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음료 ‘넥타’라 불리우는 귀부 와인

샤토 디켐(Chateau d’Yquem).
샤토 디켐(Chateau d’Yquem).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와인 중에 단맛이 나는 스위트 와인은 어떻게 만들까?

와인에 설탕을 첨가하여 달게 만드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 이다.

알코올이 효모가 당분을 먹이로 하여 부산물로 내놓는 것이므로 포도 자체에 있는 당분을 발효과정에서 남겨서(이를 잔당이라고 한다.) 달콤한 맛을 내게 하는데 그 잔당량의 정도에 따라 당도를 조절하게 된다.

단, 샴페인은 제조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병 속의 효모 앙금을 제거한 후 부족액을 보충하게 되는데 이때 설탕을 첨가한 포도즙 혹은 잔당이 있는 포도즙을 넣어서 당도를 조절하게 된다.

따라서 샴페인의 경우만 예외적으로 설탕을 첨가하는 경우가 있다.

와인은 당도에 따라 스위트 와인과 드라이 와인으로 크게 나뉘고 그 양 극단을 포함하여 통상 5단계로 구분된다.

잔당을 남겨서 스위트 와인을 만들지만 이 스위트 와인은 다시 원재료인 포도의 당도를 높이는 방법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가 포도에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는 특수 곰팡이가 슬어서 건포도화되어 (이것을 귀하게 부패했다고 해서 귀부(Noble Rot)라고 부른다.)

당도가 축적되게 된 포도로 만든 귀부 와인, 두번째가 수확시기를 늦춰서 당도를 더 높인 레이트 하비스트(late harvest) 와인, 세번째가 수확시기를 더 늦춰서 아예 포도를 얼게 하여 당도를 축적시킨 아이스 와인, 네번째가 포도를 수확한 후 이를 그늘에서 3~4개월 말려서 건포도와 시켜서 당도를 높인 후 이것으로 달콤한 와인을 만드는 경우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첫번째 경우인 귀부 와인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그동안 귀부와인 하면 통상 프랑스의 소테른(Sauterne) 지방에서 나는 와인, 헝가리의 토카이(Tokaji), 독일의 TBA가 대표 3대 귀부와인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여기에 와인이 신대륙으로 전파되면서 남아공의 콘스탄시아 지역에서 스위트하게 만든 와인과 동구권이 개방되면서 루마니아의 코트나리 지역의 와인이 이 대표 계열에 합류하게 된다.

물론 지금은 캘리포니아나 호주 등지에서도 귀부와인에 도전하여 성공한 와이너리들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 5개 지역이 중세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유럽 황실과 왕실 등의 귀족사회에서 유명하였기에 5대 귀부 와인 지역이 되는 셈이다.

프랑스의 소테른은 보르도에 있는 지역으로 주로 세미용과 소비뇽 블랑, 뮈스까델 품종으로 귀부와인을 만든다.

귀부는 귀하게 썩었다는 의미로 영어로 Noble Rot이라고 하는 것을 직역한 셈이다. 이 지역의 귀부 와인 탄생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1836년에 독일계 보드로 와인 딜러(Forke)가 긴 가을 우기 후에 수확하면서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847년에 지금도 귀부와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샤토 디켐의 오너인 뤼르 살뤼세스(Lur-Saluces) 후작이 러시아 여행을 떠나면서 그가 돌아올 때까지 수확하지 말라고 지시했는데 그가 늦게 돌아와서 보니 곰팡이가 아주 잘 슬어서 좋은 귀부 와인을 만들게 되었다는 설이다.

후자는 샤또 디켐의 명성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재미난 이야기거리라고 여겨지기는 한다. 역사적으로는 16세기 말에 당시 해상 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 무역상들이 화이트 와인을 좋아했는데 이들이 드라이한 레드 와인보다는 달콤한 와인을 선호하는 스칸디나비아의 고객들을 위해 17세기에 이 지역에 화이트 와인 품종을 심게 되면서 귀부 와인이 탄생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소테른은 지역 특성상 아침에 안개가 끼고 낮부터 개이는 현상이 있어서 포도에 곰팡이가 슬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소테른 지역의 곰팡이가 슨 세미용 품종.
소테른 지역의 곰팡이가 슨 세미용 품종.

독일의 TBA는 트로켄 베렌 아우스레제(Trocken Beeren Auslese)라는 긴 이름의 첫 글자만을 따서 부르는 와인인데 곰팡이가 슬어 포도나무에 달린 채 건포도화된 포도알 하나하나를 손으로 골라서 따서 만든 당도가 최소 150g/ℓ (150–154 °Oe)인 와인을 일컫는다.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는 ‘(곰팡이가 슬어) 건조된 포도알 선별수확’이라는 의미이다.

독일의 이 TBA는 오스트리아에서도 생산된다.

이 와인은 1787년에 라인가우지역 가이젠하임(Geisenheim)에 있는 슐로스 요하네스버그(Schloss Johannisberg)라는 와이너리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원래 이 와이너리는 1775년부터 리슬링의 포도 수확시기를 늦추어 당도를 높인 디저트 와인인 레이트 하비스트 와인(독일에서는 슈팻레제(Spätlese 라고 한다.)을 만들었다.

하인리히 폰 비브라.
하인리히 폰 비브라.

그런데 당시만해도 중세시대인 지라 포도 수확 여부를 지역의 영주이자 주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해서 당시 이 지역 담당인 영주이자 주교이고 동시에 수도원장이기도 했던 하인리히 폰 비브라(Heinrich von Bibra (Heinrich VIII of Fulda)(1711–1788))의 포도 수확 여부에 관한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그 승인이 14일(3주설도 있다.)

늦어지게 되는 바람에 포도에 곰팡이가 슬게 되었고 이것으로는 와인을 만들 수 없어서 주변 농가에 주었는데 거기서 와인을 만들어보았더니 그때까지는 없었던 꿀향과 살구향이 나는 달콤하면서도 동시에 신맛이 존재하는 신묘한 와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영주의 허가가 늦게 떨어진 이유가 그의 취미가 사냥인 지라 사냥에 몰두하느라 늦어졌다는 설과 그가 노상강도를 만나 포로로 잡혀있다가 풀려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여튼 이 전설에 따르면 우연이 선사해준 새로운 와인의 세계였던 것이다. 독일에서는 주로 리슬링으로 귀부와인을 만들지만 다른 품종으로도 만들고 있다.

보트리티스 시네레아가 슨 리슬링 품종.
보트리티스 시네레아가 슨 리슬링 품종.

이런 신화 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독일의 TBA가 최초의 귀부 와인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헝가리의 귀부 와인인 토카이(Tokaji)(정확히는 토카이 아슈(Aszu)는 독일보다 훨씬 이전인 1630년 즈음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1730년에 헝가리가 원산지 증명 제도를 만들 때 이미 일부 지역에 대해 귀부 와인 지역 분류를 하였다고 하니 귀부 와인의 원조나 원산지 증명제도의 원조는 독일이나 프랑스가 아니라 헝가리가 되는 셈이다.

1630년~1648년까지 트란실바니아 공국의 영주였던 조지 1세(George I Rákóczi (1593~1648))의 부인 수잔나(Zsuzsanna Lórántffy)와 와이너리의 양조가인 세프시(László Máté Szepsi (1576~1633))가 1620년경에 오스만 제국의 침공이 임박하다는 걸 알고 수확을 미루게 된다.

나중에 막상 수확을 하게 되었을 때 곰팡이가 슬어 건포도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이것으로 와인을 만들게 되어 탄생한 것이 오늘날의 토카이 아슈라고 한다.

이것은 구전에 의한 전설이었다고 하더라도 1646년에 4 푸토니(이의 설명은 하기 글 참조)의 와인이 폴란드에 수출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1655년의 법에는 곰팡이가 슨 포도를 별도로 수확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미 1600년대에 아슈 와인이 존재했다고 추정된다.

심지어는 최근에는 1500년대 후반의 아슈 와인 재고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하니 이 즈음에 만들어 진 것은 확실하다고 보여진다.

이런 역사적 가치 때문에 이 토카이-헤갸이아 지역은 2002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헝가리 와인 산지 지도 ; 오른쪽 위 붉은 색부분이 토카이 헤갸이야 지역, 그 위가 슬로바키아이고 오른쪽 아래가 루마이나이다.
헝가리 와인 산지 지도 ; 오른쪽 위 붉은 색부분이 토카이 헤갸이야 지역, 그 위가 슬로바키아이고 오른쪽 아래가 루마이나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위트 와인의 대명사로 부르는 토카이 와인은 정확히는 토카이-헤갸이야(Tokaji-Hegyalja) 지역에서 나는 귀부와인으로 토카이 아슈(Aszu)라고 부르는데 이 때 아슈는 말린(Dry)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지역은 오늘날에는 헝가리의 국경지대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가 중심이 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게 되면서 일부가 슬로바키아에 속하게 되어 헝가리 토카이와 같은 기준으로 생산할 경우 슬로바키아에 속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도 토카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토카이 아슈의 잔당의 분류는 전통적으로는 푸토니(puttony) 단위로 계산되었는데 푸토니는 건포도화된 포도(아슈)를 수확할 때 사용하는 25리터용량의 나무통을 의미하는 것으로 136리터의 헝가리 전통 캐스크(Gönc cask)에 이 아슈 포도가 몇 통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1~6푸토니로 분류된다.

3푸토니의 잔당이 60~90g/ℓ, 4푸토니가 90~120g/ℓ, 5포토니가 120~150g/ℓ, 6푸토니가 150~180g/ℓ가 될 정도로 잔당의 함유량이 높은 편이다.

최근에는 일반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게 일반적으로 잔당이 120g/ℓ이상인 경우만 아슈로 분류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아슈 중에서 최상은 아슈 에센시아(eszencia)로서 잔당함량이 500~700g/ℓ다.

잔당이 이 정도가 되면 이 와인은 1헥타르(약 3000평)의 포도원에서 2병이 생산되는 셈이고 150kg의 포도로 이 와인 1%를 만들 수 있는 셈이니 경제성은 전혀 없는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경제성을 떠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알코올 도수는 5%로 낮지만 가격은 500ml 한 병에 500달러를 상회한다.

남아공의 콘스탄시아는 케이프타운 남쪽 15Km 지점에 있는 지역인데 1685년에 남아공 최초로 와이너리가 들어섰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그리스가 원산지이자 뮈스카 계열 포도품종의 원조격인 뮈스카 블랑 아 쁘띠 그랭(Muscat Blanc à Petits Grains)으로 디저트용 귀부와인을 만들어 이 와인이 18,9세기에 유럽 상류층 사회에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국가들의 이 와인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면서 수요가 줄고 여기에 필록세라의 피해까지 겹치면서 19세기에 사라졌다가 1983년부터 다시 이 디저트 와인을 부활시켰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과거에 유명했던 와인이 20세기 들어 새로 등장한 셈이다. 남아공에서 생산되는 이 와인을 노블 레이트 하비스트스 (Noble Late Harvest (NLH))라고도 부른다.

DOC Cotnari.
DOC Cotnari.

헝가리와 이웃하고 있는 루마니아 북쪽의 코트나리 지역은 앞서 언급한 트란실바니아 공국에 속하는 지역이었으니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의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

헝가리는 퍼민트(Furmint)를 위주로 하여 총 6가지 품종으로 토카이 아슈 와인을 만드는 반면 루마니아는 그 중 하나인 그라사 데 코트나리.(Grasa de Cotnari, 헝가리에서는 Koverszolo라고 불리운다)와 여기에 루마니아 토착 품종인 페테아스카 알바를 약간 섞어서 귀부 와인을 만든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지난 칼럼 로마의 동진이 낳은 루마니아 와인 2편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 루마니아에는 중세시대 루마니아가 헝가리 제국, 왈라키아공국, 몰다비아 공국으로 분할되었던 시절 헝가리 토카이 와인을 사랑한 몰다비아 공국의 왕이 그라사 데 코트나리를 이 땅으로 가져왔다고 하는데 이 몰다비아 공국이 근대사에서 루마니아, 몰도바와 우크라이나로 3등분되면서 그 지역이 루마니아에 속하게 되어 결국은 루마니아도 귀부와인의 오랜 전통을 가진 국가가 된 것이다.

스위트 와인이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순서를 보면 늦게 수확하여 당도를 높여서 만든 레이트 하비스트 와인이 먼저 디저트 와인으로 등장하고 레이트 하비스트 와인을 만들려고 하다가 우연한 사건을 통해 수확기간이 더 늦어지면서 곰팡이가 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보니 특이하고 맛있는 귀부 와인을 발명(?)한 셈이 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 겨울철에 수확하여 만드는 아이스 와인이 디저트 와인으로 등장하게 된다. 달콤함이 주는 매력에 매료되어 이를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한 것이 레이트 하비스트 와인이라면 통상은 곰팡이가 슬어 버려버리는 포도로 와인을 만들었다가 신의 음료라는 넥타의 경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 바로 귀부 와인인 것이다.

우연인 것 같지만 과거의 레이트 하비스트 라는 축적의 긴 시간이 필요했고 여기에 곰팡이가 슬었지만 이를 포기하지 않고 와인을 만들려는 인간의 도전정신과 호기심의 발로로 탄생한 것이 귀부 와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귀부 와인이 세계 무대에 등장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대개의 문화가 그렇듯이 탑다운방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귀부 와인은 16,7세기에 만들어지지만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는 것은 18,19세기에 유럽의 왕족과 귀족 상류층과 당대의 유명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이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다.

당연히 단맛이 귀했던 시절에 단맛뿐 아니라 신맛까지 공존하는데다가 적당한 알코올까지 함유하고 있으니 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생산량도 적으니 당연히 특권층만의 전유물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부르주아층이 등장하면서 중산층까지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디저트 와인이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지만 그 품질이 천차만별인 지라 여전히 일반 와인에 비해서는 가격이 높아 쉽게 접하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깝기는 하다.

그래도 신들의 넥타라고 불리우기도 할 정도이니 한번쯤은 맛 볼만 하지 않은가?

더구나 요즈음은 적당한 가격대의 귀부 와인이 수입되고 있기도 하니 궁중 파티를 즐기는 기분으로 한번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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