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층층·매화말발도리나무 지나서 갈림길(선녀탕입구0.9·나한대0.9·의상대0.3·칼바위0.4·상백운대1킬로미터).

잠시 후 또 오르막 계단이다.

말발도리는 산골짜기 바위틈 물 빠짐 좋은 곳에 잘 자라는 2미터 정도 키 작은 나무.

마주나는 잎 앞뒤 별모양 털이 나고 가장자리 작은 톱니가 있다.

6~7월 하얀 꽃이 줄기 끝에 모여 피고 연노랑 색을 띠기도 한다.

소요산.
소요산.
의상대.
의상대.

깍지열매는 9~10월에 익는다.

우리나라 특산 매화말발도리는 4월에 매화꽃처럼 잎겨드랑이 두세 송이 모여 핀다. 하얀 개나리꽃으로도 보인다.

꽃은 매화, 열매 주머니가 말발굽에 박는 편자를 닮아, 가지 꺾일 때 댕강 소리 나서 매화말발도리·댕강목이라 한다. 여성스런 애교의 상징, 그래서 저 앞에 공주봉 바라보며 피었을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이름, 요석별궁지

이런 날 땀흘려 오르며 백팔번뇌를 생각하는데 팥배·신갈·철쭉나무 파란 하늘 위로 흰 구름 부질없이 흐른다.

한참 앞서 오른 일행은 벌써 저만치 간다. 오후 1시 10분 나한대(의상대0.2·선녀탕갈림길0.2킬로미터). 땡볕에 서서 해탈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생각하는데 맞은편 바위 의상대는 왼쪽으로 누웠다.

10분 뒤 의상대(587미터, 공주봉1.2·나한대0.2킬로미터). 동두천 군부대, 북서쪽 감악산이 멀지 않고 불볕에 데인 정상, 비행기 소리만 저 멀리 하늘 속으로 사라져 간다. 땀이 뚝뚝 떨어져 수첩에 볼펜도 잘 구르지 않는다.

바위 옆의 신갈나무 잎이 누렇게 변했는데 참나무시들음병에 걸린 듯, 건전한 나무와 뚜렷이 대비된다.

갈참·신갈·졸참나무 등에 매개충(媒介蟲) 광릉긴나무좀이 옮기는 것으로 시들어 말라죽는 병이다.

여름부터 잎이 서서히 말라 죽는데 다 떨어지지 못해 겨울까지 달려 있다. 나무 주위에 톱밥 같은 배설물이 쌓인다.

감염된 나무는 곰팡이로 인해 수분 이동 통로가 막혀 죽는다. 2004년 성남에서 처음 나타나 경기·수도권으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누리장나무 하얀 꽃을 두고 갈림길(공주봉0.4·의상대0.7·샘터0.5·일주문1.4킬로미터)에서 공주봉으로 올라간다. 샘터길 이정표를 보니 갈증은 더 나고 물은 반 병밖에 남지 않았다. 배낭엔 토마토·오이 몇 개 뿐.

개박달·신갈·물푸레·당단풍나무를 지나 뜨겁게 달궈진 철골계단을 올라야 공주를 만날 수 있다. 땀 뻘뻘 흘리며 오른다.

공주봉과 공주봉에서 바라본 동두천.
공주봉.
공주봉에서 바라본 동두천.
공주봉에서 바라본 동두천.

평범한 사랑은 절정(climax)이 없다 해도, 마흔의 원효가 스무 살 과부에게 빠졌으니 어찌 파계(破戒)하지 않겠는가?

고귀한 러시아 성직자 라스푸틴(Rasputin)은 니콜라이 2세 황후의 궁중에서 음탕하게 살다 비명에 갔고, 30년 면벽수도(面壁修道)하던 생불(生佛) 지족선사도 황진이 유혹에 못 이겨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의 원조가 됐다. 그러나 원효는 파계승으로 성공한 경우다.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원효(617~686)는 의상(625~702)과 떼놓고 얘기할 수 없지만 6두품 출신 기인(奇人)으로 알려졌다.

이름이 설서당(薛誓幢), 진평왕 때 압량군(押梁郡, 경산)에서 태어났다. 의상과 당나라 유학 가던 중 토굴에서 잠자다 물을 마셨는데 깨어 보니 공동묘지의 해골 물, 크게 깨달아(주8) 발길을 돌려 민중포교에 나선다.

노래와 춤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면서도 무열왕의 둘째딸 요석과 관계를 맺어 파계했다.

그러나 14일 만에 싫증을 느끼고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며 귀족불교를 가난한 사람, 어린아이까지 염불할 수 있게 가르친다.

인간본성으로 돌아가자는 일심(一心), 실제로 돌아가면 하나로 만나는 화쟁(和諍), 모든 집착을 버리는 무애(無碍)가 그의 사상이다.

말년에 왕궁에서 강의했고 70살까지 살았다.

“하늘 받칠 기둥을 깎으려는데 자루 빠진 도끼가 없느냐” 하니, 요석공주가 “도끼를 빌려 드릴 수 있다.” 해서 낳은 아들이 이두(吏讀)를 만든 설총이다.

깨달음 얻기 위해 소요산에 들어온 건 믿을 만한데 요석공주가 이곳까지 따라 오지는 않았을 터.

그런데 자재암 입구에 요석별궁지가 있다.

원효굴.
원효굴.
원효폭포.
원효폭포.

오후 1시 50분 공주봉(526미터, 의상대1·일주문1킬로미터).

헬기장 뜨거운 햇살 아래 넓은 판자 터를 만들어 놓았고 산벚·싸리·물푸레·떡갈나무 너머 동두천 시내가 환하다. 하도 더워서 토마토·오이, 물 몇 모금, 10분쯤 쉬었다 간다.

가래나무 지나 오후 2시 10분께 갈림길(공주봉0.2·의상대1.4·왼쪽길 주차장1.4·소요산역2·일주문1.2·소요산역3.5킬로미터). 미역줄·층층·물푸레·물박달·고로쇠나무 지나 낭떠러지 바위에 서니 의상봉, 동남쪽으로 바윗돌이 누웠고 왼쪽 바위산 밑에 자재암이 조그맣다.

“청춘홍안을 네 자랑 말아라 덧 없는 세월에 백발이 되누나 ~

동두천 소요산 약수대 꼭대기 홀로 선 소나무 날같이 외롭다.”

청춘가 한 곡조에 어느덧 2시 반 샘터, 계곡 밑에 쉬었다 가기 좋은데 앉을 곳 없다. 찬바람 나오는 계곡 근처 구 절터, 구절터인지 헷갈린다.

옛 절터가 아닌가? 10분 지나 다시 백팔번뇌 계단에 이르고 원효굴·원효폭포에는 사람들이 아예 진을 쳤다. 다른 사람이야 오든지 말든지, 뭐라고 하든 말든……. 어쩌다 우리 사회에서 품위 있는 여행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이처럼 실종되고 말았는가?

소요산역에서 접근성 좋은 것도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생각하면서 걷는데 갑자기 소나기 내리니 계곡마다 박수소리 요란하다.

얼마나 덥고 그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소나기에 환호를 할까? 빗물 젖은 아스팔트 열기가 코끝으로 확확 올라온다.

오후 3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도로 건너 소요산 역. 전체 6.6킬로미터 4시간 20분 걸었다.

<탐방로>

● 정상까지 4.1킬로미터, 2시간 30분 정도

※전체 6.6킬로미터, 4시간 20분

소요산 주차장 → (40분)자재암 → (30분)하백운대 → (30분)칼바위 → (40분)나한대 → (10분)의상대 → (30분)공주봉 → (40분)샘터 → (40분)소요산 주차장

* 무더운 바위 산길, 두 사람 걸은 평균시간(기상·인원수·현지여건 등에 따라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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