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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8-04 18:08 (화)
[성우제의 문화비평⑪] 저들은 기자도 아니다
[성우제의 문화비평⑪] 저들은 기자도 아니다
  •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7.2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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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입구에서 열린 종합편성채널 채널A 협박성 취재 및 검찰-언론 유착 의혹 사건 관련 추가고발 기자회견에서 김서중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왼쪽 두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입구에서 열린 종합편성채널 채널A 협박성 취재 및 검찰-언론 유착 의혹 사건 관련 추가고발 기자회견에서 김서중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왼쪽 두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돌이켜보면 기자로 일을 할 때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1980년대 후반 언론 민주화 바람을 타고 <한겨레>를 비롯한 많은 매체가 창간되고 군부독재에 항의하다 해직된 기자들이 속속 복귀하던 시절이었다.

비판 칼럼을 썼다고 국군정보사령부 장교들한테 기자가 대검 테러를 당하는 일도 벌어졌으나 그런 일들이 언론 민주화라는 대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수십 년 동안 눌리고 위축된 언론의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언론 업계에는 활기가 돌았다.

1990년대 기자들은 두 가지 과실을 동시에 손에 쥘 수 있었다. 취재 성역이나 검열 같은 것이 대부분 사라지면서(여전히 안기부 담당자가 회사 주변을 맴돌며 사찰은 했지만) 뉴스를 굴절없이 전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를 세우는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이 넘쳤다.

기자 초봉이 웬만한 대기업의 2배쯤 되는 것 또한 기자로서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데 일조했다.

높은 연봉은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언론 통폐합을 하면서 언론계에 안긴 ‘당근'이었다.

직장인이면 으레 정장으로 일을 하던 시절이었으나 기자들은 정치부·경제부 같은 일부 부서를 빼고는 자유분방한 차림이었다.

그런 복장은 기자들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종의 지표 같았다.

기자들 사이에는 어디에 매이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문화가 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두환 세력에 반대하는 분위기 또한 언론계의 대세였다.

1988년 군인들에게 대검 백색 테러를 당한 오홍근 기자는 <중앙일보> 출신으로 그 신문이 발행하는 <중앙경제신문> 사회부장이었다.

이렇게 불의를 고발하는 지식인 이미지에다가 복장으로도 드러나는 자유로운 이미지, 거기에 고액 연봉까지 겹쳤으니 기자직의 인기는 ‘언론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단했다.

웬만한 언론사의 기자 시험 경쟁률은 100대 1이 넘었다.

한국 경제가 크게 성장하던 시절이라 기업 광고 또한 넘쳐났다. 말 그대로 한국 언론의 전성시대였다.

이런 저런 자부심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기자들은 “건방지다”는 말을 듣기 일쑤였다. 겸손한 태도라도 보이면 “기자답지 않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래도 좋은 의미의 건방진 태도는 기자가 지녀야 할 기본이었다. 어떤 권력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시민 독자들을 대신해 당당하게 질문할 수 있어야 했다.

거기에 더해 비록 ‘우리 편’이라 해도 불편부당함을 유지하는 태도야말로 기자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 언론이 전성기를 누린 것은 높은 연봉이나 직업 자체의 자유로운 이미지 같은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성기의 핵심은 기자의 기자다움이 기사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출입기자단'이 건재했고 촌지 수수와 같은 음습한 문화 또한 살아 있었으나, 언론계 내부에서 그런 문화를 비판하고 없애자는 목소리도 많이 나왔다.

나는 좋은 의미의 건방짐이 기자다움과 연결되는 장면을 선배 동료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A선배의 태도가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다.

A선배는 우리 매체에서 그다지 두드러지는 기자는 아니었다.

시사주간지이다 보니 다른 매체에 비해 기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곳이었으나 그 선배한테는 딱히 뾰족한 무엇이 없었다. ‘글 하나는 좋다'는 평판이 있었다. 그런 평판은 칭찬이 아니었다.

좋게 보면 착한 사람이고, 나쁘게 보면 무기력한 기자였다. 열정 또한 별로 없어보이던 그 선배에게서 나는 우연한 기회에 기자다움을 보고 배운 적이 있다.

A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자기를 일부러 드러내려 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분이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옆자리에 앉아 들었을 뿐이다. 곁에서 들은 몇 분간의 통화 내용은 기자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실전 교본 같은 것이었다.

YS정부 당시 DJ가 영국 체류를 마치고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다음 대통령 선거에 나설 채비를 할 즈음이었다.

우리 매체는 중도를 표방했으나 실상은 야당지나 다름없었다. 주필을 비롯해 편집국 수뇌부 가운데 70~80년대 해직 기자 출신이 여럿인 데다, 신생 매체여서 젊은 기자들이 많았다.

군부독재와 손잡은 세력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지면에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내놓고 선언만 하지 않았을 뿐 DJ를 지지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매체 구성원 대다수가 정권교체를 바라던 성향이었으니, DJ가 정계에 복귀하자마자 인터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DJ측에서도 우군으로 여겨 인터뷰에 쉽게 응했을 것이다. 인터뷰어로 나선 기자는 A선배였다.

정계 복귀 직후의 인터뷰이다 보니 DJ측에서 각별하게 신경을 쓰는 것 또한 당연했다. 민감한 시기의 인터뷰일 경우 매체에 실리기 전에 그 내용을 미리 보여주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A선배도 거기에 동의하고 해당 기사를 미리 보냈던 모양이다.

전화 통화를 하던 그 선배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버럭’은 그 선배의 좋지 않은 버릇이었다.

“아니, 대표님(DJ), 아무리 대표님이라 해도, 아니 언론을 잘 아는 분이 기자한테 그런 요구를 하시면 안 되죠. 인터뷰할 때는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예민한 내용이라고 지금 와서 고치라 빼라 하는 건 말이 안 되고요,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A선배와 친한 동향 국회의원이 나서서 다시 요청했으나 A선배는 요지부동이었다. 보여준다고 했을 뿐이지, 원하는 대로 고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름 아닌 DJ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했다. 내가 놀랐던 것은 그 선배가 평소 DJ 지지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배는 호남 출신이었다.

나는 DJ측도 이해했고 선배한테는 감동했다.

내가 보기에, DJ측에 대한 A선배의 태도는 바로 기자다움이었다.

평소 다소 무기력해 보여도, 특정 정파를 백퍼센트 지지하는 듯이 보여도, 그 선배는 기자를 기자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아무리 크다 해도 기자로서 기자다움은 잃지 않겠다, 지지는 하되 기자로서 ‘붙어먹지는 않겠다'는 태도였다. 이런 태도가 때에 따라 취재원에게는 건방져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한때 기자라는 직종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던 가장 큰 이유는, 그런 기자다움이 지면에 묻어났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런 선배들한테서 배우고 함께 기자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요즘 언론의 문화를 보면서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참담하기도 하다.

불편부당한 태도를 지니기는커녕 한쪽 편에 붙어 과거 황색지 같은 기사들을 쏟아내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특정 권력과 모의해 사건을 조작하려다 구속된 기자까지 생겨났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그런 사안을 두고 부끄러워하거나 반성하는 것은 고사하고 언론자유 침해 운운하며 견강부회하는 해당 업계 사람들을 보면서, 저들이 과연 기자이기는 한 건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매체 환경이 급변하는 바람에 크게 위축되었다고 하지만 언론 업종이 불과 수십 년만에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은 참 불가사의한 일이다.

기자의 기개와 정신까지 팔아먹은 일을 두고 그들의 ‘협회’가 나서서 옹호하는 형국이니 이제는 망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왕 망한 김에 아예 완전히 망하면 좋겠다. 그래야 그나마 소수파로 살아 있는 진짜 기자들이 기를 펴고 판갈이를 할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