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빼껴도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대응자세도 문제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LG그룹(이하 LG)은 금세기 초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삼성그룹 못지않은 성가를 자랑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가전제품 분야에서는 그래도 글로벌 경쟁력이 상당했던 만큼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세기도 20년이 지난 지금의 LG의 위상은 완전 상전벽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기가 막히다.

LG생활건강 정도만 빼고는 14억 소비 시장인 대륙에서 맹활약하는 계열사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특히 전자 분야는 거의 최악 상황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한때는 지존까지는 몰라도 중국을 한국에 이은 제2의 본사 소재지로 생각할 정도로 잘 나가던 LG가 이처럼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역시 책임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해야 한다.

자승자박이기 때문에 수원수구(誰怨誰咎. 누구를 원망함)하겠는가 하는 얘기가 될 듯하다.

LG전자의 광저우 공장 전경. 합리적 투자의 결과물이라고 보기 어렵다./제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LG전자의 광저우 공장 전경. 합리적 투자의 결과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진제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우선 중국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중국은 지난 세기 말까지만 해도 산업 전반이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

당분간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당시 LG 경영진은 때문에 진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경쟁적으로 중국에 진출했다.

지금도 지리적으로 크게 의미가 있다고 하기 어려운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와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 LG전자의 공장을 서둘러 지은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현재 중국 업체에 매각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중국을 거대한 내수 시장으로만 보고 제조업 대국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은 판단 미스 역시 한몫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 보니 중국 업체로 빠져나갈 인력 및 노하우 관리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실수의 대가는 정말 혹독했다.

자연스럽게 빠져나간 인력들과 노하우가 경쟁업체들의 경쟁력에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나중에는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됐다.

한마디로 새끼 고양이를 호랑이로 키워 남 좋은 일 해줬다고 해도 좋지 않나 보인다.

전자를 비롯한 다양한 산업 분야의 기술 탈취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 역시 수원수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은 원래 남의 기술을 베껴 자사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데에는 세계적으로 일가견이 있다.

한국이나 일본 기업들은 완전 저리 가라고 할 정도라고 보면 된다.

당연히 인력과 노하우가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기술이 빼돌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LG전자에서 일하다 상하이(上海)의 모 라이벌 회사에서 일하는 L 모 씨의 증언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LG에 근무하다 중국의 로컬 경쟁사에 취업하는 인력이 관련 사업 노하우를 가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중요 기술까지 은밀하게 빼돌리는 것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평소 보안을 지나치다고 할 수준으로 철저하게 한다거나 담당자가 아니면 원천적으로 중요 기술에 접근을 못하게 하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 삼성 같은 경우는 진짜 이렇게 한다. 하지만 LG는 다소 느슨하다. 기술을 탈취 당했다는 의심이 들 때도 대응에 문제가 있다. 소송을 통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 로컬 업체 톈쥔이 자사가 개발한 것처럼 선전하면서 판매하는 스타일러./[사진제공=징지르바오.]
중국 로컬 업체 톈쥔이 자사가 개발한 것처럼 선전하면서 판매하는 스타일러./[사진제공=징지르바오.]

유사품이나 모조품 등의 이른바 짝퉁 대응에 실패한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사례를 들면 알기 쉽다.

짝퉁 제조회사로 악명이 높은 로컬 가전 업체인 톈쥔(天駿. TIJUMP)은 2016년 LG의 의류관리기기인 ‘트롬 스타일러’에 완전히 꽂혔다고 한다.

급기야 거의 똑 같이 복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등에 거주하는 상류층들은 이 기기에 열광했다.

이로 인해 톈쥔은 상당한 매출액을 올리면서 일약 신기술을 보유한 국산 업체로 포장돼 중국인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다.

LG로서는 화가 머리끝까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지금도 톈쥔 스타일러는 LG가 아닌 중국 가전의 신기술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여전히 기세를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톈쥔보다 규모가 큰 거란스(格蘭仕. Galanz)까지 LG 스타일러를 똑같이 모방, 판매 중이나 제동은 걸리지 않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LG의 각종 짝퉁들은 지금도 2, 3선 도시에서는 IG, LC 등의 브랜드를 붙인 채 소비자들로부터 저렴하고 질 좋은 제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LG가 강력 대응에 실패한 때문이 아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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