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智異山)!

이름조차 벅차고 가슴 설레는 그 무엇이 있다. 동쪽으로 산청, 북으로 남원·함양. 서쪽이 구례, 남쪽이 하동.

백두산에서 흘러왔다고 두류산(頭流山), 신라 오악의 남악으로 어리석어도 오래 머물면 이치를 깨닫게 된다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숨어들었다.

삼신산 가운데 방장산(方丈山)이라 한다. 1967년 지정된 국립공원1호다. 천왕봉·반야봉·노고단의 3대 주봉을 비롯해 1,500미터 넘는 봉우리도 열 개 이상 된다.

피아골·뱀사골·화엄사 등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계곡과 동쪽은 남강, 서쪽은 섬진강이 흘러간다.

화엄사, 반야봉, 쌍계사

오전 5시 50분, 남원 인월 버스정류소 근처에 예약해 둔 개인택시가 먼저 와 있다.

백무동까지 2만 원, 화엄사까지 5만 원이라는데 우리가 타고 간 차는 두고 고불고불 산길을 30분가량 달려서 6시 30분 마한시대 성(姓)이 다른 장수 세 명이 지켰다던 성삼재에 도착한다.

택시요금 3만 5000원. 공원초소를 지나 올라가는 길옆으로 병꽃·쇠물푸레·신갈·산목련·산딸기·미역줄·국수·굴피나무…….

물건을 실은 차가 부릉부릉 지나가니 먼지와 매연이 숨쉬기 불편하게 한다. 조릿대, 산목련 군락지다.

철쭉꽃이 만발한데 7시 10분경 대학학술림과 노고단대피소(노고단고개0.4·천왕봉25.9·반야봉5.9킬로미터)근처에는 역겨운 냄새들이 진동한다. 여기서 화엄사까지 5.8킬로미터다.

지리산 노고단.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노고단.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노고단 표지석.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노고단 표지석.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구례 마산 황전리에 있는 화엄사는 백제 성왕 때 세워 인조 무렵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승려들도 죽었다.

왜구가 범종을 가져가려 섬진강을 건너다 빠졌다고 전한다.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6미터쯤 되는 석등과 백일홍나무가 잘 어울리는 천년 고찰이다. 해질녘 산자락에 울리는 종소리가 멋스럽다.

10분 더 걸어서 해발 1,440미터 노고단(老姑壇)고개 종주시점. 노고단은 화랑의 수련장으로, 제단을 만들어 산신제를 지내던 곳으로 도교적 이름이다.

할미단, 할미는 국모신(國母神)이라는데 글쎄……. 큰 산의 뜻인 한뫼에서 유래된 것 아닌가? 발음으로 굳어져 할미로 변하고 나중에 유식하게 한문으로 표기하다 보니 노고단이 된 것이다.

어느 여름날 들른 화엄사는 연분홍 백일홍이 만발했다. 각황전(覺皇殿) 앞의 석등도 활짝 핀 꽃처럼 한때는 활활 타올랐을 것이다.

국보인 석등은 기둥을 이루는 간주석이 팔각 대신 북처럼 생긴 고복형(鼓腹形)이 특이하다. 불가에선 밥을 지어 올리거나 먹는 일을 공양(供養)이라 하는데 도(道)를 이루기 위해 먹는다는 것이다.

나물과 밥 한 그릇으로 점심, 산해진미가 부끄러울 뿐 무채색이니 욕심 버리기 좋고 몸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의 음식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때 화엄사에서 노고단, 다시 화엄사로 내려갔는데 8시간 걸렸다. 화엄사계곡은 여름 산행에 최고다. 여름날 무넹기로 올라와 집선대에서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알았다.

물은 언제나 낮은 데로 흘러 빈곳을 채우니 물과 선은 하나. 제일 좋은 것(最高善)은 물과 같다 했으니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멀리 지리산 남쪽으로 흐릿하게 산 아래 세상이 가까웠다 멀어진다. 오늘 좋은날 5월 23일 토요일, 철쭉꽃은 만발하고 둥굴레, 나리, 관중의 무리들은 고향인 듯 저마다 넋을 놓고 사람들 맞아준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잔다는 가족들과 만났는데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네 명의 가족들이 마음을 합쳐 이른 시간에 산으로 왔으니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노각나무를 지나 산목련 군락이다.

병꽃·딱총·미역줄거리나무를 스치면서 고개 들어 멀리 바라보며 땀을 닦으니 골골이 첩첩산중, 긴 산줄기 파랑새 소리 자꾸 따라온다. 8시쯤. 발아래 두메부추인 듯 한 쥐오줌풀이다.

돼지령 헬기장(노고단고개 2.1·반야봉3.4·피아골삼거리0.7킬로미터) 걸으면서 마타리, 노린재나무, 당단풍, 산오이풀……. 산돼지가 뿌리를 좋아하는 원추리·둥굴레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남해쪽 산 아래는 쌍계사 계곡이리라.

어느 해 봄날 매화꽃 핀 나무집에서 친구들과 굴, 재첩국을 먹던 일이며 밤새 노래 부르던 날이 먼 산줄기만큼 벌써 아득해 졌다.

지리산 화엄사.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화엄사.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신갈나무 아래 멸가치를 지나고 쇠물푸레 꽃을 보면서 어느덧 8시 반 임걸령이다.

구상나무, 붉은 병꽃나무, 족도리풀……. 조선 산적 임걸(林傑)이 산을 넘나들던 보부상과 심지어 지리산 절집까지 털며 다녔다는 임걸령 고갯길은 오르기 힘들다.

남쪽 아래로 피아골인데 옛날 이 일대에 피밭이 많아 피밭골, 피아골이 되었다.

여순사건·6·25전쟁 등 현대사 격동기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피아골 단풍이 진한 것도 핏빛을 뿌렸기 때문일까?

이곳에선 10월 단풍제를 지낸다지만 섬뜩한 이름이 됐다.

한편, 피아골 깊은 골짜기에 씨받이 마을(種女村)이 있었는데 아들 낳지 못하는 집에 팔려가 아이 낳는 것을 생업으로 한 여자를 종녀(種女)라 했다.

아들 낳으면 혈육의 정을 끊었고, 딸을 낳으면 다시 씨받이로 대물림했다는 전설이 있다.

노루목(498미터, 노고단고개4.5·천왕봉21·반야봉1·삼도봉1킬로미터)을 지나고 우리는 반야봉에 들렀다 삼도봉으로 가기로 했다. 곤드레 나물도 걸음을 더디게 한다. 9시경 반야봉 삼거리에 짐을 내려놓고 반야봉 오른다.

0.8킬로미터 거리인데 어차피 다시 내려와서 거쳐 가야 할 지점이다. 어수리나물을 씹으니 줄기에 물이 나오는데 잎은 텁텁해 목이 마르다. 철계단 지나 제주도와 덕유산 이남에 자라는 구상(鉤狀)나무를 만난다.

바늘모양 돌기가 갈고리처럼 꼬부라졌대서 붙은 이름인데 유럽에서는 한국전나무(Korean Fir)로 부르며 최고의 크리스마스트리로 친다.

20분 더 올라 해발 1738미터 반야봉(般若峰)이다. 산스크리트어 프라즈나(prajna)를 음역(音譯)한 반야의 뜻은 깨달음, 만물의 참 모습을 환히 아는 것, 온갖 번민에서 벗어나 성불에 이르는 마음의 작용이라 하였다.

지리산의 이름도 이와 무관치 않으니 반야봉이 지리산의 상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여기는 지리산 모든 봉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밖에 없다. 성삼재와 노고단 안테나가 보이고 반야심경을 외울 정도로 조용하다.

지리산 반야봉.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반야봉.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가는 빗줄기 내리는 산길. 보통 지리산 종주(縱走)산행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30킬로미터 정도, 성삼재에서 천왕봉, 중산리로 내려가는 주능선만 해도 50킬로미터, 어머니 치맛자락 같은 둘레도 320킬로미터 넘는 대장정의 거리다.

반야봉 오르막은 바윗돌이 험해 이 구간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배낭 둔 곳으로 내려가는데 입을 벌리고 걸으니 하루살이들 때문에 캑캑거린다. 마가목을 두고 9시 40분 다시 반야봉 삼거리 능선길 합류지점이다.

호랑버들, 송이풀과 헤어지자 숲길 옆에서 자는 사람들이 부럽다. 저렇게 눈 좀 붙이고 가면 좋으련만 빨리 걷고 싶은 생각이 가만두질 않는다.

10시. 삼도봉(1499미터, 천왕봉20·노고단5.5킬로미터)에 사람들이 많다. 전북·경남·전남이 천지인(天地人) 하나 됨을 기리기 위해 삼각모양의 황동표지를 세웠다. 지금까지 얼마나 하나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바위에 앉아 잠시 쉬는데 반야봉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길게 뻗은 산줄기 따라 사스래·물푸레·신갈나무·조릿대를 스쳐 걷는다.

10시 30분경 하동 화개와 남원 산내 장꾼들이 물물교환 하던 고갯마루 화개재(노고단고개6.3·연하천매표소4.2·반선9.2킬로미터)에 닿는다.

북서쪽으로 구불구불한 뱀사골은 반야봉에서 남원 산내 반선리까지 10킬로미터 넘는 골짜기로 기암절벽 너럭바위, 폭포가 줄을 잇는 절경으로 꼽는다.

칠월칠석이면 절에서 뽑힌 중이 바위에서 기도하면 신선이 된다는 것, 이를 기이하게 여긴 대사가 옷에 독을 묻혀 놓는다. 밤이 되자 연못에서 이무기가 나와 중을 덮쳤지만 이무기도 죽었다. 1년에 한 번씩 절에서 인신공양을 한 것이다.

신선바위가 있던 마을은 반쪽신선이 됐다고 반선리가 되고 뱀처럼 굽어 흘러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뱀이 죽었대서 뱀사골로 부르게 되었다.

지리산 삼도봉.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삼도봉.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뱀사골.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뱀사골.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연하천 대피소.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지리산 연하천 대피소.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말오줌대 길옆으로 늘어섰다. 30분 더 걸어 토끼봉 지나니 물통은 벌써 비었고 목이 마르다.

“토끼봉, 토끼가 많이 나오는 곳인가 봐.”

“글쎄.”

“…….”

반야봉을 기준으로 동쪽인 토끼 방향(卯方)이기 때문에 토끼봉이라고 불렸다. 지도에는 샘이 있었는데 연하천까지 아직 3킬로미터 남았다.

1시간 거리 아닌가? 토끼봉 내려서 장터목산장 너머 천왕봉을 이정표 삼아 걷는다.

산조팝, 마가목이 반갑지만 또 목마르고 무릎에 부담이 간다. 11시 45분 드디어 연하천대피소에 왔다.

벌컥벌컥 샘물 몇 바가지 마셨다. 물병에도 가득 채우니 살 것 같다. 이곳에는 습기가 많아선지 그늘도 시원하다. 정오 무렵 갈림길(음정7.5·벽소령2.9·연하천대피소0.7킬로미터)인데 그야말로 산의 세계다.

벽소령 2.4킬로미터 앞두고 바위에 앉아 점심. 오후1시 다시 일어서 20분쯤 바위산인 형제봉(노고단12.6·벽소령대피소1.5·세석대피소7.8·장터목대피소11.2킬로미터)에서 피나무, 조릿대, 히어리를 만난다.

히어리(Korean winter hazel)는 우리나라 원산으로 조록나무과, 희어리속. 잎은 어긋나고 둥근모양의 밑은 심장형이다.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잎 양면은 매끈하다. 3월 하순에 노란 꽃이 꼬리처럼 늘어져 달리고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라남도에 자란다. 개나리, 산수유, 다음으로 봄을 알리는 꽃.

일제강점기 일본인 우에키가 송광사 근처에서 꽃잎이 벌집 밀랍처럼 생겼다 해서 납판(蠟瓣), 송광 납판화, 조선 납판화로 불렸으나, 해방 후 순천지역 방언 히어리가 정식 이름이 됐다.

시오리마다 볼 수 있대서, 햇살에 꽃이 희다는 등 여러 얘기가 있다. 뱀사골, 쌍계사 환학대(喚鶴臺) 숲길에서도 만날 수 있다. 산청 웅석봉이 군락지다. 1~2미터까지 자란다.

옛날 형제가 귀신을 뿌리치기 위해 등을 맞대 도를 닦다 굳어져 바위가 되었다 한다. 돌문을 지나고 시닥나무, 산아그배나무.

지리산 종주구간의 중간지점인 벽소령대피소(노고단14.1·연하천3.6·세석6.3·천왕봉11.4킬로미터)는 1시 50분경 바쁘게 지나친다.

푸를 벽(碧), 밤 소(宵), 밤하늘의 별과 달이 하도 맑아 푸른빛을 띄우므로 그야말로 벽소령(碧宵嶺)이다. 산 아래 내려서면 쌍계사 계곡에 닿을 것이다.

오늘밤 숙소 세석산장 도착을 위해 오후 2시까지 벽소령 통과해야 한다.

이미 지나온 연하천대피소 방향으로 오후 3시 도착해야 산장을 이용할 수 있다.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어떻게 발길이 바쁘지 않으랴.

산아그배나무 하얀꽃이 피었는데 가시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바위벽에 커다란 말벌집이 달렸다. 흙으로 빚은 부처인 소조불(塑造佛)처럼 생겼다.

벽소령 가는 바위문.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벽소령 가는 바위문.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벽소령.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벽소령.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명선봉과 벽소령에서 내려가는 화개장터 쌍계사 쪽으로 지리산토벌대 차일혁에 최후를 맞았던 빨치산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아지트가 있던 곳이리라.

그는 금산출신으로 북에서조차 외면당하며 끝까지 버틴 외로운 늑대였다. 1948년 여순 반란군을 이끌고 지리산에서 6여 년 걸쳐 유격투쟁을 벌였다.

8세기 성덕왕 무렵 세운 하동 화개의 쌍계사(雙磎寺)에는 최치원이 쓴 진감선사 비문과 김수로왕이 왕자를 위해 지었다는 칠불암(七佛庵)이 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방 전체가 금방 데워지는 아(亞)자형 온돌방(亞字房)이 유명하다.

어느 여름날 들른 칠불암은 칠불사로 변신했고 아자방도 수리를 하는지 철제빔이 험상궂게 놓여있었다.

어쩌랴? 쌍계석문(雙磎石門)을 최치원이 쇠지팡이 철장(鐵杖)으로 새겼으니 어찌 탓하랴만, 옛 맛은 사라지고 세속화·상업화로 화려의 극치가 됐다.

그래도 가락의 왕비에 의해 불교가 처음 왔던 곳 아닌가? 쌍계사는 달마 선문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셨으니 선찰(禪刹), 진감선사가 팔음(八音)률로 범패(梵唄)를 처음 열어 불교음악 시작이 이곳이다.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넘어 선과 범패를 아울러 쌍계(雙磎)라 했으니, 선현들의 은유적인 작명실력에 어떻게 감탄하지 않겠는가?

쌍계사 대웅전 앞 진감선사 탑비.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쌍계사 대웅전 앞 진감선사 탑비.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쌍계사 쌍계석문.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쌍계사 쌍계석문.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신갈나무 벌레집을 만난 건 오후 2시 5분. 털취·병꽃·산목련·말오줌대·철쭉·조릿대·미역줄거리·삿갓나물·지장보살, 이 높은 산에 호랑버들 잎이 두껍다.

헷갈리는 사스레나무와 고채목을 비롯해서 부게꽃나무, 시닥나무, 모데미풀·말발도리·히어리·터리풀·제비꽃·산앵도·마타리·뻐꾹나리·동의나물·꿩의다리·기생꽃·각시제비꽃·이질풀·승마·각시취·수리취·사초·박새, 애기나리보다 큰풀솜대…….

여기 식물 공화국의 임금님은 단연 기생꽃이다. 흰 저고리 꽃잎에 노란 분을 찍은 듯…….

야래향(夜來香)이던가? 그 향기 지금도 아찔하다.

“기생 꽃 이름이 좋아.”

“한량에겐 기생이 딱이지.”

“시와 그림에다 섬섬옥수로 가야금을 타면 환상적이다.”

첩첩 산이 보이는 곳에 앉아 쉬고 있다.

“행님 내일 몇 시에 가면 돼요?”

“오후 1시에 중산리로 올 수 있어?”

산청 생초에 사는 후배의 전화기 목소리다.

“고마워. 쉬지도 못하게 해서 미안해.”

개별꽃, 어수리를 쳐다보다 어느덧 덕평봉인 선비샘(세석산장3.9·벽소령2.4킬로미터)이다.

옛날 천대와 멸시를 받던 화전민이 샘터위에 묘를 써 달라고 해서 무덤이 하나 생겼는데, 누구든지 물을 마시면 샘터에 허리를 구부리니 절을 받는 것이다. 나도 허리를 굽힌다. 오후 3시경 다시 짐을 메고 떠나기로 했다.

“아무리 산이라도 우물 앞에서 씻으면 되나?”

“발에 물을 묻힌 거다.”

50분 더 올라 1558미터 칠선봉(벽소령4.4·천왕봉7·세석1.9킬로미터)에 이른다.

천왕봉과 하동쪽으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 구상나무와 잣나무, 고사목까지 어우러져 숲이 좋은데 회잎나무, 피나물 군락을 지나면서 비린내가 진하게 난다.

몇 시간째 산길 걸으며 궁금했는데 드디어 알아냈다. 코를 대어 보니 고약한 냄새의 원인은 접골목이다. 주변에 기세 좋게 자라는 관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완전히 왕관모양. 임금님 옆에서 비린내를 풍기고 있으니…….

“무엄하도다!”

“빨리 안 오고 뭐해?”

저만치 앞서가는 목소리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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