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길', 김홍도作,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49.4cm, 보물 제527호, 단원 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장터길', 김홍도作, 18세기 후반,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49.4cm, 보물 제527호, 단원 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장터길>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의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단원풍속도첩》에 포함된 그림 가운데 두 면에 걸쳐 그려진 풍속화다.

이 그림의 소재는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한 무리의 일행으로, 아홉 마리의 말과 소 한 마리 그리고 아홉 명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말을 타고 있다.

이들의 차림새를 보면, 갓을 쓴 사람이 한 명, 삿갓을 쓴 사람이 둘, 조각보를 이어 만든 빵모자 같은 건을 쓴 사람이 둘이고, 나머지는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화면 제일 오른쪽 끝에 있는 갓을 쓰고 담뱃대를 물고 있는 사람이 이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고, 상투를 틀지 않은 남자들이 그가 이끌고 있는 일꾼들로 보인다.

화면 구성상 일행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는데, 화면 오른쪽의 네 사람이 첫째 그룹, 바로 앞의 세 사람이 둘째 그룹,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덕 넘어 멀리 보이는 두 명이 셋째 그룹이다.

등장인물들은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갈수록 크기도 점점 작아지고, 인원 역시 네 명에서 세 명, 다시 두 명으로 줄어들고 있다.

전체 구도는《단원풍속도첩》에 들어있는 단원의 다른 작품인 <신행>과 매우 유사한 ‘ㄴ’자형임을 알 수 있는데, 행렬의 방향이 <신행>과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

<신행>에서는 인물들이 먼 곳에서 등장해 가까운 곳으로 오고 있다면, 이 그림에서는 가까운 곳에서 등장한 인물들이 점차 먼 곳으로 사라져 간다.

단순한 한 줄의 선으로 표현된 언덕으로 인해 평면적인 공간에 깊이가 더해져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단지 선 하나로 화면의 깊이를 표현한 화가의 기량이 돋보인다.

또한 단원은 푸른색 저고리를 입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의 옷을 모두 흰색으로 통일하였고, 말들은 모두 다른 색으로 채색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 아홉 명의 표정과 동작이 다양하며 개성도 강하고, 말들의 움직임도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그렇다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갓을 쓰고 도포를 입지 않은 옷차림이나 나머지 사람들의 행색을 보아도 이들이 지체 높은 양반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걷지 않고 말을 타고 간다는 상황이 특별해 보인다. 게다가 말 위에 앉아 있는 모습들도 하나 같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말을 탈 때는 보통 몸을 앞을 향하고, 안전을 위해 고삐를 꽉 잡는 것이 일반적이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뒤를 향하여 앉아 담배를 피거나, 다리를 옆으로 내린 채 걸터앉아 있어도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다.

또한 사람을 태우는 말의 등에는 안장을 얹는데, 그림에 나오는 말들의 등에는 승마용 안장 대신 짐을 실을 때 쓰는 길마가 놓여있다.

길마는 말이나 소의 등에 얹어 짐을 싣거나 달구지를 연결할 수 있게 만든 운반구로, 말굽 모양으로 구부려진 나무 두 개를 나란히 놓은 다음, 좌우 양쪽으로 나무를 질러 고정시킨 것이다.

그림을 보면 짐을 싣는 길마 위에 사람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담배를 태우기 위해 부싯돌을 치고, 곰방대 속을 꾹꾹 누르고 있다.

이들의 동작은 움직이고 있는 말 위에 있다기보다, 어느 집 방안에 모여 앉아 소일하고 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아마도 이들이 타고 가는 말들은 사람을 태우기 위한 승용마가 아니라 물건을 나르기 위한 운반용 말이고, 말을 타고 가는 이들 역시 자유자재로 말을 부릴 수 있는 견마부 즉 말구종인 것 같다.

왼쪽 끝의 더벅머리 총각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채찍도 말을 몰고 갈 때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는 중일까?

이들이 장터에 말과 소를 팔러 간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길마를 얹은 것으로 보아 말과 소를 팔러 장터에 가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길마 위에 아무것도 얹혀 있지 않고, 사람들의 상태도 편안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장터에 가서 물건을 다 팔고 돌아오는 중인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어 보인다.

혹은 비어 있는 길마 위에 물건을 싣고 고정하는 데 사용하는 밧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어딘가로 짐을 실으러 가는 중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은 개성상인이나 의주상인처럼 상단을 꾸려 전국으로 장사를 하러 다니던 사람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는 상인의 무리를 그린 다른 그림도 있다.

이형록(李亨祿, 1808~?)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설중향시도>는 한 겨울에 짐을 실은 소와 말을 끌고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 상단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이 그림에는 말에 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말 등에는 짐만 잔뜩 실려 있으며, 걷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짐을 지고 있다.

김홍도의 그림과 달리 눈이 내린 산과 잔뜩 찌푸린 하늘, 나무와 집 등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어, 이러한 배경이 그림의 중요한 제재가 되었다.

이 그림은 인물들의 크기가 작아 사람들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없어 풍속화로 감상하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김홍도는 조선 후기의 화가로 김해 김씨이고, 호는 단원이다.

그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산수화·인물화·도석화·풍속화·영모화·화조화 등 회화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특히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력, 서민들의 생활에 대한 깊은 공감이 잘 드러나 있다.

【참고문헌】

단원 김홍도 연구(진준현, 일지사, 1999)

조선 풍속사1-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강명관, 푸른역사, 2016)

조선시대 풍속화, 특별전 도록(국립중앙박물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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