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가치와 존재의 숭고함을 일상의 언어로 섬세하게 풀어내다
‘침엽의 생존 방식’, 박인숙 著, 천년의 시작 刊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박인숙 시인의 시집 『침엽의 생존 방식』이 출간됐다.

시집 『침엽의 생존 방식』에서 시인은 일상적 경험을 시적 서사의 자리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노래한다.

시인이 구축한 시적 서사는 곡진함으로 충만하다.

해설을 쓴 문종필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시인은 “‘나’보다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가 꿈꾸는 가능성”을 통해 “‘나’의 슬픔과 고독을 토대로 조심스럽게 대상들과 만난다”. '

이는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자기중심적 사유 체계를 무너뜨려, 대상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시인의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시적 언어를 통해 실천하려는 시인의 의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평범하다 해도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삶의 주요한 덕목이다. 요컨대 이번 시집은 작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보편적 인권과 절대적 평등에 대한 가치를 몸소 실천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사물들은 시인의 감각적 언어와 빛나는 사유를 만나 낯선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시인은 일상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집요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을 보냄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확장한다.

더불어 대상의 이면에 자리한 생명의 가치와 존재의 숭고함을 일상의 언어로 섬세하게 풀어냄으로써 미학적 가치를 획득한다.

이는 이번 시집의 크나큰 성취로써, 우리 시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리라 기대해 봄 직하다.

문종필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어떤 혁명은 내 안에 있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여린 풀잎을 쳐다보며 친구들에게 섭섭하게 했던 지난날을 떠올리거나, 흔들리는 지하철 창문 너머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며 후회와 미련을 곱씹는 것도 하나의 혁명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은 습관처럼 오랜 시간 굳어진 ‘나’의 인식을 새롭게 회전시켜 준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어쩌면 이러한 발견이야말로 이곳의 삶을 새롭게 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값진 자산이지 않을까. 혁명은 이처럼 보편적인 맥락에서 통용되는 일상적인 것과 만나기도 한다.

박인숙 시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바람을 안고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연처럼/ 일상과 고도를 달리하여 만나게 될 내 안의 나’(「영종도 가는 길」)에 관심을 보인다. ‘나’보다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가 꿈꾸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나’의 슬픔과 고독을 토대로 조심스럽게 대상들과 만난다. 시인의 눈(目)은 젖어있어 함부로 슬픔을 떨치지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눈물의 원인을 잘 알기에 대상을 함부로 꺾지 않는다. 그녀의 작은 두 손은 대상을 끌어안기에 적합하다. 그녀의 시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라고 평가했다.

이 시집의 표제작인 「침엽의 생존 방식」도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만나는 평범한 이웃을 섬세하게 관찰하면서 얻는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그 깨달음은 애정과 삶에 대한 긍정으로 연결된다.

활엽을 꿈꾼 시간만큼 목마름도 길어

긴 목마름의 절정에서 돋아난 가시들

침엽은 햇살도 조금 바람도 조금

마음을 말아 욕심을 줄인다

 

대리운전 하는 내 친구 금자

밤마다 도시의 휘청임을 갈무리하는 사이

보도블록 위에 포장마차로 뿌리내린 민수 씨

그들은 조금 웃고 조금 운다

바람 속에 붙박여 시간을 견디는 일이

침엽의 유전자를 가진 자들의 몫이므로

뾰족이 가둔 눈물이 침엽의 키를 늘이고

세월을 새겨가는 것

 

그들의 계절에는 극적인 퇴장

화려한 등장 따위는 없다

한가한 날 고작 흰 구름 몇 가닥

바늘 끝에 걸쳐두거나

흐린 겨울 하늘이 너무 시릴 때

눈꽃으로 피사체를 만들어보거나

 

혹한의 계절에도 홀로

숲의 푸른 내력을 지키는 건 침엽이다

그들의 날카로운 생존 방식이 숲을 깨우고

바람의 깃털을 고른다

햇살도 이 숲에선 금빛으로 따끔따끔 빛난다

(「침엽의 생존 방식」 전문)

박인숙 시인.
박인숙 시인.

박인숙은 경남 고성 출생, 동아대학교 국문과 졸업했다.

2008년 제9회 동서문학상 대상을 수상, 『월간문학』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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