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 '아미타삼존도', 14세기, 비단에 채색, 110cm×51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작자 미상, '아미타삼존도', 14세기, 비단에 채색, 110cm×51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아미타삼존도>는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지장보살(地藏菩薩),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함께 등장하는 삼존도(三尊圖)형식의 아미타내영도(阿彌陀來迎圖)로, 죽은 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아미타여래와 보살의 모습을 그린 고려불화이다.

이 그림은 사후에 서방극락정토에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발원이 담겨있다.

정토신앙에서는 살아생전 아미타불의 이름을 지극 정성으로 외우면 누구나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선행을 쌓고 염불을 열심히 외우면, 죽음이 닥쳤을 때 아니면 생전이라도 수행의 정도에 따라 아미타여래와 여러 보살들이 직접 찾아와 극락으로 데려간다는 ‘염불왕생신앙(念佛往生信仰)’이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했는데, 고려불화의 <아미타내영도>는 바로 이 장면을 그린 불화이다.

『관무량수경』에 따르면, 아미타여래가 수행자를 영접하는 9가지 양상[九品來迎]이 있는데, 이 내용이 <아미타내영도>의 도상학적 근거이며, 처음에는 관경변상(觀經變相) 16관도의 일부로 그려지다가, 후에 단독으로 내영도가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여래가 단독으로 와서 임종을 맞아 극락에서 다시 태어날 사람들(극락왕생자)을 데려가는 독존도, 아미타여래·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삼존불이 함께 와서 극락왕생자를 맞이해 가는 삼존도, 아미타불과 팔대보살이 극락왕생자를 데려 가는 구존도, 아미타불과 25보살 등 수많은 권속이 극락왕생자를 맞이해 데려가는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림은 아미타삼존도로 아미타여래의 정수리에 있는 계주(髻珠)로부터 한줄기 빛이 나와 화면 하단의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감싸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맨 앞으로 나와 몸을 굽히고 연꽃 대좌를 내밀어 빛에 싸인 왕생자(往生者)를 맞이하고 있고, 지장보살은 아미타여래 옆에 서있다.

일반적인 아미타삼존 내영도는 아마타여래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대동하고 내영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일반적인데, 이 작품에는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이 협시보살로 등장하여 특이한 구성을 보인다.

또한 부처가 중앙에 서있고, 양옆으로 보살들이 서있는 구도와 다르게 이 불화에는 관세음보살이 아미타여래 앞으로 나와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있는 매우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미타여래의 풍만한 얼굴과 근엄한 표정 그리고 당당한 자세에서 본존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아미타여래가 겉에 걸친 붉은 가사에는 연화당초원문(蓮花唐草圓文)이 금으로 그려져 있어 화려한 모습이고, 문양의 형태는 매우 세밀하고 정치하게 묘사되어 있다.

붉은 바탕에 그려진 금니 문양은 빛을 발하는 듯 보는 이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붉은 가사 안에 받쳐 입은 옷 역시 암녹색 바탕에 금니로 그려진 꽃과 구름무늬가 화려하다.

명치 부분에는 금으로 ‘만(卍)’자를 그려 놓았고, 왼손 바닥에도 석가모니의 설법을 바퀴의 형상으로 상징한 ‘전륜(轉輪)’ 문양을 금니로 그렸다.

머리 뒤에 있는 원형의 광배는 금으로 윤곽선만 진하게 표시하고, 원의 내부는 바탕과 같이 어둡게 칠했다.

화면에서 아미타여래 왼쪽에 서있는 지장보살은 앳된 얼굴을 한 스님의 모습인데, 지장보살의 두피는 암녹색이며, 왼손은 아미타여래에게 가려 보이지 않고, 오른손에는 투명한 보주(寶珠)를 올려놓았는데, 보주를 투과한 빛이 손바닥을 밝게 비추고 있다.

지장보살은 어깨까지 내려온 귀에는 원형의 금 귀걸이를, 목에는 녹색 바탕에 금으로 화려한 무늬를 그린 띠를 두르고 있으며, 목에는 보석으로 만든 화려한 영락(瓔珞) 장식을 착용하고 있다. 머리 뒤에는 아미타여래처럼 금색 선으로 광배를 그렸다.

관세음보살은 가장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각종 보석으로 꾸민 보관을 쓰고 있고, 색색의 매듭으로 장식한 띠를 매고 있다.

어깨를 덮은 검은 머리카락에서는 여성적인 느낌이 들지만, 짙은 눈썹이나 코 밑에 난 수염을 보면, 남성적인 느낌도 강해, 성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옷차림을 보면, 암녹색 바탕에 금니로 무늬를 그린 천의를 걸쳤고, 그 위로 붉은 바탕에 금으로 세로 선을 그린 띠를 둘렀다.

천의 자락은 가볍게 바람에 날리고 있어 하늘하늘하고 부드러워 보인다.

관세음보살 역시 아미타여래가 입고 있는 붉은 바탕에 금니로 무늬를 그린 화려한 가사를 입고 있는데, 가사 위에 천의 자락을 두르고 있어서 아미타여래처럼 붉은색 가사가 전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관세음보살은 극락으로 데려 갈 왕생자가 앉을 연꽃 대좌를 두 손으로 잡아 앞으로 내밀고 있는데, 금니로 윤곽선을 그린 연꽃 대좌는 매우 화려한 모습이다.

아미타여래나 관세음보살이 입고 있는 가사에 금니로 그린 문양은 모란이나 연꽃 같은 꽃무늬가 중심에 있고, 주변에 당초문이 둥글게 돌아가는 원형의 문양이다.

이 문양은 고려 시대의 불화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문양이다.

고려불화에는 채색용 안료 외에 금을 많이 사용했는데, 특히 대부분의 선묘에 금을 사용하였다. 이는 화려함을 선호했던 귀족들의 취향과 미감이 반영된 것이다.

한편, 고려불화에 사용된 주 색상은 붉은색·녹청색·군청색이었으며, 이 색상들은 부처나 보살이 입은 법의와 앉아있는 연화좌, 각종 장식을 그릴 때 사용됐다.

광물 안료의 경우 원석을 그대로 갈아 사용했기 때문에, 채도가 높고 화려한 화면을 표현할 수 있었다.

색을 칠할 때는 여러 번 반복하여 칠해서 원하는 색을 냈던 것으로 보인다.

깔끔하고 선명한 채색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바탕의 뒷면에서 색을 칠해 앞면으로 배어나오게 하는 배채법(背彩法)도 사용하였는데, 이를 통해 변색의 속도를 늦추고, 어두운 바탕에 색을 칠할 때 생길 수 있는 얼룩을 방지했으며, 두꺼운 안료의 박락도 막을 수 있었다.

부처나 보살, 기타 등장인물의 몸을 표현할 때는 검은 먹으로 선을 그리고, 그 위에 붉은 색 안료로 선을 덧그려 이중선을 그린 뒤, 주변은 붉은색으로 엷게 칠해 입체감을 표시하였다.

법의는 옷감의 바탕색보다 진한 색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주름을 나타냈는데, 붉은 가사에는 더 짙은 붉은색으로 선과 주름을 그렸고, 녹청색 법의에는 짙은 녹색과 청색 및 검은색 먹을 사용하여 윤곽선과 주름을 그렸다.

현재 전해지는 고려불화는 고려 조정이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 무렵부터 고려 말까지 약 120년간의 기간 동안 그려졌고, 귀족적인 섬세함과 화려함을 보여주는 불교 미술의 정수(精髓)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고려불화 : 한국의 미7(중앙일보사, 1981)

고려불화대전, 700년 만의 해후, 특별전 도록(국립중앙박물관, 20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