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란했던’ 종로학원 삼남매, 재산놓고 골육상쟁 ‘소송전’
종로학원 일군 부친, 현대가 사위인 장남에게 재산상속 화근
현대차그룹 이미지 훼손되자 정 부회장 퇴임설도 솔솔 일어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사진=연합뉴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호일 기자】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이 동생들과 펼치는 골육상쟁의 소송전이 점입가경이다. 금세 끝날 것만 같았던 이 드라마는 시간이 지나고 회를 거듭할수록 막장으로 빠져 들면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쯤되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석불반면’(石佛反面)이란 소리가 나올만도 하다.

이 드라마의 주연급인 정태영 부회장은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둘째 사위이자 정의선 부회장의 매형이다. 정씨 남매간 다툼은 사실 그룹 입장에선 사돈집안 문제다. 하지만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룹 이미지가 적지 않게 훼손되고 있어 마냥 손 놓고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일각에선 정 부회장의 퇴진설도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22일 법조계와 재계에 따르면 종로학원 남매간의 '10억원 유언장' 1심 소송은 얼마 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패소로 끝났다. 정 부회장의 남동생인 정해승씨와 여동생인 정은미씨가 정 부회장과 부친을 상대로 낸 유언효력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한 것.

그러자 정 부회장이 곧바로 동생들을 상대로 2억원 상당의 모친 유류분 반환청구소송을 걸었다.

이렇듯 송사가 끊이지 않지만 이들 삼남매는 좋은 부모를 만나 누구보다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랐다.

정태영 부회장의 부모인 종로학원 설립자 정경진-조경남 부부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부친이 유명한 수학 선생인 탓에 삼남매는 머리도 좋았고 공부도 잘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아들 둘은 모두 서울대에 들어간 뒤 미국에서 유학했다. 막내인 딸도 이대에 입학했으니 자식농사는 잘 지었고 남 부러울 것이 하나 없었다.

장남 정태영은 고려대 사대부속고와 서울대 불문과 졸업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차남 정해승은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와 펜실베니아주립대 석사과정을 마친 뒤 IBM코리아시스템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막내 정은미는 서울예고-예전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서 이화여대 독문과를 졸업했으니 삼남매는 하나같이 수재였고 재원이었다.

종로학원 집안 불행의 시작점은 어디쯤일까. 재계 주변에선 장남이 현대가로 장가를 가게 되면서 막을 올렸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가업인 학원사업의 대를 이어야 하지만 그는 결혼 이후 처가인 ‘현대맨’으로 변신한 것.

실제로 1985년 정몽구 회장의 차녀 정명이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정 부회장이 현대그룹에서 쌓은 경력은 화려하다. 그는 서른 살도 안된 1987년 현대종합상사 이사로 그룹에 발을 들어놓은 뒤 현대정공 미주 법인장, 현대모비스 전무, 기아차 구매본부장 등 초고속으로 요직을 거쳤다. ‘외부 영입’된 사위지만 철저하게 경영수업을 받은 것이다.

현대가도 화답했다. 2003년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털, 2007년 현대커머셜 대표를 그에게 맡긴 것. 이쯤되자 그는 ‘현대가의 로열패밀리’로 뿌리를 내렸다는 평을 받았다.

정 부회장이 현대가에서 로열패밀리로 변신하는 동안 종로학원은 부친과 차남이 운영했다. 특히 미국 유학파인 둘째 정해승씨의 활약상이 돋보였다.

그는 IBM에서 엔지니어로 잠시 근무하다가 종로학원 평가연구실장으로 몸담으며 부친 밑에서 학원 경영을 배웠다. 1992년 시대적 변화에 맞춘 종로M스쿨 등의 에드네트(이후 이루넷으로 상호변경)를 설립하며 그는 부친과 함께 학원사업을 한층 성장시켰다.

전업주부였던 막내딸 정은미씨도 거들었다. 그녀는 2004년 아빠와 오빠들의 든든한 배경을 믿고 종로편입학원을 설립하며 학원업에 뛰어든 것.

그런데 이즈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2005년 정경진 종로학원 회장이 장남에게 학원업을 전격 물려준 것. “나중에라도 하라”며 종로학원 지분 57%를 증여했다. 당시 ‘차남이 대업을 물려받을 것“이란 시중의 예상이 완전히 벗어났다. 이 바람에 종로학원은 졸지에 현대차그룹에 편입됐는데 일각에선 ”대기업이 학원업까지 하냐“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현대가로 호적을 파 간 것으로 알고 있던 장남이 가업을 물려받자 동생들로선 하늘이 무너지는 심경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현대가의 CEO가 된 장남은 연봉 30억원 안팎을 벌며 ‘고액 연봉자 대열’에 오르며 부와 명예를 함께 쥐지 않았는가. 때문에 ‘착한’ 동생들은 지분 많은 장남이 훗날 동생들을 따스히 배려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잘 나가던 정씨 남매의 학원사업이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먼저 차남이 설립해 코스닥에 등록했던 이루넷이 2009년 인수합병으로 남에게 넘어갔다. 이루넷은 이듬해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폐지가 될 정도로 엉망이 됐다.

전업주부에서 학원경영자로 변신했던 막내 정은미씨도 사업에서 멀어졌다. 종로편입학원이 2014년 해커스그룹에 매각돼 해커스종로편입학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기 때문.

정 부회장도 2014년 종로학원 지분을 하늘교육에 몽땅 팔아치웠다. 대기업의 불필요한 자회사 정리를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동생들 입장에선 부친이 일군 가업을 팔아 치운 장남에게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장남은 이렇게 매각한 종로학원 자산을 서울PMC에 차곡차곡 쌓았다. 빌딩 임대업체인 서울PMC 지분은 정 부회장이 73.04%, 동생인 은미 씨가 지분 17.73%로 사실상 장남 회사다.

부친의 가업을 이으려던 동생들은 잇단 학원 매각을 그저 바라 볼 뿐 저지할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이즈음 삼남매간 골육상쟁의 싸움이 본격 막을 올렸다.

먼저 막내인 정은미씨는 서울PMC 재산이 얼마인지 알려달라고 했지만 오빠는 이를 냉정히 뿌리쳤다. 그래서 2017년 서울PMC 회계장부 열람허용 소송을 제기했지만 동생인 은미씨가 패소했다.

정 부회장은 종로학원의 남은 재산도 정리하고 나섰다. 서울PMC는 2018년 대치동 이강학원 빌딩, 중림동 종로학원 강북본원 등 빌딩 3채를 773억원에 매각하며 ‘종로학원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이러는 사이 2019년 2월 삼남매의 모친이 별세했다. 어머니 조씨의 유언으로 남겨진 재산 10억원은 그동안 장남에 비해 홀대받은 동생들 몫이었다. 정 부회장은 이마저도 나눠가져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동생들 손을 들어줬다. 2018년 3월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 중이던 조씨는 간병인들에게 "중요한 서류를 써야한다"며 “현금과 부동산을 차남과 막내에게 물려주겠다”고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 이번엔 오빠가 졌다.

소송전 와중에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동생 은미씨가 2019년 9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오빠인 정태영의 ‘갑질 경영’의혹을 잇따라 제기한 것.

오빠의 독주를 막을 이렇다할 방법을 찾지 못한 동생 은미씨가 부도덕한 그를 처벌해 달라고 진정한 것. 이에 정 부회장도 은미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맞소송을 제기하며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됐다.

이뿐 아니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동생들을 상대로 모친이 남긴 재산, 즉 2억원 상당의 유류분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재산을 둘러싼 끝없는 삼남매의 싸움을 지켜보던 세인들은 지쳤을 법하다. 이쯤되면 이들이 써내려가는 각본은 보통의 상식과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막장드라마다.

올해 환갑을 맞은 정 부회장은 금융회사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재벌기업의 CEO다. 또 수시로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에 등장해 현대가에서 쌓아 올린 명성을 설파한다.

하지만 혈육간 소송전을 지켜보면 정 부회장의 이런 명품 이미지는 이내 실종되고 되레 처절한 액션영화 한편이 떠오른다. 1999년 개봉돼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그것. 극중 도망자와 추격자가 비오는 폐광을 배경으로 펼치는 혈투와 삼남매간 송사가 묘하게 중첩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단란했던 종로학원 삼남매가 재산을 둘러싸고 펼치는 싸움은 험악한 흉기만 들지 않았을 뿐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혈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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