역 와인 문화가 보다 활발하게 전개되고 발전한 시기는 로마 제국이 중앙 아시아쪽으로의 동진의 역사를 통해서부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그동안 지식의 편식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국제 와인 품평회에서 만난 루마니아 와인 전문가와 아시아 와인 트로피 및 베를린 와인 트로피의 한국 디렉터의 주선으로 2018년 11월말에 처음 루마니아를 방문할 기회를 통해서다. (이 칼럼을 쓰면서 새삼 이 분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2014년 즈음하여 베를린에서 개최된 베를린 와인 트로피에서 루마니아 와인 전문가를 처음 만났을 때 떠오른 생각은 “아! 거기도 와인이 나나? 위도상 북위 30~50도 지역에 속하니 지역적으로 와인이 생산되는 와인 존(wine zone)에는 들어가긴 하네. 게다가 조지아가 와인의 발상지라고 하니 그 근처 나라니까 거기도 나겠지(사실 근처라고는 하지만 지도를 찾아보면 흑해를 사이에 두고 서로 가장 먼 거리로 반대쪽에 있다).” 정도 였다.

그리고 이어서 “ 루마니아 와인이라… 그 맛과 향이 궁금하긴 하네, 혹시 뱀파이어들도 마신다는 불로장생의 와인 아님? 드라큘라 백작이 마셨다는 와인일까? 근데 와인이 맛있을까?” 등등의 다양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는 한국 시장에서 시장성이 그다지 없을 것 같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선입견을 극복하려면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또 다른 선입견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다가 막상 루마니아를 방문하게 되었으니 루마니아 와인의 역사를 찾아보고 이를 현지에서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루마니아의 와인 역사 

오늘날 루마니아는 뱀파이어의 나라와 드라큘라 백작으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포도재배의 역사는 6000년이 넘었고 2000년 전부터는 와인으로도 주변국가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나라였다.

이 지역이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와 중동 사이에 발칸반도 북쪽에 위치하면서 여러 민족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지역 자체가 외적의 침입들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러다가 제대로 된 국가 형태로 한 민족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 BC 1세기~ AD 2세기 까지 약 300년간 존재했던 다키아(Dacia)왕국이다.

그런데 이 시기 이전부터 포도 재배와 와인이 존재했던 것으로 역사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다키아의 여러 부족을 최초로 통일하였던 부레비스타(Burebista)왕(BC 82~BC 44)은 사방의 외적들이 품질 좋은 와인 때문에 나라를 침공하는 것이라 하여, 적의 침공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포도원을 불살라버렸을 정도라고 하니 당연히 포도재배는 그 이전부터 였다고 자연스럽게 추정된다.

따라서 이 루트를 타고 와인이 서쪽으로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브레비스타 왕 시절의 영토. [그래픽=위키피디아]
브레비스타 왕 시절의 영토. [그래픽=위키피디아]

그리고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리스 전사들이 와인을 구하러 이 지역으로 들어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이 지역의 와인이 유명했다고 하니 이 추정을 확실하게 뒷받침해준다.

이 왕국의 마지막 왕인 데케발루스(Decebalus(AD 87~106))왕은 비록 최종적으로는 패망했지만 당시 최대로 강성했던 로마 제국과의 세 번의 전투 중에서, 로마 제국이 역사상 최대의 전력을 동원했다고 하는 로마와의 첫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했던 왕으로 현재 루마니아에서 용맹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존재다.

이 시기는 바로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는 도미티아누스(AD 81~96)황제와 트라야누스(AD 98~117) 황제 시절이었다.

이 왕국이 패망하면서 로마의 속국이 되었고 로마제국이 무너지면서 아래 표와 같이 이 지역이 주변 강대국들의 등장에 따라 2~3개로 분리와 통합을 반복하다가 근대에 들어와서 루마니아로 자리잡게 된다. 

[표=나무위키]
[표=나무위키]

근대 루마니아는 1859년에 자치국들의 연합국형태로 결성되기 시작하여 루마니아라는 명칭은 1866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고 1877년 오토만 제국(Ottoman Empire ;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서 독립하게 된다.

그리고 1,2차 세계 대전을 치르면서 현재의 영토를 확정 짓게 되고 2차 대전 직후 소련에 의해 강제 점령당하면서 이웃의 몰도바 공화국과는 달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1922~1991; 소련)소속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공화국 체제로 되었다가 1989년 혁명을 통해 현재의 시장경제와 민주 공화국 체제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1955년 UN에 가입하고 2004년 NATO에 가입하고 2007년에는 드디어 EU에 가입한다.

그런데 이 나라가 독특한 것이 2차 세계 대전 직후 1960년대 중반까지 소련군이 상주하면서 사실상 소련의 영향력 하에서 국가의 부를 착취당했음에도 불구하고 1965년부터 독재자 차우세스크가 등장하면서 외교전을 펼쳐 서방세계나 세계 각 나라들과 국교를 맺으며 소련의 영향권에서 서서히 벗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외국으로부터 차입한 국가 부채가 늘어 그는 사회주의 공화국의 기치하에 국민 경제를 파탄이 날 지경으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일단 1989년에 유럽 국가들과의 부채를 전액 상환했다.

그런 그가 그러한 독재로 인해 그 해에 처형되고 말았다는 것은 또 다른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이런 루마니아 역사는 결국 이 긴 기간 동안에 와인 산업 역시 착취당하고 피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2000년이 넘는 와인 역사지만 지리상의 위치로 인해 정치, 경제적 부침에 따라 루마니아 와인 역사도 어쩔 수 없이 부침이 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1872년경에는 유럽의 필록세라가 이 지역에도 들어와서 와이너리들을 황폐화시켰고 이를 극복하는 것은 20세기 초반에서야 겨우 가능했다.

그래서 필록세라의 피해 이전에는 각 지역별로 지역 토착품종으로 차별화가 되어 있었으나 필록세라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로 프랑스 품종 위주로 심거나 교배종을 심게 되어 지금은 지역별로 국제 품종과 토착 품종이 혼재되어 있다.

이런 루마이나 와인 역사에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것은 루마니아의 2007년 EU가입이었다.

201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EU의 지원을 받아서 전통적인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는 규모가 더욱 커졌고, 서유럽이나 미국 등 신대륙의 와인 생산자들이 저렴한 지대(地代)와 인건비를 찾아 현지에 투자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예 설립 초기부터 서유럽이나 신대륙의 유명 양조가들을 초빙하여 세계 와인 시장에 맞는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하는 신생 와이너리들도 대거 생겨나게 되었다.

따라서 루마니아에는 루마니아 전통 스타일과 서유럽 스타일, 그리고 신대륙 스타일의 와인이 공존하게 되어 와인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가 되었다.

지금 루마니아를 방문하면 한 나라에서 이 세 가지 스타일들을 동시에 비교해볼 수도 있게 될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보인 것이다.

달리 보면 루마니아가 세계무대로 재등장하기까지는 무려 2000년이나 걸린 셈이 된다.

이쯤이면 이런 루마니아 와인의 특성이 궁금해지게 될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기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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