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옛날 욕심 많은 왕이 손에 닿는 것마다 황금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신은 소원대로 해 주었다.

왕은 닥치는 대로 황금을 만들어 탐욕을 채웠다. 그런데 딸이 달려와 안기자 그마저도 금붙이가 된다.

대성통곡하며 딸을 다시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마타리 꽃으로 환생했다. 욕심쟁이 왕 이름은 미다스(Midas).

마타리는 희생적인 사랑의 상징이다. 꽃은 초가을까지 노랗게 피고 잎에 잔잔한 톱니가 있다.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뿌리에서 썩은(敗) 된장·젓갈(醬) 냄새 난다고 패장(敗醬)이라 했다.

그러나 민간에선 열을 내리고 고름을 없애 이뇨(利尿)·맹장·자궁염·충혈·종기에, 잎을 말려 막걸리에 가루로 타 먹으면 치질에도 효과 있다고 알려졌다.

뚝갈과 구분하기 어렵지만 꽃이 피면 뚝갈은 흰색이다.

“마타하리, 마타리, 말다리, 막타리.”

“되게 헷갈려.”

“마타하리는 여명의 눈동자 미모의 스파이, 꽃대가 길어서 말다리, 막타리는 아무데나 막 자라는 의미. 타리는 갈기, 거친 땅에 살아 마타리가 됐을 거야.”

“대충 그래.”

궁예의 울음이 이름으로 남은 명성산

8시 30분 명성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북쪽능선으로 계속 걷는데 여러 개 봉우리 뒤로 왼쪽이 주봉이다.

그 너머 멀리 철원평야 옛 도읍지. 패장(敗將)이 된 궁예가 이산으로 도망쳐 왔으니 얼마나 원통했겠는가?

한을 가질만한 산이다.

미다스 왕처럼 탐욕이 넘친 건 아니었나? 철원에서 왕건에게 쫓긴 궁예는 이곳으로 후퇴해 전투를 벌이지만 졌다.

다시 일어설 수 없던 궁예가 소리 내어 울었대서 명성산(鳴聲山), 울음소리 산이다. 예전에는 신라 마의태자가 망국을 한탄하니 산도 따라 울었다고 전한다.

산정호수.
산정호수.

궁예(?∼918년 弓裔)는 후고구려(→마진→태봉)를 세웠다.

신라왕 후궁의 아들로 태어날 때 이(齒)가 있어 죽이도록 했는데, 유모가 떨어지는 궁예를 받다 그만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되었다.

경기·강원·황해도 일대를 차지하여 세력을 떨쳤으나 말년에 스스로 미륵불이라 해서 폐단을 일삼다 부하 왕건에게 쫓겨나 죽었다.

능선길 따라 걷는데 바람은 오른쪽에서 불어와 자꾸 모자를 벗긴다. 잠시 헬기장 지나고 등산 안내판이 있는데 지도와 서로 달라 그냥 짐작하고 앞만 보고 간다.

8시 45분 표지판(삼각봉0.3·정상0.6킬로미터)이 또 있지만 의문스럽다. 말발도리 군락지인데 잎과 줄기를 보니 병꽃나무 사촌쯤 되겠다.

5분쯤 지나 포천 땅 삼각봉(906미터). 곧이어 갈림길(정상0.3·삼각봉0.1킬로미터, 오른쪽 동화저수지)에 닿는다.

능선에서 만난 미타리.
능선에서 만난 미타리.

산안고개 갈림길에서 한달음에 명성상(923미터)정상, 땀에 흠뻑 젖은 일행을 동자꽃이 반겨준다.

아침 9시 땡볕이 내리쬐는 여기는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가끔 으스스한 날 산중에 통곡소리 들린다고 한다.

용화저수지3.1킬로미터, 삼부연폭포 방향 이정표를 보는데 사진을 부탁한다. 부산에서 왔다는 부부다.

서로 찍어주며 이들은 궁예능선으로,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섰다. 산안마을로 내려가면 쉬울 텐데 예측할 수 없어 곧장 능선으로 간다.

철원은 넓고 상서로운 벌판을 뜻하는 서라벌, 새벌, 쇠벌, 쇠를 한자 음으로 철원(鐵原)이 됐을 것이다.

궁예가 도읍으로 삼은 곳이다.

901년 후고구려에서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수덕만세, 911년 태봉으로 바꿨다. 송악 5년을 포함해서 18년 동안 다스렸다.

원래 북한 땅이었으나 한국전쟁 후 주변 지역을 합쳐 현재의 철원이 됐다.

명성산, 멀리 철원평야.
명성산, 멀리 철원평야.

10분쯤 지나 다시 삼각봉에 이르니 미역줄·팥배·소사나무, 분홍 며느리밥풀꽃, 원추리 노란꽃이 땡볕에 늘어졌다.

9시 40분 바위 능선 걷는데 왼쪽으로 사격장 굉음에 뙤약볕, 위험해서 그런지 사람들 그림자 하나 없다.

여름에 올 산은 아닌 것 같다. 포사격 사정거리 벗어난 듯한데 아침 먹던 곳으로 2시간 30분 만에 되돌아오니 10시쯤. 옷은 모두 땀에 절었고 주머니 수첩도 젖었다. 어느덧 해는 하늘 높이 올라갔다.

잠시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니 이 산의 정체를 대충 알 것 같다. 책바위 구간을 따라가는데 빨간 우체통은 여전히 그 자리 섰고, 붉나무는 흰 꽃봉오리 달았다.

10시 15분, 이정표에 잡다한 표시가 왜 이렇게 많은지 헷갈려서 잘 못 알아 보겠다. 산에는 간단명료해야 힘이 덜 들 텐데 복잡하기 그지없다.

산정호수 위락시설 떠드는 마이크소리 요란해도 긴 나무계단을 타고 산 밑으로 내려간다.

5분가량 내려가 책바위 갈림길(비선폭포1.5·자인사1.4·팔각정억새밭정상0.3킬로미터)인데 잘못해서 경사 급하고 돌·자갈 많은 석력지(石礫地)로 내려섰다. 바윗돌이 무더기로 쓸려 내렸다. 지금 다시 올라간다면 죽을 맛.

명성산 오르는 제일 힘든 구간일 것이다.

그나마 고로쇠나무 숲과 산목련·누리장·좀작살·생강·딱총나무 그늘, 매미소리가 싫지 않은데 급경사지로 내려걸으니 무릎에 부담이 온다.

위험구간 조심조심 10시 반, 광대싸리 군락지에 섰다. 싸리와 아카시아 이파리 섞은 듯한데 굵고 키도 크다.

싸리는 콩과(科), 광대싸리는 대극과(科).

광대싸리는 산과 들에 자라는 떨잎 키 작은 나무지만 이곳은 10미터, 굵기 20센티미터쯤 되는 것도 있다.

타원형으로 어긋나는 잎, 흰 꽃은 잎겨드랑이에서 뭉쳐나고 꽃잎이 보이지 않는다. 옛날 소아마비에 두충나무와 섞어 썼다고 한다.

가지를 꺾어 마당 쓰는 빗자루를 만들기도 했다. 어린 싹을 나물로 먹지만 추운 북쪽에선 대나무 질이 나빠 화살대로 썼다.

세종 때 여진족으로부터 군사 요충지 서수라를 지키기 위해 광대싸리 화살을 만들어 서수라목(西水羅木)이라 불렀다.

참나무시들음병 방제 흔적을 쳐다보다 모기에게 물리고 개미떼 습격으로 급히 일어서 간다.

자인사.
자인사.
산정호수의 놀이 배.
산정호수의 놀이 배.

11시경 포천 영북면 산정리 자인사에 닿는다. 천도재를 지내는지 불경소리 되게 요란스럽지만 절집의 물은 정말 시원하다.

자인사(慈仁寺)는 1964년 지은 절. 왕건이 산신제를 지낸 터로 알려져 있다. 절 이름은 궁예의 미륵세계를 상징하는 자(慈), 왕건과 화해를 기원하는 인(仁)을 합친 것이라 한다.

뒷산의 떨어질 듯 한 바위는 볼만한데 군인들이 점심 먹고 가는지 줄서서 내려간다.

소나무길 10분 남짓 걸어 어느덧 산정호수 벤치. 남은 옥수수·감자·토마토 먹는다. 호수에는 오리 배 둥둥, 보트가 연신 물보라를 일으키며 시원스레 미끄러진다.

정오, 여관에 되돌아 왔다. 오늘 원점회귀 전체 산행 14킬로미터 6시간 반가량 걸었다. 방에 들어간 개구리 얘기를 못 해 주고 와서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다.

<탐방로>

● 정상까지 7킬로미터, 3시간 20분 정도

산정호수 주차장 → (20분)책바위 갈림길 → (30분)등룡폭포 → (30분)약수터 → (20분)억새밭 능선 → (5분)책바위 갈림길 → (35분)능선 꼭대기 바위 → (50분)삼각봉 → (10분)정상

* 햇볕 뜨겁고 무더운 바위 산길, 두 사람 걸은 평균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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