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자들은 한국브랜드인줄 몰라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CJ그룹(이하 CJ)은 전체적으로 보면 중국 사업에서 실패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행여나 늦을세라 보따리를 싸서 속속 ‘차이나 엑소더스’에 나서는 상당수 글로벌 기업들에 비하면 그래도 아주 준수한 편이라고 단언해도 괜찮다.

특히 중국 사업에 관한 한 역대급 최악 기업으로 손꼽혀야 할 롯데와 비교할 경우 더욱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다.

중국 내 임직원들과 기업 문화에 대한 평판도 웬만한 글로벌 기업 못지않게 좋은 편에 속한다.

최근에 벌어진 기가 막힌 사례 하나를 상기해보면 아마도 이같은 기업문화에 대한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불과 얼마 전까지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코리아타운인 왕징(望京)에 거주하던 모 기업의 A 차장은 나름 각종 스펙이 괜찮은 편에 속한다.

유능하다는 평가도 들었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듯 다소 오만하고 대인관계에서 예의가 없다는 평가를 듣고는 하는 것은 결정적 약점이었다.

유유상종이라고 이 점은 부인 B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B가 사고를 쳤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한국인 중년 부인 C와 주차 문제로 크게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둘은 근처 파출소로 향해야 했다.

얼마 후 A도 나타났다.

이어 그가 부인을 두둔하면서 C에게 험한 소리를 마구 해댔다.

C는 억울했으나 A의 서슬에 주눅이 들어 남편 D만 기다려야 했다.

D 역시 부인의 기대대로 적당한 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곧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다.

A가 D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면서 “여기는 웬일이시냐?”고 물은 것이다.

알고 보니 둘은 한 회사의 상사, 부하 관계였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이 가족을 대동하고 본사로 들어오라는 소환 명령을 받은 것은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 기가 막힌 스토리가 현장에 있던 중국인 경찰에 의해 외부로 널리 알려진 탓이었다.

CJ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직원들끼리의 밀접한 교류가 가족들 간의 유대로 이어지는 케이스가 많기 때문에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

게다가 신규 채용 때의 조건에 인성이 포함되는 것도 엉뚱한 사건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감정 노동이 많은 중국 사업의 특성 상 현장 직원들에게 철저한 인성 재교육을 시키는 노력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말할 것도 없이 직원들의 평균적인 훌륭한 인성이 사업을 성공하게 만드는 필요,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마불사의 신화에만 매달린 것 외에도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아무래도 다음으로 거론해야 하는 문제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CJ그룹 산하 뚜레쥬르와 투썸플레이스의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 매장 외관. 정체성이 확 드러나지 않고 있다. 중국인들은 자국 브랜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베이징=전순기 통신원.
CJ그룹 산하 뚜레쥬르와 투썸플레이스의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 매장 외관. 정체성이 확 드러나지 않고 있다. 중국인들은 자국 브랜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사진=전순기 통신원(베이징)].

CJ는 금세기 들어 중국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현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그룹으로 특히 유명하다.

한때 잘 나가던 중국과의 홈쇼핑 합작사 동방CJ를 운영했던 것이나 2017년 물류회사 CJ로킨을 출범시킨 사실만 봐도 그렇다는 점은 바로 알 수 있다.

현지화는 당연히 좋은 전략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하지만 완전히 근본을 잊어버리는 뿌리조차 없는 현지화는 곤란하다.

CJ는 이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 같다.

다시 말해 너무 현지화에 열중하다 보니 중국 회사처럼 인식되고 있는 우를 범하지 않았나 보인다.

실제로 중국 소비자들은 CJ를 자국 식품 회사인 시제(希杰)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기야 마트 같은 곳에서 수북하게 쌓여 있는 두부나 만두 등 제품들을 보면서 중국 소비자들이 바로 한국의 브랜드를 생각한다는 것은 꽤나 이상할 수도 있다.

시제(希杰) 브랜드의 매니아인 베이징의 주부 쑹린(宋琳) 씨의 말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10여 년 전부터 시제 제품들을 주로 구매해 먹고 있다. 가성비가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중국 식품 회사의 수준이 이 정도인가 하고 놀라고는 했다. 최근에 시제가 한국 브랜드라는 사실을 알았다. 개인적으로 볼 때는 한국 브랜드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면 더 좋을 것 같다. 왜 그러지 않는지 이상하다.”

상하이(上海)의 한 CJ CGV의 실내. 자사의 저력을 마케팅에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상하이(上海)의 한 CJ CGV의 실내. 자사의 저력을 마케팅에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검색엔진 바이두(百度)]

엔터테인먼트 분야 사업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보인다.

다른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예컨대 140여 개의 영화관 CJ CGV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만 봐도 좋다.

한국 브랜드로 보는 중국인들이 거의 없다.

이러니 CJ E&M이 만든 영화 ‘기생충’의 흥행에 편승, 짜파구리까지 만들어 파는 농심의 발 빠른 마케팅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왜 우리 시제라는 기업이 한국 영화에 투자해 아카데미상을 받게 했지?”라는 말을 중국인들로부터 듣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나 싶다.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CJ 구성원들에게 우리가 최고라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그룹 산하의 식품, 엔터테인먼트, 물류 등의 업체들이 각 분야에서 극강의 기업으로 두각을 나타내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에 대해 CJ 베이징 지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이 모씨는 "CJ는 누가 뭐래도 이미 글로벌 기업이다. 중국에서도 이런 자신감과 정체성을 바탕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면서 "중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대면 홍보 역시 강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업이 재도약하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중국 사업의 판을 지금부터라도 다시 짤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CJ가 중국에서 글로벌 기업다운 위용을 과시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얘기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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