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암실에서 세상을 재구성하는 깨달음의 시

‘하모니카를 찾아서’, 이강산 著, 천년의 시작 刊.
‘하모니카를 찾아서’, 이강산 著, 천년의 시작 刊.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이강산 시인의 시집 『하모니카를 찾아서』가 시작시인선 0330으로 출간되었다.

시집 『하모니카를 찾아서』에서 시인은 일상의 흔한 풍경에서 존재의 심연을 발견하는 견자見者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다.

여기서 존재론적 탐구의 대상은 존재의 시원을 의미하는 고향이며, 시인은 근원적 고향을 상실하여 정처 없이 떠도는 시적 화자를 순례자 혹은 방랑자의 모습으로 그린다.

한편 시인의 삶에 대한 갈증과 불안은 곧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져 시적 긴장감과 함께 존재론적 고뇌가 깃든 사유를 이끌어낸다.

가령 죽음에 대한 시인의 불안은 일상에서 죽음의 징후를 포착하기에 이르면서, 존재론적 전환에 대한 열망과 유한자로서의 한계가 충돌하는 지점을 발생시킨다.

해설을 쓴 이명원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죽음에 대한 시인의 존재론적 인식은 “존재자의 무상성과 유한성을 강하게 예감하게 만드”는 한편 “생멸(生滅)의 과정”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존재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증표라는 데까지 다다른다.

이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욕망이 무無의 세계로 환원되는 순간, 삶과 죽음은 결코 별개의 차원으로 분리시킬 수 없는 동시적 현존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능케 한다.

죽음을 의식한다는 것은 곧 삶의 유한을 자각하는 일이기에, 시인은 시간성에 의존하여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다.

그는 자신의 뿌리가 되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존재 증명을 시도하며, 찰나에서 영원을 포착하는 사진가처럼 시의 언어를 통해 존재론적 시원으로 회귀하는 순간을 담아낸다.

이 시집을 펴내며 이강산 시인은 “사람의 말이 한 마디도 닿지 않는 날이 늘어간다./ 외연도 동백처럼 홀로 붉어지는 날들이다./ 길 떠나면 어디서든 섬이 되고/ 어디서든 내가 피고 진다.”라고 말한다.

어디서든 피고 질 수 있는 공력을 획득한 탓이다.

짧지만 확신이 가득한 시 한편을 보자.

흐린 기억들이 나를 맑게 한다

기억의 탁류에 휩쓸려 여기까지 왔다

오는 동안 자정自淨을 거듭했으니

나 한 컵 따라서 마실 만하겠다

(「탁류」전문)

자정을 거듭해서 시인은 이제 맑은 물 한 컵으로 남았다.

사진 동지이기도 한 지리산의 이원규시인은 이렇게 이강산 시인을 평한다.

이강산 시인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예인이다.

자신만의 암실, 절대고독의 암실에서 부조리한 세상을 재구성한다. 상투적인 빛과의 단절을 통해 새로운 통정을 꿈꾼다.

그리하여 문장은 빛나고 시의 농도는 더 웅숭깊다. 때로는 행과 행 사이가 너무 깊어 난해한 듯하다가 ‘달방 월세는 18만원, 그녀의 몸값은 3만원’에서처럼 어느새 울컥, 살갑게 다가앉는다. 자주 아프고 슬프지만 톱 장수 이 씨, 그의 아버지는 이 세상 곳곳에 살아있다.

카메라로 시를 찍고 소설을 담아내는 그는 “고향여인숙 9호실”의 “마지막 손님”이다. “외로워야 먼 길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챈 시인, “백 년쯤 홀로 견딜 만하겠다”는 시인이 이 세상 그 어디에 또 있으랴.

이강산 시인, 그는 철거촌과 여인숙을 흑백사진으로 담아내는 마지막 목격자이자 우리 시대의 소중한 증인이다.

이강산 시인.
이강산 시인.

이강산 시인은 충남 금산 출생,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 시작했다.

시집 『모항母港』 『물속의 발자국』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소설집 『황금비늘』, 장편소설 『나비의 방』, 흑백명상사진시집 『섬, 육지의』, 휴먼다큐흑백사진집 『집-지상의 방 한 칸』 등을 출간햇다.

「휴먼다큐」 아날로그 흑백사진 개인전 5회 개최하기도 했다.

2014,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시 부문), 대전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소설 부문)을 수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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