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취임하자마자 "전기차 44만대 미국산만 구매" 행정명령
현지 전기차 라인 없는 현대차·기아 비상...배터리업체도 간접타격

워싱턴포스트 등 미 현지 외신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은 트럼프를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 [사진=EPA, AP/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7일만에 행정명령 40개에 폭풍 서명을 하면서 '트럼프 지우기'에 나섰지만, 오히려 전 정부의 정책을 승계한 게 하나 있다.

바로 미국 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이다.

일방적인 행보로 국제사회에서 외면 받았던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국산품 사용을 강조하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는 판박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가 강조하는 기조가 자칫 배타적인 성향으로 번져 전기자동차 등 우리나라의 미래먹거리 주력 사업에도 악영향이 끼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바이 아메리칸'의 다른 이름, '아메리카 퍼스트 시즌2'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서명한 '미국산 제품 우선 구매법(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이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를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

이번 행정명령의 골자는 연방정부가 가스·전기·통신 등의 기간시설을 짓거나 자동차 장비를 살 때 미국 제조업에 도움이 되도록 국산품 이용을 독려하는 것이다.

이는 대선 당시 이미 공약했던 내용으로 연간 6000억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구매 예산으로 국내 제조업을 살리고 관련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게 요지다.

이에 주요 교역국들은 미국의 새 행정부가 겉으로는 국제사회의 존중과 협력을 표방하고 있지만 결국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와 닮아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트럼프 행정부도 취임과 동시에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을 추진하며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경제전략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중부 러스트벨트 블루칼라(작업현장 노동자) 백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당선되었기에 미국 내 제조업을 강화하면서 일자리 창출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해외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자국 기업을 압박해 '리쇼어링(기업이 해외 진출 후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유도하기도 했으며, 자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미국 내 공장 건설을 압박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LG전자와 대만의 TSMC 등 미국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이 속속 미국 현지공장을 건설하게 된 이유다. 

다만 트럼프와 바이든 행정부를 비교해 보면 상대국을 압박하는 강도에서는 차이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격한 조치를 통해 국내 제조업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국가간 협력을 강조하며 외국 기업을 공개적으로 압박하진 않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연방 정부의 미국산 제품 우선 구매법(Buy American Act)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 "전기차 부품 50%이상 미국산 써라"...현지 공장 없는 현대차·기아는 어쩌나

이에 주요 교역국들은 배타적인 트럼프 시대가 저물어 한 숨 돌리는 듯 했으나, 유사한 기조를 보이는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올해부터 전기차 새모델을 내놓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예고한 현대차와 기아, 전기차배터리 업체들은 고민에 빠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행정명령에 정부기관이 소유하고 있는 44만여대의 차량을 전부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기차로 교체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해서다. 또 정부가 구입하는 차량에서 미국산 부품이 적어도 50%가 되어야 한다는 점도 포함됐다.

이 소식에 현지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와 GM, 닛산자동차의 수혜가 예상된다. 또 포드도 미국 내 생산 계획을 발표하고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반면 미국 현지 공장에 전기차 생산라인이 없는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내 전기차 점유율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기아가 현재 주력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순수전기차 '코나 일렉트릭'과 '니로 EV' 등은 모두 한국에서 생산돼 현지로 공급되고 있어서다.

현대차그룹은 영국의 어라이벌, 미국의 카누 등 여러 해외업체와 협력해 미래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지만, 해당 차량의 구성 요소 가운데 미국산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 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만약 미국산 부품이 많지 않다면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미국 생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현대차는 최근 올해 8조9000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내 전기차 생산시설을 신설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가동하고 있는 앨라배마, 조지아 등의 현지 자동차 생산공장을 전기차 생산을 위해 전환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바이든이 앞으로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트럼프 전 행정부 보다 더 독하게 나오면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며 "우리 정부의 외교 노력과 함께 기업들도 이를 타개할 방법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현대기아차 매장
현대자동차는 지난 26일 신형 투싼 등 SUV의 공급 증대를 위해 미국 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다고 밝혔지만, 미국 내 전기자동차 생산과 관련해서는 말을 아꼈다. 사진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현대기아차 매장.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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