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없는 경제 민주화는 없다

[트루스토리] ‘민주주의가 시장경제 우선한다’고 하는 강한 주장을 폈던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논란이 될 수 있는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확한 진단을 했다. 그는 과거 발표한 토론문에서 “재벌개혁은 경제 민주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라고 정리한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힘의 균형과 견제인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이러한 힘의 균형과 견제의 원리가 원천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막아 힘의 남용을 초래한다.” “정치권력이 집중되면 독재의 폐해가, 시장 점유율이 집중되면 독점의 폐해가 나타난다.” “경제의 영역에서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경제 민주화는 이러한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되지 못하게 하는 재벌의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경제 민주화의 칼끝이 자신들에게 향해 있음을 잘 알고 있고 있는 전경련은 경제 민주화가 자신들이 아닌 그 누구에게 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규제를 할 때는 법률에 근거해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대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재벌 구조의 경제 민주화’ 와 ‘재벌과 중소기업 간 경제 민주화’를 강조하며 다양한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사전적인 행정규제 중심의 대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 정책들을, 되도록 사후적인 사법적 구제강화 정책들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소비자 등의 이익에 부합하는 헌법 합치적 양극화 해소방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독재타도와 정치 민주화의 관계만큼이나 명확한 것이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완성될 리가 없다. 무너진 독재정권위에 세워야 할 민주주의는 매우 지난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지 않고 민주화를 말하는 것은 허망한 것임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모두 공유하고 있다. 유통 대기업을 규제하지 않고 상인들의 생존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40%이상의 매출이 하청인 대 중소기업 관계에서 납품단가 현실화를 회피하고 중소기업 발전을 말하는 것도 허구이며, 주요 필수재나 내구재가 모조리 대기업의 독과점 품목인 현실에서 이를 외면하고 소비자 보호를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을 피해서 민주화해야 할 경제영역 따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독재정권 타도처럼 현재 시점에서 재벌개혁이 재벌 집단을 부정하고 재벌의 완전한 해체를 요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과거 ‘재벌 해체 방안’으로 제안한 재벌개혁안도 사전적인 의미에서 재벌해체는 아닌 것이다. 또한 경제 민주화 운동이 주장하는 ‘기업 집단법’은 본질상 ‘재벌 인정법’이지 ‘재벌 해체법’이 아니다.

‘기업분할 명령제’나 ‘계열분리 명령제’를 요구하면 재벌 해체론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맞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100년 역사도 넘은 미국의 반독점법은 독점을 해체하는 법이고 그 결과 미국에는 독점이 없어야 하는가. 따라서 재벌 규제를 한다고 하면 모조리 재벌 해체론이라고 받아들이거나 해석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재벌에게 이익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국민에게 불필요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재벌개혁을 지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경제의 진정한 개혁대상은 재벌이 아니라 금융자본이고, 재벌을 개혁한다고 재벌 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를 잘 못 손대면 자본시장에서 외국 금융자본에게 소유권이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일부의 주장도 있다. 더욱이 “세계 금융시장의 대혼란과 훨씬 심각해질 국내외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가장 시급한 것은 금산분리 등 재벌개혁이 아니라 외환금융시장 안정화 방안과 함께 외환금융시장에 대한 강력한 재 규제 방안의 마련이다. 또한 대공황 수준으로 경제가 추락할 것을 대비해 수천만 시민의 생계를 안정화시킬 사회안전망의 대폭 확충 역시 시급한 과제”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2008~2009년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현재 한국경제에서 자본 유출입을 통제할 것이냐 재벌을 개혁할 것이냐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동시에 시행해야 할 과제다. 특히 한국처럼 과도하게 자본시장이 개방된 여건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혼란은 곧바로 한국 금융시장과 특히 외환시장에 영향을 준다. 당연히 다양한 자본유출입 통제 장치를 통해 방화벽을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재벌개혁을 미루거나 연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2008~2009년 경제위기가 도래했을 때 원자재가 폭등하는데도 재벌 대기업들이 납품가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중소기업 사장들이 시위를 하는 진풍경이 일어났다. 유통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잠식이 격심해져서 상인들이 본격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재벌 대기업들이 앞장서서 신입사원 임금삭감과 기존직원 동결을 선언하며 노동자 고통분담을 선도했다. 이들은 우리 모두가 공유했던 경험이다.

오히려 자본통제와 재벌개혁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써 재벌개혁과정에서 외국 투기자본들이 허점을 노려 자본시장에서 대기업을 인수합병하거나 무모한 경영권 탈취행위를 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재벌 개혁 하려다 외국 투기자본에게 당한다는 식으로 양자택일을 해야 하고 최악(외국 금융자본)을 피하기 위해 차악(재벌체제)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합당하지 않다. 지금  재벌 대기업 집단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과도한 경제 권력을 규제하는 재벌개혁은 어떤 명분으로도 지체될 수 없다. 그리고 재벌개혁을 전제하지 않는 어떤 경제 민주화도 허구다. 아니 재벌에게 칼끝을 겨누지 않는 경제 민주화는 거의 모두 재벌에 의해 좌절될 것이다.

김병권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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