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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9-21 21:47 (화)
[한국 유산기(37)] 임을 그리는 치술령(1)
[한국 유산기(37)] 임을 그리는 치술령(1)
  •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 승인 2021.01.29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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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아침 여덟시 차창으로 안개를 뒤집어 쓴 산들이 삼각모양 일렬로 섰다.

첩첩산중, 전봇대 너머 보이는 산, 그냥 스치기 아쉬워 풍경을 담는다. 안개와 역광이 만들어주는 자연은 신비 그 자체다.

시골마을 아침은 도시에 찌든 것을 말끔히 씻어주고 있었다.

울산으로 가는 국도를 타고 한 참 지나자 연못가에 유럽풍 집들이 나무와 어울려 그림을 그려놓는다.

아침이 이렇게 맑을 줄이야.

나는 사진기에, 일행은 스마트폰에 저마다 작품을 만든다. 산행은 잊고 전원으로 난 길을 따라 간다.

집들은 그리 사치스럽지 않지만 나무, 잔디, 꽃들과 어울려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를 때는 것인지 굴뚝 연기가 검은 산 빛에 하얗게 오르고 햇살이 영롱한 물빛을 머금었다.

망부석과 벌지지, 충신 박제상

“그만 가자.”

넋을 놓은 일행들을 재촉했다. 문원골 문화촌, 새를 키우는 집에 새장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공간은 자유를 제한하는 곳이라고 할 때 우리들 공간은 얼마만큼일까?

문원골에서 바라본 치술령.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문원골에서 바라본 치술령.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등산로 입구.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등산로 입구.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연못 앞에 차를 세웠더니 치술령 서북능선 입구 등산로 팻말이 뚜렷하다. 지난번 이산 너머 외동 석계저수지 방면, 인적 없는 곳을 헤맸던 탓에 오늘처럼 정직하게 나 있는 산길이 반갑다.

그때 길을 몰라 저수지 입구에서 몇 번 물어도 묵묵부답이던 촌부들. 일손 바쁜데 놀러 다닌다고 마뜩찮게 여겼을 것이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 쉬는 날 산을 찾는 것이 뭐 대단하냐는 변명으로 매몰찬 도시와 배타적인 농촌의 특징들이 한 걸음씩 물러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처음 길에 석계 저수지 지나 달마사 입구 왼쪽 길을 모르고 곧장 올라갔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거의 20분 지났을까 임도를 만나고 드디어 산악회 리본과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길은 좋다.

망부(亡婦)의 한을 새기면서 걷는 길, 계곡물 소리, 꼭두서니·사위질빵·찔레…. 현호색이 앙증스럽게 꽃잎을 틔우는 산길 따라 1시간쯤 지나면서 가파른 흙산(肉山)이다. 8부 능선 바위 밑에 제법 큰 샘이 있는데 개구리 알이 물속에 잠겨있다.

이 높은 곳에 개구리 알이 있다니 놀랍다. 개구리는 나무 우거진 돌 밑이나 낙엽 쌓인 곳에서 겨울잠 자고, 보통 3~4월에 알을 낳는다. 높은 산이라도 물이 있으면 어디든지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동 쪽에서는 원점으로 돌아오는 데 4시간쯤 걸렸다. 몇 갈래 길이 있었지만 달마사 입구에서 정상까지 두 시간 오르고 다시 은을암·법왕사 갈림길 헬기장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것에 비하면 오늘은 즐거운 산길이다.

어제가 4월 20일, 때 맞춰 곡우(穀雨)에 비가 내렸으니 모든 것이 해맑다. 눈부신 햇살은 영롱 그 자체다.

오솔길을 밟는 발자국이 가벼워 콧노래 절로 나온다. 신록은 잎을 뽐내고 지저귀는 새소리, 계곡으로 졸졸졸 물소리, 상큼한 공기까지 선계(仙界)가 아니고 무엇이랴. 선녀 둘과 동행하니 오늘은 기어코 신선의 반열에 들 수 있으리라.

진달래 분홍 꽃이 간밤에 내린 빗물에 떨어졌다. 30분가량 오르니 능선 쉼터, 송골송골 땀은 옷을 적시고 빗물을 머금은 알싸한 꽃맛, 봄맛이다.

봉우리 세 개를 오르내릴락 어느새 망부석인데 서남향 전망대에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망부석(望夫石)…….

“남편을 잊는 망부석(忘夫石).”

“가정불화가 있는 모양이죠?”

늙어 갈수록 남편은 잊으라는 것.

아내를 바라보는 망부석(望婦石)이라니, 나 원 참.

신모사지.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신모사지.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치술령 정상 표지석.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치술령 정상 표지석.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벌지지.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벌지지.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치술령 정상(765미터)에는 여인의 한이 서린 신모사지(神母祠址) 빗돌이 서 있다. 빗돌에 새겨진 것과 삼국유사, 전설 등을 정리하면 이렇다.

신라 눌지왕의 동생 복호와 미사흔이 고구려, 왜국(日本)에 인질로 가 있었다.

시름에 빠진 왕을 위해 태수 박제상(朴堤上)이 고구려왕을 설득하여 먼저 복호를 데려온다. 그는 곧바로 왜국으로 가는데 부인은 바닷가(栗浦)로 쫓아간다.

그러나 망덕사 앞에 이르러 모래밭(長沙)에 다리를 뻗고 울부짖는다.

그곳이 벌지지(伐知旨)가 됐다. “뻗치다”의 우리말을 한자로 적었던 것이다. 경주 망덕사지 들길에 벌지지(伐知旨) 표석이 있다.

한편, 왜국으로 간 박재상은 마치 신라를 배반하고 온 것처럼 신라 ·고구려가 침입한다고 속인다. 왜는 신라를 치기로 하고, 제상과 미사흔을 길잡이로 써 먹을 계략을 꾸민다. 이윽고 박제상은 미사흔을 신라로 보낸다.

도망친 것이 발각되자 왜왕은 제상을 묶고 신하가 되면 살려주겠다고 하지만 차라리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신하되기를 거부하니 죽인다.

눌지왕이 애통해 하며 벼슬을 내리고 딸을 미사흔의 아내로 삼게 하여 은혜에 보답한다. 한편, 박제상의 부인 김씨는 치술령에 올라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

치술령은 경주·울산의 경계다. 치(鵄)는 솔개·새, 술(述)은 수리, 영(嶺)은 산·재, 새가 사는 높은 산으로 여긴다.

서라벌 남쪽을 지키는 요충지로 왜적이 자주 출몰하자 성을 쌓았으며. 산꼭대기에 있던 치술신사는 호국의 신성한 터로 숭상했다.

죽어서 충렬공이 된 박제상은 영해박씨 시조가 되고 방아타령 백결선생이 아들 박문량이다.

멀리 부연 안개너머 동해는 오늘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느닷없이 술, 과일을 불쑥 내민다.

“혹시 뭐라 할 것 같아서 살짝 갔다 왔어요.”

김 선생이다.

“함부로 다니면 안돼요. 요즘 부녀자 가출방지 기간입니다.”

“뭐라고요?”

“…….”

희뿌연 동해를 바라보며 산악회에서 구걸해 온 한 잔에 신라 여인의 한을 달래고 있었다.

정상의 빛바랜 이정표(은을암4.5·제내리6.5·법왕사·치산서원2.8킬로미터)를 두고 법왕사로 내려왔다. 연못에서 바라보는 산들이 멋스럽다. 못가에 배낭을 내리고 봄빛을 즐기는데 하늘과 신록을 한껏 담은 고운 물빛이 살갑다.

은을암(隱乙庵),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부인의 혼이 새가 되어 바위틈에 숨어들었는데 정절을 기리기 위해 암자를 지었다.

신라고찰로 통도사 말사다. 새가 날아갔대서 울주군 두동면에 비조(飛鳥)마을이 있다. 은을암에 날아든 부인은 나라를 지키는 치술신모(鵄述神母)가 되었다고 전한다.

은을암.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은을암. [사진=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계단을 한 참 오르면 백구(白狗)가 먼저 반겨준다. 백구라 부르는 것이 절집을 지키는 흰 개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영혼이나 오장육부가 사람과 비슷해서 축생(畜生)의 으뜸이다.

토·일요일 연거푸 세 번째, 지난번 들렀던 전원주택단지, 박재상 유적지를 지나 은편리, 미역골 산길 따라 꼬불꼬불 올라왔더니 글자대로 새(乙)가 숨은(隱) 암자다. 절집 뒤의 바위구멍은 새가 숨어살기 좋은 곳이다.

석등 아래는 초록세상 따사로운 봄빛. 배낭속의 물통 한 개 벌써 비었지만 바위산 중턱에 물이 있을 리 없다.

봄 햇살 맞으며 절집 옆으로 돌아 국수봉에 오른다. 멀리 흐릿하게 울산시내가 다가오고 산꼭대기는 먼저 온 사람들이 판을 벌여 놓았는데 은을암 백구도 올라왔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팔자 좋은 목숨이라 생각하니 전생의 선업일까?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