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서정, 진여眞如한 사랑을 찾아서

‘제일로 작은 그릇’, 구재기 著, 천년의 시작 刊.
‘제일로 작은 그릇’, 구재기 著, 천년의 시작 刊.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구재기 시인의 시집 『제일로 작은 그릇』이 시작시인선 0328번으로 출간되었다.

구 시인은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시집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 시선집 『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 외 다수를 출간하였다.

시집 『제일로 작은 그릇』은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려 궁극적으로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구재기 시의 핵심은 세계를 불교의 연기(緣起)를 통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의 상호 관계를 통해 바라본다.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에 따라 시인은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 “인연”에 의해 작동한다는 섭리를 깨닫게 된다.

한편 그의 시에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과 애틋함이 깃들어 있으며, 이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이어진다.

해설을 쓴 차성환 시인은 시집 『제일로 작은 그릇』에 대하여 “구도자(求道者)와 같은 자기 수행의 결과물이자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씁쓸하고 애틋한 마음의 연서(戀書)”라 평했다.

요컨대 이번 시집은 억겁의 시간 속에서 찰나와 같이 짧게 명멸하는 모든 존재를 위무하고 애도하는 헌시(獻詩)라 할 수 있다. 구재기의 시는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에 대해 짐짓 초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지만 결코 탈속(脫俗)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타자화하여 삼라만상과 존재의 근원을 밝히 드러내 보인다. 이때 시를 통해 드러나는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대상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시인의 오랜 문학적 수행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아래는 차성환 시인의 해설 일부.

구재기 시인의 시집 『제일로 작은 그릇』은 구도자(求道者)와 같은 자기 수행의 결과물이자 사라지는 존재들에 대한 쓸쓸하고 애틋한 마음의 연서(戀書)이다. 그는 “정념(情念)의 액즙”(「수박」)으로 혼탁한 이 세상의 “분별할 수 없는 인연(因緣)” 속에서 “진여(眞如)한 내 사랑”(「연꽃 사랑」)을 찾는다. 모든 ‘인연’ 속에 숨어있는, 타인을 향한 무한한 ‘사랑’을 마음의 눈으로 헤아린다.

나라는 존재가 죽음에 의해 한순간에 흩어지듯이 내가 마주하는 모든 인연들도 억겁의 시간 속에서 찰나와 같이 짧게 명멸하는 존재들이다.

이 세상의 물성이 가진 생의 허무를 감지하는 마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작동하는,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과 애틋함을 감히 불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구재기 시인은 “돌부처”와 같이 삶과 죽음에 초연한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그의 몸은, 조금은 생의 아름다움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구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아래와 같은 시편은 더욱 빛이 난다. 아련한 서정이다.

태산목 하얀 꽃을

그리도 덩달아 좋아하더니

무슨 까닭으로 돌아간 것일까요

아침에 불던 맑은 바람처럼

눈부신 햇살 품은 이슬처럼

잘 웃던 웃음조차

함께 사라져버린 오후

텅 빈 뜨락에 서서

태산목꽃 홀로 피고 있으니

차라리 그 향기에나 묻혀야겠네요

장지문으로 다가서는

한낮의 허기진 구름 무리

웃다 울다 지쳐버린 눈물 자죽처럼

메말라 붙어버린 가슴속 아픔을

한 올 한 올 꺼내 보아도 되겠지만

이제는 정말

싸늘히 아름다워지던

뒷모습이나 그려볼 수밖에 없네요

향기 아슴아슴 피워 올리는 태산목

꽃잎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면

젖은 눈조차 감은 채로

저절로 자라나는 슬픔이나

아낄 대로 아껴가며 살아야겠네요

(「태산목꽃 피던 날」전문)

구재기 시인은 충남 서천 출생으로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모시올 사이로 바람이』, 시선집 『구름은 무게를 버리며 간다』 외 다수. 충남문인협회장 및 충남시인협회장 역임했고, 충남도문화상, 시예술상본상, 충남시협본상, 한남문인상, 신석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구재기 시인.
구재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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