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근로자 사이에 알고리즘이 강력한 근로 통제
국내 179만명 종사...전체 취업자의 7.4%나 차지
저임금·장시간 노동에도 자영업자로 분류 보호 못받아
정부 "특별법 제정"....노동계는 "노동법 적용해야"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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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배달, 대리운전 기사 등 스마트폰 앱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일하는 플랫폼 종사자의 보호를 위해 별도의 법을 제정이 추진된다.

정부는 근무 방식 등에서 근로자로 볼 수 있는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서는 노동법을 적용할 방침이지만, 플랫폼 종사자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것 자체가 노동법 적용 의지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어서 노동계 반발을 사고 있다.

또 정부가 이날 공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넓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는 약 179만명으로 국내 전체 취업자의 7.4%를 차지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관계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 추진…플랫폼 기업 책임 강화

정부는 플랫폼 종사자 보호를 위한 법(이하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을 내년 1분기 중으로 제정할 계획이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은 플랫폼 기업과 플랫폼 종사자의 소속 업체 등이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한다. 배달기사의 경우 플랫폼 기업은 '배민라이더스'와 같은 배달 플랫폼, 소속 업체는 용역업체인 배달대행업체를 가리킨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은 플랫폼 기업이 플랫폼 종사자에게 업무 배정과 고객 만족도 등 평가 기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도록 하고 플랫폼 종사자가 이의 제기를 할 경우 성실하게 협의할 의무를 부여하게 된다.

또 플랫폼 종사자와 고객 사이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플랫폼 기업은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도록 했다. 플랫폼 종사자는 자유롭게 단체를 결성하고 보수 지급 기준 등에 관해 사측과 협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 플랫폼 노동자 179만명...저임금 장시간 노동

정부가 이날 공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플랫폼을 매개로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종사자는 179만명에 달한다. 업무 배정 등도 플랫폼으로 하는 좁은 의미의 플랫폼 종사자는 22만명(취업자의 0.9%)이다.

플랫폼 종사자는 대부분 프리랜서처럼 개인 사업자 신분으로 업체와 계약을 맺고 일해 노동법의 적용을 못 받는다.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제한 등 노동법의 안전장치 밖에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저임금, 장시간 근무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배달기사의 경우 배달 앱의 알고리즘에 따라 강도 높은 업무 통제를 받고 고객 만족도 등 평점이 낮으면 제재까지 받는 등 사실상 프리랜서보다는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플랫폼 기업들이 '혁신'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법의 규제를 피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근로자를 자영업자로 교묘하게 위장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노동계는 정부가 플랫폼 종사자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게 아니라 원칙적으로 노동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정부 대책에 대해 "플랫폼 종사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별도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라며 "플랫폼 종사자들이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로 내몰릴 공산이 크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부는 플랫폼 종사자의 직종이 배달뿐 아니라 가사 도우미, 디자인, 번역, 정보기술(IT) 개발 등 다양해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직종별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근로자에 해당하는 플랫폼 종사자가 자영업자로 '오분류'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문가 중심의 자문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래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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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업 등록제 추진…플랫폼 종사자 공제조합도 도입

정부가 이날 발표한 대책에는 플랫폼 종사자의 직종별로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보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미 배달기사, 대리운전기사, 퀵서비스 기사 등 16개 직종은 표준계약서가 마련돼 있다. 표준계약서는 불공정거래 금지, 종사자 안전관리, 분쟁 해결 절차 등을 규정한다.

정부는 배달업에 대해서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으로 인증제를 도입해 제도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등록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또 플랫폼 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에 걸림돌이 돼온 전속성 기준(주로 한 업체를 대상으로 노무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을 폐지하고 직종별 특성을 반영한 보험료 징수 체계 등을 마련할 계획이다.

플랫폼 종사자를 아우르는 '전 국민 고용보험' 구축에도 속도를 낸다.

이 밖에도 근로복지기본법 적용 대상에 플랫폼 종사자를 포함해 1인당 최대 2000만원의 생활안정자금 융자 등의 혜택을 받도록 할 예정이다.

플랫폼 종사자의 퇴직공제 등 복지를 위한 공제조합을 2022년에 도입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공제조합은 플랫폼 기업이 수수료 수입의 일정 금액을 공제부금으로 납부하고 플랫폼 종사자가 퇴직할 때 퇴직공제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배달기사가 사고를 당할 경우 손해배상을 하는 사업자 공제조합 설립을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한다.

이재갑 장관은 정부 대책에 대해 "플랫폼 종사자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며 "내년 1월 고용노동부에 전담 부서를 설치해 플랫폼 종사자 업무를 총괄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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