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백두대간 줄기가 지리산 노고단에서 오른쪽 천왕봉으로 휘어졌는데 삼각형 중간지점에 삼정산이 만들어졌다.

맨 밑에 실상사(實相寺)가 있고 약수암(藥水庵), 삼불사(三佛寺), 문수암(文殊庵), 상무주암(上無住庵), 영원사(靈源寺), 도솔암(道率庵)으로 오르는 구간을 칠암자 순례길이라 한다.

이곳에서 영원령 쪽으로 다시 오르면 삼각봉, 형제봉 지나 세석 쪽인데 우린 내리막길 걸어 오후 1시 반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닿는다.

눈 내리는 암자에서 경치가 일품이라 말하니, 처사인 듯 실상사까지 2시간 걸린다고 일러준다.

문수암.
문수암.

칠암자에서 상무주암 이르는 암자순례길

오후 2시경 문수암에서 내려가는 길이 미끄럽다.

아이젠도 없이 눈길을 걸었으니 힘이 들지만 눈 쌓인 바위, 계곡 물소리, 먼 산 아래 눈 내려 환상을 따라 걷는 듯하다.

30분 더 내려가서 삼불사 갈림길, 오후 3시경 도마마을엔 나무 때는 냄새가 좋다.

집집마다 연기 피어오르고 눈발이 세다.

강가로 내려가며 감나무들과 다락논이 정겹지만 이 일대는 과거 빨치산과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민간인들이 희생된 곳이기도 하다.

강가에 눈이 막 퍼붓기 시작한다. 등짐을 베개 삼아 하늘 보면 나물 캐는 아낙의 등 너머 먼산 첩첩이 깊다.

눈이야 날리든 말든 배낭을 그대로 진채 누워 있으니 산마을은 강물에 빠진 듯하다.

눈을 툭툭 털고 일어서 저 강물처럼 다시 흘러가기로 했다.

남원 실상사까지 걷는 거리를 단축하려면 강을 가로질러 가는 방법이 있는데 다리는 저 멀리 있고 몇 번 건너려 시도 해보지만 여의치 않아 지리산 자락길 따라 다시 걷는다.

결국 강둑을 30여 분 돌아 백무동 삼거리까지 와서 다리를 건넌다.

마천시장. 4시 반경 전통시장에 왔지만 모두 문을 닫았는지 아예 폐장된 것인지 아쉽다.

문수암 아래 산마을.
문수암 아래 산마을.
문수암 아래 간이매점.
문수암 아래 간이매점.

얼음물에 씻은 냉이 뿌리처럼 이 산 저 산 모질게 넘어온 발길. 문 닫힌 삼거리 장터 빈손으로 돌아 오지만 정류장엔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다.

산내 방향으로 아스팔트 걷는데 길옆에 판자집 같은 막걸리집이 반갑다.

남원 산내와 함양 마천 경계지점에 서니 묘한 기분이 든다.

전라와 경상지방 인심이 겹치는 접경마을, 매화는 꽃망울 맺었는데 강 따라 싸락눈은 나그네 발길을 붙잡는다.

끌며 당기며 따르는 강물처럼 바람은 눈을 몰고 오는데 아무리 걷는 것이 나그네 일이라 해도, 이런 날 한 잔 기울이지 않으면 죄를 짓는 일이다.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을까요?”

“날이 춥지요.”

“…….”

들어오라는 시늉이다.

남정네 서넛이 둘러 앉아 있는데 난로 곁엔 코끝이 맵다.

흘러도 떠난 것 없고 머물러도 쉼 없는 사랑이여, 사람 사는 맛 얼마 만에 느껴보는가?

굽이굽이 길 따라 낯선 곳, 장작불 따뜻한데 땀에 젖은 옷인들 어떠랴.

한 잔 술과 네게 스며드는 저녁이어서 좋다. 우리가 오늘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산 넘어 왔던가.

막걸리, 파전, 미역, 김치, 배도 고팠지만 지리산 술 맛은 더욱 좋다. 거스름돈 받지 말랬더니 기어코 3000원 받아왔다.

“운치 값이 몇 배나 더 하겠다.”

5시 반에 나서 다시 걷는데 눈을 털어도 산마을은 잃어버린 소중한 무엇을 찾은 듯 잊히지 않는다. 강을 보며, 산을 보고, 회색빛 하늘 쳐다보며 한 곡조 읊으려는데 갑자기 승용차가 앞에 와 선다.

“…….”

한사코 태워주겠다고 한다.

“오늘은 괜찮은데…….”

“…….”

6시경 실상사 주차장이다.

어떤 여성의 호의를 물리치지 못해 너무 쉽게 원점에 도착했다. 겨울 나그네 분위기를 뺏겨 아쉽다.

눈 대신 비 내리고 내일은 어느 산 갈까?

<탐방로>

● 정상까지 7킬로미터, 3시간 30분, 전체 16킬로미터 8시간 정도

도로 옆 주차장 → (10분)석장승 → (10분)실상사 → (50분)약수암 → (1시간)삼불사 갈림길 → (1시간 20분)삼정산 정상 → (30분)헬기장 → (10분)상무주암 → (30분)문수암 → (40분)삼불사 갈림길 → (40분)눈 내리는 강가 → (5분)도마교 → (15분)폭설 강둑길 → (55분*강 건너려 지체)마천시장 → (15분)간이 매점 → (1시간*매점 경유시간 포함)도로 옆 주차장

* 눈길 느리게 걸은 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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