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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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나는 대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문학 전공자의 대학원 진학은 평생 연구자(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교수)로 살고자 하는 것을 의미했다.

대학 4학년 때 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하고 싶습니다"라고 상의 드린 적이 있다. 나는 곧장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집에서 뒷바라지는 할 수 있니?”

인문학은 돈이 있어야 하는 공부였다. 전공에 따라 학부 때부터 기업의 지원은 물론 병역혜택까지 받기도 하는 이공계와 달리,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런 외부지원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른바 프로젝트 같은 것도 전무했다.

집에서 받는 지원이 인문학 연구자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느냐 여부를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부모님 또한 ‘공부를 더 하겠다고 하니 힘 닿는 데까지 지원해주자'고 막연히 생각하셨을 것이다.

인문학 전공의 대학원생이 교수가 될 수 있는 확률은, 가톨릭 신학대학 입학생이 신부 서품을 받는 확률과 비슷한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중도에서 작파한다.

박사학위를 받았다 해도 정규직 교수 자리를 얻는 것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진다.

성과를 중시하는 세상에서 눈에 띄는 무엇을 금세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실생활에서도 도무지 어디에 쓰임새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인문학이다.

돈은 돈대로 들고, 실용성·효용성은 보이지 않고, 박사학위를 받고도 밥벌이를 제대로 못하니 대학의 인문학 연구는 날이 갈수록 경시되고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대학과 대학원에서 가성비가 가장 떨어지는 분야이다 보니, 굳이 비싼 등록금 내가며 배울 만한 학문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취업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요즘 대학사회에서, 취업과 관계없는 세상의 고민을 일부러 사서 하는 것은 세상을 잘못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학원 공부를 하려 하는 제자에게 “왜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려고 하니?”가 아니라 “집에 돈은 있니?”라고 하는 교수들의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그 학문의 물질적 생산성이 ‘0’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내가 하겠다고만 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밀어줄 중산층 부모를 가졌다는 것은 나로서는 행운이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 때문에 석사과정만 마치고 그냥 직장으로 나가는 이들과는 또 다르게, 나는 인문학 연구자의 길을 우연한 기회에 어영부영 접고 말았다.

학부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대학원 생활을 남들보다 힘겹게 했고 석사논문을 쓰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 ‘이짓 다시는 하나 봐라'하며 이를 빠득 갈 정도였으니, 다른 분야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을 수도 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직전 나름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가서 사회경험하면서 유학자금이나 벌자' 하고 나는 스스로를 꼬드겼다. 꼬드김은 달콤했다.

글을 다루는 일이라면 대학과 대학원에서 늘 하던 것이었다.

그런 기능적인 일을 하면서 큰돈을 받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언론의 전문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초보 기자여서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했다.

눈에 보이는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돈 먹는 하마'처럼 보이던 문학연구에 비하자면, 돈도 많이 벌고 생산물에 대한 피드백도 바로바로 얻을 수 있게 하는 언론이라는 분야는 싱싱하고 매력적이었다.

대학원 강의시간에 보들레르 시 한 편을 가지고 1년을 넘게 공부했었다.

보들레르가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라고는 하지만 프랑스도 아닌 한국에서 그의 시 한 편을 가지고 그렇게 오래 강의한다는 것은 비싼 대학원 등록금을 감안하자면 가성비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게다가 한창 힘 좋고 머리 잘 돌아가는 20대 중반 연구자 십수명이 시집 한 권도 아니고 시 한 편을 가지고 머리를 싸매며 1년 넘게 씨름한다는 것은 생산성으로 보자면 바보짓도 그런 바보짓이 없었다.

시어의 의미는 비슷한데 단어에 ‘s’ 하나 더 붙었다고, 그게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몇 시간 갑론을박하는지, 외부인이 그 수업을 들여다보았다면 분명히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낭만주의 하면 쉬운 것을, 왜 ‘로망주의'라고 써야 하는지를 따지고 또 따지는 것이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 전공 시인도 아닌 보들레르의 시어 하나하나를 따지고 파고드는 대학원 수업의 효용성은 과연 전무한 것일까.

더군다나 나처럼 대학원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그만 둔 사람에게, 그때 투자한 시간과 돈은 과연 낭비였을까.

학교를 떠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대학과 대학원에서의 그 공부는 비단 (불)문학이라는 한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나 같은 학생들로 하여금 세상을 바로 알고 바로 보게 하는 공부였다.

무엇보다 대학원 수업은 자료를 찾고 전문적으로 다루는 훈련, 말이나 글로써 자기 생각과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훈련, 따져보는 훈련, 사고하는 훈련을 받는 시간이었다.

말하자면 보들레르 시 한 편을 가지고 세상을 보고 읽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고도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람에 대해, 사람 중심의 세상에 대해 넓고 깊게 읽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것이다.

그런 훈련을 통해 방법론을 익히고 자기 전문 분야를 파고든 사람들은 평생 연구자가 되어 대학에서 교수로 가르치고, 전문 연구자의 길을 가지 않는 학부나 대학원 출신자들 또한 그때 배운 태도와 방법론에 따라 세상을 읽고 움직여간다.

비록 그 생산성이 눈에 금방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은 사람 중심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인문학적 소양에 근거한다고 나는 믿는다.

“인문학의 위기란(...) 인문학 전공 교수들의 일자리 위기일 뿐”이니 “인문학은 대학이라는 물리적 체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문학은 학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대학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코로나 시대의 인문학'이라는 칼럼이 일간지(<한겨레> 6월29일자)에 실렸다.

‘초파리 유전학자'라는 이가 내세우는 주장이다.

그이가 쓴 글을 읽다보니 여러 의문이 생겨난다. 대학에서의 인문학 연구가 “주로 독해와 강독 등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하는 그는, 대학의 인문학 연구가 그저 여럿이 모여 책을 읽고 독후감이나 쓰는 정도라고 보는 것인가.

문사철의 효용성이 단기간에 겉으로 드러난다고 보는 것인가. 무엇보다 나는 그런 주장을 펴는 그 학자가 대학시절 문사철 교양과목이라도 제대로 공부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촛불혁명을 비롯해 최근 한국이 이루어온 민주적인 성취가 ‘사람을 연구하는 공부', 곧 인문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그 학자는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학은 인문학 연구의 중심이자 생산기지이다. 돈 안 되는 인문학, 공부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드는 인문학을 깊게 연구하고 가르칠 곳은 대학밖에 없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대학은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세상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그 근본을 전문적으로 다지는 곳이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그런 공부의 축적이 집단지성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세상을 움직여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21세기 들어서도 구체적으로 경험한 바 있다. 무혈 촛불혁명이 이루어졌고, 코로나시대라는 초유의 위기 앞에서도 사람들이 공유하는 드높은 시민의식과 행동양식이 있다.

그런 사고와 행동이 어디에서 연유하며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금세 알 수 있다.

당장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풀어놓는 SNS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건강한 여론을 만들고 세상을 움직여가는 집단의 지성이 어디에 기반하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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