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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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 1.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는 지난 6월 1일 '2019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 후 국토교통부 게시판에는 수많은 항의성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다.

“왜 여성배우자만 만 49세로 한거임? 기준이 뭔데? 국가기관에서 이렇게 대놓고 공공연하게 남녀차별을 일삼네?”

“신혼부부 가구 기준에서 '여성배우자의 연령이 만49세 이하인 가구' 로 정한 이유가 뭔가요? 임신 및 출산이 가능한 나이이기에 정한 거라면 국가가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로 보는 거 아닌가요? 기준 변경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혼부부의 기준에 왜 여성의 나이만을 제한하는지 설명하세요. 20세 여성이 70살 남성과 결혼하면 신혼이고 50세 여성이 20세 남성과 결혼하면 결혼 10년차 입니까?”

국토부의 신혼부부 정의 때문에 벌어진 사단이다. 국토부는 “신혼부부 가구란 혼인한지 7년 이하이면서, 여성배우자의 연령이 만 49세 이하인 가구를 말함”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국토부가 여성의 나이를 49세 이하로 한정한 것은 신혼부부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정상적인 국가는 강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구를 적정한 수에서 관리할 책임이 있었다.

인구는 너무 많아도 혹은 너무 적어도 곤란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때는 산아제한 정책을 폈지만, 지금은 반대의 정책을 펴고 있다.

국토부는 정부기관이기에 이러한 정책에 충실했다. 49세 이상 여성은 아이를 낳기 힘든 나이니, 아이를 낳지 않는 신혼 가정에 혜택을 줄 필요가 없다는 발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국토부의 이런 정의에 당장 수많은 국민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국토부는 재빨리 진화에 나섰다. 다음날인 6월 2일 바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 보도자료의 제목은 “향후 주거실태조사부터는 신혼부부 조사 기준을 개선하겠습니다”이다.

국토부는 “주거실태조사 수행기관인 국토연구원에서는 관례적으로 신혼부부 가구의 범위를 ‘혼인한 지 7년 이하, 여성배우자의 연령이 만49세 이하인 가구’로 조사해 왔습니다.”라고 솔직히 인정한 다음, 두 가지 사항에 대해 약속했다.

첫째, 신혼부부 중 여성배우자의 연령을 제한하는 것은 성평등 가치에 부합하지 않고 정책이 성차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만큼 향후 주거실태조사부터는 연령제한 기준을 폐지한다.

둘째, 정부에서 추진 중인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입주자격, 청약기준, 금융지원 대상

기준 등에서는 전혀 여성 배우자의 연령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이렇게 하여 국토부의 ‘신혼부부 여성 49세 기준’은 하루 만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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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난 5월 22일에는 일부 신문에 아주 특이한 기사가 보도되었다.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서 은행나무 암나무에 표찰을 부착해 관리한다는 것이다.

안양시의 시목(市木)은 은행나무로, 만안구 지역내 가로수 7000그루 중 은행나무는 약 3400그루이며 그 중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는 1000그루 정도다.

만안구청장은 이 은행나무에 대해 6월 20일까지 암나무임을 표시하는 기호(♀)가 새겨진 일정한 규격의 표찰을 시민들 눈높이에 맞춰 부착한다고 발표했다.

가을철 은행 열매로 인한 악취 등의 민원을 미리 해결하기 위한 행정 조치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만안구청장은 은행나무 열매 냄새 민원 해소를 위해 선제적인 행정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과 안양여성연대는 이 정책에 크게 반발하며 지난 1일 성명서를 냈다.

“나무에 여성 표식을 달아서 ‘암나무는 악취가 나고 해악을 끼치므로 피해야 한다’고 알리는 낙인찍기”이며, “상징적 기호를 통해 여성성을 배제하고 공격하고 정복할 대상으로 인지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만안구청은 지난 3일 그동안 설치했던 암나무 표시 기호(♀) 표찰 150여개를 다시 떼냈다. 만난구청 관계자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으나 예상 못한 반응이 나와, 여성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 3. 이 두 가지 예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정부 기관 혹은 지방자치단체 정책 담당 실무진의 성인지감수성 부족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남녀평등에 대한 전반적인 시민의식이 매우 성숙했으나,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은 4, 50대 이상 남성 중 상당수가 세밀한 측면에서는 여전히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다.

이들 4, 50대 남성이 아직은 공무원 사회의 정책 실무를 결정하는 주도적 세대다. 다행한 것은 이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모르지만, 눈치껏 재빨리 행동한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남성들 대다수는 은행나무에 생물학적 암컷 표시를 한 것 때문에 왜 여성들이 반발하는지를 잘 모른다.

여성들이 그러한 표시가 “공권력이 자연과 생식을 통제하고 있음을 전시”하는 것이라고 반발해도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남성으로서의 늘 당당한 삶을 누려왔기 때문이다. 여성성의 피지배에 대한 공포를 남성은 이해하기 힘들다.

하응백 문화에디터.
하응백 문화에디터.

앞으로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가부장적이며, 성인지감수성에 미치지 못한 암초들이 즐비할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각인된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을 짧은 시간 내에 다 몰아내기는 힘들다. 이번 두 가지 예에서 보이는 것처럼 잘못된 점은 지적하고, 고칠 것은 재빨리 고쳐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지 아니한가. 불과 며칠 만에 두 사건 모두 바람직한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런 문제는 성의 대결도 아니고 자존심 문제도 아니다.

성적 정체성, 인종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갈 길은 멀지만 이미 우리사회는 그 길에 깊숙이 들어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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