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 GM 이어 르노도 감산 돌입, 현대차는?

GM은 지난 3일(현지시간)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인해 오는 8일부터 한국의 부평2공장의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태웅 기자】 최근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폭스바겐, 포드,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체 업체들이 잇따라 생산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거나 가동 중인 공장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제너럴모터스(GM)도 오는 8일부터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에서 가동중인 공장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한국의 부평 2공장의 생산량을 절반으로 낮추면서, 한국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에 직면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 뿐 아니라 국가차원에서 미국, 유럽연합 등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가 있는 대만 정부에 반도체 증산 요청에 나선 상태다.

'차량용 반도체'가 세계 자동차 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상황.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의 애널리스트들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 왜 갑자기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해졌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이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자동차 수요가 급감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제조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 주문을 줄였고, 반도체 회사들도 차량용 반도체 대신 스마트폰 등 다른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는 쪽으로 전략을 세웠다.

실제로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완성차 판매는 지난해 3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감소 추세였고 유럽의 완성차 판매는 지난해 6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감소 추세였다. 

이런 상황에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사들의 관련 매출 성적은 지난해 2분기까지 부진했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의 차량용 반도체 공급사인 NXP반도체의 경우, 지난해 2분기 매출에서 차량용 반도체 사업부 매출은 6억74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전 분기(6억7400만달러) 보다 무려 32% 감소한 수치다.

반면 차량용 반도체 사업부를 제외한 사물인터넷, 모바일, 인프라 등 사업부 매출은 전 분기 대비 각각 16%, 3%, 12% 오르며 성장세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NXP와 같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사들은 차량용 반도체가 아닌 PC, 스마트폰, 생활가전 등 온택트 트랜드에 맞춰 생산을 집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지난해 말 완성차들의 수요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면서 자동차 주문 생산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이미 주요 생산 품목을 바꾼 탓에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이 발생했다.

◇ 현재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부족은 어떤 상태일까?

최근 주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서 잇따라 생산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폭스바겐 그룹은 올해 1분기 중국, 북미, 유럽 등 글로벌 공장에서 자동차 생산량이 10만대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고, 그룹 내 아우디는 지난달 고급 모델 생산을 연기하고 직원 1만명이 휴직한다고 밝혔다. 

포드는 1월 18일부터 2월 19일까지 독일 공장을 폐쇄하고, 미국 공장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GM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한편 한국의 부평 공장 가동률을 절반으로 낮출 계획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반도체 품귀현상이 3분기, 최악의 경우 4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완성차 업체들은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최근 미국자동차정책위원회(AAPC)는 미 상무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공급난 해소를 위해 개입해야한다고 주장했고, GM은 대만 정부에 TSMC의 반도체 확보를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도 대만 정부에 반도체 확보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 제공]

◇ 그럼 TSMC나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를 더 생산하면 되지 않을까?

차량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기업은 따로 있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는 차량용 반도체 사업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급사의 핵심 사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세계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가 분기별로 공개하는 애플리케이션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차량용 반도체 매출은 3%에 불과하다. 

TSMC의 매출 비중이 높은 부문은 퀄컴, 애플, 브로드컴 등에 공급하는 스마트폰용 반도체와 AMD, 엔비디아 등에 공급하는 고성능컴퓨터(HPC) 반도체이다. 

대만의 파운드리 공급사 UMC는 차량용 반도체 매출을 별도로 발표하지 않지만, 전체 매출 비중의 9~10%인 기타 항목에 포함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 역시 차량용 반도체는 거의 만들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의 NXP, 독일의 인피니언, 일본 르네사스,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스위스의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 차량용 반도체의 주요 생산업체이다.

◇ 왜 TSMC와 삼성전자의 차량용 반도체 비중이 낮을까?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가 다른 반도체 시장에 비해 작고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인 옴디아(Omdia)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기준 400억~450억달러다.

세계 반도체 무역 통계 기구(WSTS)의 2020년 반도체 시장 전망이 4331억달러임을 고려하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의 비중은 10% 내외인 셈이다.

다시말해 TSMC, UMC, 삼성전자와 같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이 차량용 반도체의 주문을 받아 생산한다 하더라도 매출에서 차량용 반도체의 비중은 10% 내외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차량용 반도체는 스마트폰용 반도체와 비교해 부가가치가 낮기 때문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전력관리용 칩, 마이크로 전자 기계 시스템(MEMS) 등 차량용 반도체 대부분이 8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에서 생산된다.

8인치 웨이퍼는 1992년에 도입된 구식 반도체 재료, 제조 장비도 구형이라 아직도 90~180nm(나노미터)대 제조 공정이 쓰인다.

반면 스마트폰, PC 등에 사용되는 12인치 웨이퍼엔 5~20nm 기술이 적용된다. 8인치 웨이퍼 설비로는 최신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는 의미다.

또 8인치 웨이퍼의 반도체 생산량은 12인치 웨이퍼의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파운드리사의 입장에서 부가가치가 낮은 8인치용 장비 개발이나 공급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 그럼 반도체를 빼고 자동차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차량용 반도체는 차량 1대에 수 백 개 탑재된다.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차량용 반도체 중 사용 비중이 가장 높은 반도체는 MCU(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이다.

MCU는 적외선 신호를 출력하고 차량용 디스플레이에 정보를 표시하거나 위험 상황 시 음악이나 알람 소리를 들려주는 등 차량 내 전장시스템을 제어하는 반도체다.

이외에도 일반적인 용도의 아날로그 반도체, 카메라 이미지 센서 등에 탑재되는 센서류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 등이 차량에 탑재된다.

현재 자동차 생산원가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율은 2% 수준이다.

송 연구원는 앞으로 전기차, 자율주행차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차량 내 반도체 비중도 6% 이상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 차량용 반도체 문제, 해결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파운드리 업체들이 8인치 웨이퍼 설비 공급에 소극적인 가운데 반도체 업체가 당장 증설을 추진하더라도 6개월~1년 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웨이퍼에 회로를 그려 넣는 노광 장비를 조달하는 데에만 6개월 이상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 현재 장비 공급업체들은 TSMC와 삼성전자의 선단 공정 시설 투자에 힘입어 12인치 웨이퍼용 최신 노광 장비 수요가 견조하므로 8인치용 노광 장비 생산과 출하에 대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와 제휴관계를 맺고 2022년부터 현대와 기아차의 모든 차량에 엔비디아의 차량용 반도체를 탑재한다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이 이어진다면 자동차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까?

차량용 반도체의 공급부족은 지속적인 수요증가로 이어져 자동차 원가 상승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보면 원가상승은 물론 생산차질로도 이어질 수 있다.

만약 자동차 업체들이 반도체 구매를 위해 경쟁하면서 가격이 일괄적으로 10% 상승하게 되면 자동차 생산 원가는 약 0.18%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영업이익을 1% 감소시킬 수 있는 수준이라고 송 연구원은 설명했다.

생산차질이 발생할 경우에는 1만대 당 영업이익은 0.5%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들은 장기적으로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내연기관차가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로 전환되면서 전장 비중과 함께 반도체 비중이 증가하지만 반도체 업체들은 낮은 수익성 때문에 차량용 반도체 설비 증설을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투자 연구원들은 "결국 지속적인 수요 증가와 수급적 불균형으로 차량용 반도체의 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는 자동차 회사들의 원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자동차 업계는 12인치 웨이퍼를 이용하는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등 자체 역량 강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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