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노동조합이 지난 12일 경남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앞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밀 유출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지난 12일 경남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앞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밀 유출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호일 기자】현대중공업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기본설계 우선협상대상자로 내정됐다.

방위사업청의 한 관계자는 30일 "KDDX 기본설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중공업을 지정 보고할 예정"이라며 "연내 계약 완료를 목표로 관련 절차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정부가 7조8000억원을 투입해 오는 2030년까지 ‘미니 이지스함’으로 불리는 스텔스 구축함 6척을 확보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KDDX, 즉 한국형 차기구축함 사업자로 사실상 확정됐다.

초대형 수주에 성공하고 일감도 넉넉히 확보했음에도 업계 주변에서 축하분위기를 찾기 어렵다. 뭔가 찜찜하다. 왜 그럴까.

이번 수주를 둘러싸고 ‘울산’ 현대중공업과 ‘거제’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는 이전투구 양상을 보였다. 이 와중에 ‘기밀 유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이런 사정은 지난 20일 국회 국방위원회 방위산업청 국정감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의원들이 날선 공방을 펼쳤다.

특히 여당 의원들조차 KDDX 사업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의 기밀을 빼내갔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업자를 재선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현재 KDDX 기밀유출 문제로 25명이 재판에 회부돼있는데, 방사청은 이런 부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며 "(방사청이 유출을) 인지했음에도 현대중공업이 입찰 자격을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최소한 감점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경남 김해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국방위원장도 이날 "(KDDX 관련 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가 진행됐는데, 방사청은 그 내용을 알고 있었나"라며 "기밀이 현대 쪽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업이 어떻게 진행됐나"라고 따졌다.

이에 대해 왕정홍 방사청장은 "규정에 의해 (우선협상대상) 후순위자로 통보된 측(대우조선해양)이 이의를 신청하면 검증위원회에서 평가가 제대로 됐는지 평가한다"며 "최대한 외부인을 (검증위원회에) 많이 넣고 해봐도 결과를 뒤집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사법부 판결에 따라서 (우선협상자 선정 결과가) 달라질 수 있고, 여러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지난 27일 사법부의 판단이 나왔다. 결과는 현대중공업의 판정승. 서울지방법원은 이날 대우조선해양이 제기한 관련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 것.

앞서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8월 24일 "2013년 개념설계 자료를 현대중공업이 불법으로 취득해 이번 제안서 작성에 활용해 입찰이 공정하지 않았다"며 법원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확인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주장에 대해 "관련자들이 재판을 받는 사실은 인정되나 불법으로 취득한 자료를 이번 사건 입찰에 활용했는지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이 KDDX 기밀을 훔쳐간 것은 맞지만 이를 KDDX 입찰에 활용했는지는 알 수 없고, 방사청도 현대중공업 편을 들어줬다고 확증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근데 이번 재판은 입찰의 공정여부를 따진 것이지 현대중공업 기밀유출의 유무죄를 논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소위 ‘기밀 도둑질’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지난 2018년 4월 국군 안보지원사령부의 전신인 기무사령부는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의 특수선사업부 비밀 서버를 압수수색했는데 여기서 깜짝 놀랄만한 비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기밀유출’ 사건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당시 수사 관계자는 "해군과 방사청의 기밀 26건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기밀 가운데는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해군본부에 가서 몰래 촬영한 KDDX 기밀이 2건, 해군 장교로부터 건네받은 차기 잠수함 장보고-Ⅲ 기밀이 1건, 다목적 훈련 지원정과 훈련함 기밀 각각 1건, 그리고 이외에 21건이 더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사건에는 현역 장교 3명, 국방기술품질원 등 군무원 10명, 현대중공업 직원 12명 등 모두 25명이 연루됐다. 기무사 후신인 안보지원사령부는 이들 모두를 군검찰과 울산지검에 송치했다. 이는 단일 기밀유출 사건으로는 최다 송치 기록이다.

2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현대중공업은 죄값을 달게 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군검찰쪽은 신속한 편이지만 울산지검쪽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만약 재판에서 현대중공업의 혐의가 인정되면 어떻게 될까. 최악의 경우, 방위사업체 지정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다. 구축함이나 잠수함 같은 군함을 건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직원들에 대한 최종 법적 판단이 나올 때까지 이 회사는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수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재판은 언제 막을 내릴지 모른다.

이는 죄를 짓고도 대형 로펌을 끌어들여 수사와 재판을 질질 끌어서 그동안 챙길 사업 다 챙기는 전형적으로 방산업체들이 종종 쓰는 수법이다.

아무튼 방산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이 무려 7조원대의 초대형 수주에 사실상 성공했음에도 불구, 찬사는 고사하고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