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함과는 거리 멀다"...사고 치고 주워 담기 바빠

1996년 11월에 출간된 현대차의 창업주 관련 사진집./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1996년 11월에 출간된 현대차의 창업주 관련 사진집./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세상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법인 북경현대(이하 모두 현대)가 중국에서 고전하는 이유 역시 그렇다고 해야 한다. 

앞 회에서 지적했듯 북경현대가 내세울 핑계거리는 부지기수로 많다.

그러나 한때 잘 나가던 현대를 고전하게 만든 이런 이유들도 인재를 적절하게 잘 활용, 대처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대는 경영상의 실수를 만회하게 만들 경쟁력의 원천인 인재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했듯 기업의 경영문화가 치밀하지 못하면서도 주먹구구식의 닥치는대로 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역시 사례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때는 현대가 중국 직접 진출을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한 지난 1996년 11월경이었다.

당시 현대는 그룹을 지금의 세계적 수준으로 이끈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베이징에서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인생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진집 발간이었다.

베이징 호텔에서 예정된 발간 기념행사는 당연히 대대적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룹의 행사 진행 임원들은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바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회장을 비롯한 그룹 고위층들은 대거 베이징으로 몰려갔다.

손가락으로 꼽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많은 창업주의 아들들 역시 그랬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베이징에 총 집결했다.

여기까지는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문제는 행사 당일 아침 예정에도 없던 각 언론사 베이징 특파원들 대상의 조찬 브리핑을 부랴부랴 마련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현대 입장에서는 화들짝 놀랄 사고도 터졌다.

특파원단의 모 언론사 K기자가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행사의 주인공인 정회장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보이지 않는군요. 그렇다면 아들 중 한 명 정도는 이 자리에 나와서 행사의 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특파원들이 밥만 먹기 위해 이런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아세요.”라면서 별로 나쁠 것 없는 조찬장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바로 일어나 조찬장을 빠져나간 것이다.

다른 언론사 특파원들도 이같은 지적에 동의한 듯 K 기자들 따라 줄줄이 조찬장을 빠져나갔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곤혹스러운 상황을 자초한 현대 임직원들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차라리 오늘 행사 관련 기사가 나가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다.

행사의 주인공이 빠진 상태에서 기사가 나간다면 알맹이 없는 내용이 될 게 뻔했다.

곧 창업주의 비서실장인 L 모씨는 현대 지사장인 S 모씨를 비롯한 현지 임직원들을 불러 모아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결론은 어떻게 해서든 창업주가 불참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특파원들의 이해를 구하고 상황을 원만하게 마무리 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해결책이 없다는 쪽으로 나왔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법인인 베이징현대의 충칭(重慶) 공장 전경. [사진=베이징현대 홈페이지]
현대자동차의 중국 법인인 베이징현대의 충칭(重慶) 공장 전경. [사진=베이징현대 홈페이지]

현대에서는 그래도 비교적 눈치가 빠르고 유능하다는 평가를 들었던 S 씨는 즉각 특파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사죄(?)를 한 후 행사장에 나와 달라고 간청했다.

다행히 특파원들의 이해와 S 씨가 발 빠른 상황대처 덕분에 행사는 별 탈 없이 무사히 끝날 수 있었다.

사실 이 황당한 사고가 나기 전에도 비슷한 사례는 여러번 있었다.

역시 사진집 출판과 관련한 에피소드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진집의 편집을 담당했던 출판업자인 K모 씨의 얘기를 우선 들어봐야 더욱 실감이 나지 않을까 싶다.

“사진집 출간을 위해서는 방대한 분량인 창업주의 사진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현대는 즉각 수천 장에 이르는 사진을 가지고 왔다. 나는 그것들 중에서 나름 의미 있는 사진들을 챙겼다. 그런데 희한한 사진들이 몇 장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여성 연예인들과 현대 창업주 및 그의 지인들이 희희낙락하면서 함께 찍은 사진들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그 창업주에 대한 소문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현대와 가족끼리도 밀접한 사이였던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눈길을 사로잡은 사진들의 장면이 일반 대중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현대 쪽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현대측 담당자는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면서 괜찮다는 얘기가 곧 들려왔다.

그는 사진들의 일부가 나름 의미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진집에 넣겠다는 결정을 바로 내렸다.

얼마 후에는 가편집에도 들어갔다.

그러나 웬걸, 현대에서 전화가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

“혹시 여성 연예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있지 않았나요. 그건 사진집에 넣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K모 씨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으로 가편집하기 위해 골라놓은 사진들을 다시 슬며시 빼들었다.

그리고는 “진짜 한심하군. 중국에 본격 진출한다고 하는데 잘 되겠나 모르겠네?”라면서 자신도 모를 독백을 흘렸다.

기가 막히게도 그의 우려는 사진집이 우여곡절 끝에 출판되고 기념행사도 무리 없이 끝난 후에 본격적으로 현실로 대두하기 시작했다.(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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