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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9-21 21:47 (화)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⑦] 석병산이 보내온 다급한 편지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⑦] 석병산이 보내온 다급한 편지
  • 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 승인 2021.01.04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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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병산 암석단애. 석병산 북동쪽 능선에는 기반암의 역들이 노출되어 암석들이 병풍처럼 단애를 이룬다.
석병산 암석단애. 석병산 북동쪽 능선에는 기반암의 역들이 노출되어 암석들이 병풍처럼 단애를 이룬다.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저는 강원도 강릉과 정선에 걸쳐 있는 해발 1055미터의 석병산입니다.

백두대간의 높고 수려한 산들 사이에서 저는 비교적 작은 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희귀한 카르스트 지형을 품고 있습니다.

남한의 몇 안 되는 산악 카르스트 지형을 대표하여 저는 백두대간에서 숲의 권리를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지요.

카르스트는 동유럽 슬로베니아의 크라스(Kras) 지방을 말하는 독일식 발음입니다.

그 동네에는 중생대부터 켜켜이 쌓인 석회암이 만들어 낸 특이한 지형이 많습니다.

덕분에 카르스트는 석회암으로 형성된 진귀한 지형을 나타내는 고유명사가 되었지요.

석병산 주능선부의 탑카르스트.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병산 주능선부의 탑카르스트.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석병산 정상 부근의 일월문.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석병산 정상 부근의 일월문.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남한에서는 저 석병산과 제 바로 옆의 이웃 자병산을 비롯하여 삼척, 영월, 평창, 단양, 제천, 문경 등에 카르스트 지형이 드물게 분포합니다.

카르스트 지형 주변에 어김없이 시멘트 공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 몸을 허물어 깎아내 시멘트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인에 의해 평양에 처음 시멘트 공장이 건설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중국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목적이었지요.

그 이후 남한에서는 삼척에 시멘트 공장이 처음 생겼습니다. 광복을 맞이하며 우리 석회암 산들은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어렵던 그 시절 한반도 공업 발달과 경제 성장의 힘이 되고 싶었거든요. 우리는 1970년대를 전후하여 해마다 수천여 톤의 시멘트 원료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성장한 이후에도 개발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석회암을 품었다는 이유로 단양과 제천의 숱한 산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습니다.

백두대간 보호구역에 숨어 지냈기 때문에 저는 다행히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이웃 자병산이 얼마 전에 희생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건 저에게 닥친 참화와 다름없습니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사이에 위치한 석병산과 이웃한 자병산. 과거에 석병산과 같이 우뚝 솟아 있던 자병산은 현재 허물어지고 다 깎였다. 위성 지도로 보면 마치 눈썰매장 같은 모습이다.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과 정선군 임계면 사이에 위치한 석병산과 이웃한 자병산. 과거에 석병산과 같이 우뚝 솟아 있던 자병산은 현재 허물어지고 다 깎였다. 위성 지도로 보면 마치 눈썰매장 같은 모습이다.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병산 산정부의 석회석 채석장 전경.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병산 산정부의 석회석 채석장 전경. [사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제 뼈대인 석회암이 바람에 깎여 고운 흙이 되는데 그중 붉은색 흙을 학술 용어로 ‘테라로사’라 부릅니다.

자병산은 그 이름처럼 붉은 흙이 참 곱던 산이었습니다. 같은 동네에 있는 유명한 커피숍 이름은 알아도 자병산을 찾아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자병산이 사라진 것은 21세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 시멘트 공장은 20세기 말부터 야금야금 자병산을 건드렸지요. 아마도 아주 많은 옥계리 사람들의 생계 수단이 채광이었을 겁니다.

자병산이 제 몸의 일부를 내어준 이유도 그 때문일 거고요. 자병산 개발 행위를 반대하던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커질 때 안도보다는 마을 사람들을 걱정하던 자병산의 모습을 저는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자병산 정상을 허물던 2003년 10월 8일의 모습. 자병산의 마지막 가을 풍경이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자병산 정상을 허물던 2003년 10월 8일의 모습. 자병산의 마지막 가을 풍경이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잘은 모르겠지만 그 무렵 미국의 자본이 흘러들었고 한국 정부는 자병산의 확대 개발을 승인하고야 맙니다.

그래도 제 친구 자병산은 자신의 몸을 깎아 내는 인간의 개발 욕망을 묵묵히 견뎠습니다. 인간이 자본 앞에 맹목적이거나 일방적일 때 자연의 호혜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낳기도 합니다.

자병산은 2012년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자병산이 제 몸의 일부를 놓아버렸던, 라파즈한라시멘트 광산의 붕괴사고는 예견된 인재였습니다.

현장의 하청 노동자 1명이 사망했고, 실종된 1명의 노동자는 아직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자병산은 자본을 쥐고 흔들던 시멘트 회사를 탓하며 목놓아 울었습니다.

2021년, 저는 자병산이 정말 그립습니다. 저 혼자 감당하기에 제가 맡은 이 일이 너무 버겁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서는 오직 제 품에서만 살 수 있는 식물이 있습니다. 나도여로와 산국수나무는 남한의 그 어디에도 없고 이제는 오직 제 품에서만 삽니다.

자병산이 살아있을 때는 함께 나누어 맡았던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를 기도하며 제 몸의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서 겨우 살려두고 있지요.

나도여로. 현재 밝혀진 남한의 자생지는 석병산이 유일하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나도여로. 현재 밝혀진 남한의 자생지는 석병산이 유일하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산국수나무. 과거에는 자병산에도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하나, 현재 남한의 유일한 자생지는 석병산 뿐이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산국수나무. 과거에는 자병산에도 분포했을 것으로 추정하나, 현재 남한의 유일한 자생지는 석병산 뿐이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특히 이 친구들은 서늘한 곳을 좋아하는 이른바 북방형 식물들입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식물들의 북방한계선은 자꾸만 더 북쪽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들이 제 품을 떠나게 될까봐, 이제는 자병산도 없으니 저를 떠나면 남한에서 영영 사라지게 될까봐 제 안의 두려움은 날마다 커집니다.

저를 비롯하여 일부 석회암 산에만 사는 식물의 종류는 많습니다. 드물기로 유명한 가는대나물과 왕제비꽃은 자병산의 그 넓은 품을 유독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자병산과 함께 사라졌지만 말입니다. 벌깨풀과 백리향이 자병산 정상에서 뿜던 그 향기도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이 세상에 없습니다.

석회암 지대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꿀풀과 식물 벌깨풀. 꿀풀과 식물은 대개 특유의 향을 지닌다. 우리나라 석회암 산지에 극히 드물게 분포한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석회암 지대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꿀풀과 식물 벌깨풀. 꿀풀과 식물은 대개 특유의 향을 지닌다. 우리나라 석회암 산지에 극히 드물게 분포한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가는대나물. 석회암 산지에 아주 드물게 자란다. 과거에 자병산에 널리 분포했던 식물이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가는대나물. 석회암 산지에 아주 드물게 자란다. 과거에 자병산에 널리 분포했던 식물이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삼척 맹방해변에서 다급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백두대간, DMZ와 더불어 도서 연안은 한반도의 3대 생태축입니다.

그중 백두대간의 석병산처럼 도서 연안의 해안사구는 바닷가 소수자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서신은 비보였습니다.

그 곱던 해안사구가 사라졌다고요.

그 자리에 초대형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고요.

탄소중립 달성이 국력과도 같은 21세기에 이게 무슨 말입니까.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야기하는, 그래서 신기후 체제의 주범과도 같은 석탄화력발전소가 심지어 건설 중이라니요.

4대강 사업만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정부는 수조 원 대의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를 국책사업으로 추진하였습니다.

죽은 자병산이 살아 돌아와 노할 일입니다.

일전에 희귀식물 갯방풍과 정선황기가 맹방의 그의 품에 안착했다며 기뻐했었는데 말입니다. 해변의 그 고운 모래들을 다 퍼내고 그곳에 살던 식물들을 모두 죽게 만드는 이 현실에 저는 너무 화가 납니다.

우리나라 희귀식물로 지정된 정선황기. 동해안 해안사구 일대에 자라던 몇 개체를 만난 적 있으나 공사로 모래가 사라진 지금, 그들의 안부를 묻는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우리나라 희귀식물로 지정된 정선황기. 동해안 해안사구 일대에 자라던 몇 개체를 만난 적 있으나 공사로 모래가 사라진 지금, 그들의 안부를 묻는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갯방풍. 해안가 주변에서 아주 드물게 발견된다. 몇 해 전 삼척 맹방해변 곰솔림에 뿌리 내린 어린 개체를 만났다. 공사가 진행 중인 지금, 그들의 안부를 묻는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갯방풍. 해안가 주변에서 아주 드물게 발견된다. 몇 해 전 삼척 맹방해변 곰솔림에 뿌리 내린 어린 개체를 만났다. 공사가 진행 중인 지금, 그들의 안부를 묻는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이 초대형 국책사업은 알만 한 대기업 회사들이 모두 뛰어들어 나누어 갖듯이 진행하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한국전력이 모두 사들이는 구조라고 합니다. 동해안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내륙으로 보내기 위해 한국전력은 경북 봉화군을 관통하는 고압 송전탑 건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인가요.

먼저 희생된 자병산에게 묻고 싶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출현하여 인간 세상이 몹시 어수선하고 어지럽습니다.

산도 인간도 결코 자연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저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류의 숙명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려운 이 시절, 자연을 대하는 과거의 잘못을 다시는 답습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저의 바람을 전하며 새해 인사를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