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평생도 중 '돌잔치', 18세기 말~19세기 초, 비단에 채색, 53.9cm×3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자 미상, 평생도 중 '돌잔치', 18세기 말~19세기 초, 비단에 채색, 53.9cm×35.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이 그림은 평생도(平生圖:)의 첫 장면으로 돌을 맞은 아기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돌잡이를 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생애 첫 생일을 맞은 아이가 앞으로 건강하고 훌륭하게 성장하여 혼인식도 치르고, 과거에도 급제하여 좋은 벼슬자리에 나아가, 부와 명예가 함께 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아 그린 것이다.

돌은 아기가 출생하여 처음 맞는 생일로, 아이가 태어나서 꼭 1년이 되는 날인 돌을 기념하는 것은 매우 오래 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풍속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문집과 일기에도 돌잔치와 돌잡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돌잔치는 빈부와 신분, 지위고하, 지역을 막론하고 웬만한 집에서는 다 하는 행사였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펴낸 『한국일생의례사전』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돌을 기념하는 의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돌에는 아이에게 돌 빔을 지어 입히고 잔칫상을 차려 돌잡이를 하는 것으로 생후 1년이 되었음을 기념한다.

돌 빔은 이전까지 입던 흰색 위주의 옷에서 벗어나 원색 옷감으로 화려하게 만들고, 쓰개에서부터 신발, 장신구에 이르는 일습을 모두 갖추어 입힌다.

돌날 아침에는 삼신상을 마련하여 아이의 건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가족이 모여 미역국과 쌀밥을 나누어 먹는다.

또한, 가까운 친척과 지인을 초대하여 잔치를 여는데, 이때 돌상 위에 활과 화살, 책과 붓, 쌀과 돈, 실타래, 가위와 자 등 성별에 따라 다양한 물건을 늘어놓고 아이가 무엇을 잡는가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는 돌잡이를 한다.

―『한국일생의례사전』, 국립민속박물관, http://folkency.nfm.go.kr/kr/topic/detail/107

그림에서 첫 돌을 맞은 남자 아이는 굴레를 쓰고, 색동저고리 위에 푸른색 전복을 입고, 붉은색 돌띠를 매고, 돌 주머니를 차고 있다.

아이의 앞에는 붉게 칠을 한 주칠반이 놓여있고, 그 위에 돌잡이를 하기 위해 활과 붓, 실타래 등이 돌떡과 함께 놓여있다.

아이의 왼쪽 옆으로는 포를 입고 갓을 쓴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고, 그 왼쪽에는 하객으로 보이는 남자가 푸른색 포를 입고 갓을 쓴 채 앉아 있다.

아이의 오른쪽 옆에는 삼회장저고리를 입고, 얹은머리를 한 여인과 족두리를 쓰고, 노란색 저고리에 붉은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같이 앉아서 아이의 시중을 들고 있는데, 이 여인들은 돌을 맞은 아이의 어머니와 친척으로 보인다.

집 마당에는 앞치마를 입은 여인들과 댕기머리를 한 어린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돌잡이 장면을 보고 있고, 그 옆으로 병아리를 몰고 가는 암탉과 암탉을 따라가는 수탉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으며, 강아지 한 마리가 느긋하게 엎드려 있다.

담장 밖 매화나무는 이제 막 꽃망울이 터졌고, 사람들이 모여 앉은 마루에는 화로가 놓여있다.

화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쌀쌀한 날씨인 듯한데, 경사스러운 날이어서인지 마루에서 돌잔치를 열었다.

이 그림은 등장하는 사람들 외에도 건물에 대한 묘사 또한 매우 꼼꼼하고 자세하며, 마치 담장 위에서 건물의 실내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부감법(俯瞰法)을 사용하여 그렸기 때문에 집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평생도는 조선 시대 사대부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맞이하게 되는 중요하고 경사스러운 일생 의례와 관직 생활의 장면을 시간 순서로 그린 그림이다.

기본적으로는 8폭 병풍으로 평생도를 그렸지만, 나중에는 몇 장면이 추가되어 10폭이나 12폭 병풍으로도 평생도가 제작되었다.

8폭으로 평생도를 구성하는 경우, 장면은 돌잔치·혼인식·삼일유가·최초의 벼슬길·관찰사 부임·판서 행차·정승 행차·회혼례의 순으로 구성된다.

평생도의 마지막 장면이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 장면이라는 것은 행복하고 이상적인 삶이 일평생 지속되기를 염원했던 조선 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보여준다.

현재 남아있는 대부분의 평생도는 모당 홍이상(1549~1615)의 일생을 그렸다고 전해지는 《모당평생도》의 구성과 내용을 본떠서 그린 것이다.

《모당평생도》는 단원 김홍도가 그렸다고 알려져 있으나, 서명에 쓴 글씨와 그림의 수준, 기법 등으로 볼 때, 김홍도의 작품이 아니라, 후대의 화가가 김홍도의 화풍을 모사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평생도는 실제 삶의 궤적을 시간의 변화 순서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꿈꾸고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을 조합한 것이다.

따라서 《모당평생도》 병풍에 수록된 그림도 홍이상의 실제 삶과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평생도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주로 제작되었고, 평생도라는 명칭은 근대 이후에 붙여진 것이다.

【참고문헌】

조선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윤진영, 다섯수레, 2015)

조선후기 평생도 연구(최성희, 이화여대 대학원 석사논문, 2001)

한국의식주생활사전-의생활편(국립민속박물관, 2017),

한국일생의례사전(국립민속박물관, http://folkency.nfm.go.kr/kr/topic/detail/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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