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거의 한 시간 반 정도 달렸을까?

우현(右舷)으로 눈을 떼지 못하고 저마다 탄성을 지른다.

동해의 검푸른 파도는 미끈한 고래들을 눈부시게 했다.

고성에서 온 왕소장 내외와 9시 55분 출발하는 3층 배에 멀미를 우려해서 1,2층에 자리 잡았다.

“바다 날씨 좋은데.”

시쳇말로 장판이다.

“오늘 4월 24일 파도 높이 1미터 이하, 물결에 거품이 일면 2미터 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울릉도의 항구 풍경.
울릉도의 항구 풍경.
울릉도의 도동항 선착장.
울릉도의 도동항 선착장.
울릉도 저동항.
울릉도 저동항.
울릉도 촛대바위.
울릉도 촛대바위.

화산섬 울릉도, 그 중앙의 신령한 산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하니 일행이 마중 나왔다.

오후 1시 20분. 인사할 겨를도 없이 항구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는다.

홍합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저동 촛대바위로 향한다.

고불고불한 후박나무 가로수 길, 지프차로 기어올라 고향 같은 저동항구다. 바다냄새는 포구의 봄날 동백꽃을 생각나게 한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동백아가씨 노래가 흐드러졌다.

촛대바위 너머로 사자바위, 죽도는 그대론데 나무계단을 놓은 행남 등대 길은 때가 묻었다. 행남은 뱀의 머리를 닮았다고 사구남으로 불린다. 등대를 배경으로 바위섬, 잔잔한 바다는 일품이다.

봉래폭포.
봉래폭포.
너도밤나무 길.
너도밤나무 길.

3시 넘어 봉래폭포에 오르는데 입구부터 밤나무보다 잎이 부드럽고 크며 둥근 너도밤나무 숲이다. 우산고로쇠도 잎이 크고 싱싱하다.

결각이 6~9개로 거치가 없고 오리발 모양인데 섬단풍은 결각 10개 정도로 거치가 있어 구분된다.

오르막길 한참 지나 삼나무 숲에 삼림욕장을 만들었는데 인공시설이 많은 것이 흠이었다.

취나물·부지깽이, 마가목·섬피·굴거리 나무들과 마주치며 샘물 한 모금에 어느덧 풍혈까지 왔다.

주변에는 개발 사업을 하는지 이리저리 흩어져 파여 있다. 관광홍보를 한답시고 현수막에 식당 이름만 커다랗게 붙여 놓았다.

“현수막이 지방자치 공로자다.”

“자치대상을 줘야 해.”

오후 4시경 저동초등학교 아래 옛날 살던 집은 식당으로 바뀌었다. 촛대바위는 그대론데 사람들 간곳없다.

20여 분 차를 달려 내수전 전망대에 닿는다. 나무계단 길옆으로 마가목·쥐똥·너도밤·노린재·조릿대·산딸기·쪽동백나무 줄을 섰다.

전망대에 서니 죽도, 관음도, 성인봉과 섬목이 한 눈에 들어오고 보리장나무 열매가 달다.

바로 옆이 깍새섬, 길게 다리가 놓였다.

깍새는 갈매기 비슷한데 개척당시 밤에 불을 놓고 몰려드는 새들을 잡아먹었다.

대섬이라 불리는 죽도는 저동에서 소를 배에 태워 섬으로 오르면 죽어야 내려오는 곳. 다래순, 말오줌대와 헤어지면서 일행들은 내수전 전망대를 내려왔다.

25년 더 됐을까?

항구 모퉁이 2층 찻집에서 바라보던 바다는 낯선 한량의 정체를 아는 듯 얼마나 많은 날 머리칼 날리게 했던가.

마시며, 기울이며 불러 젖혔던 그 때의 노래와 파도, 추억에 잠길 여유도 없이 다음 목적지로 달리지만 국가재건최고회의 표석에 있는 팽나무(폭·포구)를 다시 만나고 간다.

도동으로 넘어오면서 해가 기울어졌다.

5시 반경 약수터, 독도박물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정상에는 멀리 동해의 검푸른 물빛과 항구를 비추는 햇살이 흐려서 빛바랜 사진 풍경이다.

굴거리·후박·해송·참식·마가목·보리수·산벚·사철·섬괴불·말오줌대·삼나무…….

털머위·애기똥풀·아이비, 건너편 검은 바위산 절벽에 아래로 떨어질 듯 매달린 2,500년 묵었다는 향나무다.

1985년 태풍에 반쪽을 잃고 지금은 쇠줄에 의지해 힘겹게 살지만, 언제 또 팔다리가 날아갈지 모른다.

울릉도 향나무를 울향으로 불리는데 옛날에는 흔해서 땔감으로 썼다는 것.

나무 타는 냄새에 모기가 없을 정도로 향이 강했다.

일본인들에 의해 무차별 베어져 그 자리에 삼나무들이 심겨졌다.

토종 향나무는 대풍령이나 통구미 등지의 급경사지 바위에 붙어사는데 석향이라 불린다. 육지에 비해 향이 진하고 검붉은 색을 띈다.

초기에는 울릉도 최고의 선물이 오징어보다 향나무를 더 크게 쳤다.

내세구복(來世求福)과 미륵이 온다 해서 바닷가에 묻었는데 매향(埋香)이라 했다. 수백 년 흘러 굳어진 향은 영혼까지 맑게 해준다고 믿었다.

우윳빛 섬괴불 꽃이 바다를 바라보며 한껏 피었는데 연락선이 노을에 비친 물결 위로 붉은 선을 그으면서 점점 멀어져간다.

강릉 가는 배일 것이다.

6시경 약수공원에 내려오니 솔송나무, 굴거리, 팔손이 그리고 말오줌대, 마가목. 울릉도 원주민 최 과장은 말지름대, 마구마라 한다.

사동으로 넘어서면서 스쳐가듯 흑비둘기 서식지엔 비둘기 한 마리 없고 후박나무와 소나무는 아직 기세등등하다.

밤바다. 도동 항구에는 수산물 좌판이 섰지만 가게에 앉아 호박막걸리 몇 잔 나누다 경일여관 골목길 올라간다.

내일 아침 성인봉 등산을 위해 김밥 몇 줄, 여관주인에게 차까지 부탁해 뒀다.

새벽 5시 일어나 김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아래층 내려오는데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KBS방송국 입구에 내리니 땅두릅, 털머위, 취나물이 앳되고 애기나리는 하얀 꽃을 달았다.

검은 흙들이 순식간에 흘러내릴 경사 급한 밭을 지나 성인봉 등산로, 독도가 보이는 방향으로 해가 맑다.

독도에 나무 심으러 간 일이 벌써 아득해졌다.

보리장·섬괴불·후박·해송·동백나무……. 그들은 얼마나 자랐을까?

괭이갈매기와 파도 속에서 라면 먹던 일과 상비약처럼 귀하게 여겼던 말 통 소주의 기억도 아득하다.

장철수 대장을 울릉도에서 만난 것은 1991년 가을이었다. 손위 뻘 되는 그는 외대를 나와 독도관련 민간단체에서 활동했다.

개량 한복을 입고 수염까지 길렀는데 잔을 기울이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고 국토에 대한 집념을 읽을 수 있었다.

당시 이예균 푸른울릉독도가꾸기모임 회장, 허영국 기자, 김성도씨 등과 항구의 술집에서 여러 번 만났다.

독도에 있던 김성도씨는 날씨가 안 좋을 때 울릉도로 나오곤 했다.

자연스레 홍순칠(洪淳七 1929~1986) 대장이 화제가 됐는데, 울릉출신으로 독도경비 활동을 펼쳤다.

미군정시절 국방경비대원,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자 울릉 상이용사(傷痍勇士)들과 독도의용수비대를 결성, 1956년 경찰에 넘겨주기까지 실효적 지배에 기여하였다.

독도나무심기, 태극기와 급수장설치 등 독도 지키기에 헌신적이었다.

정부 훈장을 받았다.

우리는 밤늦은 항구에서 습관처럼 바위섬 노래를 불렀는데 이예균 회장이 운영하는 제일생명 2층에 기타 교실을 열었던 까닭이었다.

나의 기타 줄에 저마다 두주불사(斗酒不辭) 실력을 겨뤘다.

화산섬 울릉도는 화산회토가 발달하고 비탈 밭은 끈끈한 점토질(粘土質)로 웬만큼 비가와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토양 유기질 함량이 육지보다 높아 취나물·명이·부지깽이 등 각종 산나물이 자라는 데 좋다. 도둑·공해·뱀이 없고 물·미인·돌·바람·향나무가 많아 삼무오다(三無五多)의 섬으로 불린다. 특히 섬인데도 물이 좋아서 주민들의 낯빛이 흰 편이다.

고비, 관중, 애기똥풀, 아이비가 가지런히 폈고 관중은 정말 왕관처럼 생겼다.

동백, 쥐똥·후박·참식·산벚나무, 해송, 조릿대, 우산고로쇠, 마가목과 너도밤나무 사이를 지나 갈림길 있는 곳까지 왔다(도동1.5 ·성인봉2.6킬로미터).

참나무과(科)인 너도밤나무 잎은 느티나무와 밤나무의 중간 크기인데 긴 타원형이다.

러일전쟁 때 만주 일본병사들이 행군하면서 밥을 먹어 배탈·설사로 자꾸 죽자 너도밤나무 목초로 만든 환약(丸藥)을 매일 먹도록 했는데, 마침내 전쟁에서 이겼다.

정복의 정(征), 러시아의 로(露)를 붙여 정로환이다.

배탈·설사약의 대명사가 됐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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