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등에 업고 메이투안과 진검승부, 배달업계 1위 재탈환나서, 성공확률은 반반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어떤 나라, 어느 분야에서든 한 기업이 업계 1위를 차지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단순하게 계산할 경우 소비자가 14억 명에 이른다는 중국에서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아마도 1위에 진입하는 순간 그 기업의 관계자들은 하늘로 승천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중국에서 어느 분야의 업계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정말 지난한 일이라고 단언해도 좋다.

이러니 1위를 하다 어느 순간 2위로 곤두박질칠 경우의 비참함은 필설로 형언하기 힘들다고 해야 한다.

1위 자리에 등극했을 때와는 정 반대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한 번 1위에 올라섰다 하면 어느 기업이나 할 것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자리를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어 한다.

때로는 업계에서 퇴출되는 요인이 되는 불법과 탈법 같은 무리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안 될 때의 자괴감은 오랫동안 한참 아래로 내려다보던 2위에게 왕좌의 자리를 허용할 때보다 더 커질 수 있다.

그것도 상대가 후발주자라면 가슴에 들 피멍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중국 음식 배달업계에는 이 비운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업계 2위인 어러머(餓了么)이다.

2008년 창업한 이후 2014년 무렵까지 업계 1위를 지키다 2년 후 출범한 메이투안뎬핑(美團點評)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때 중국판 배달의 민족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어러머가 왜 이렇게 됐는지 그 스토리를 천천히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때는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08년 9월, 장소는 상하이(上海)의 대표적 명문인 상하이자오퉁(交通)대학 기숙사 내였다.

당시 석사과정 학생들이었던 룸메이트 장쉬하오(張旭豪. 36)와 캉자(康嘉. 36) 두 창업자는 연일 고강도로 이어지는 수업에 지친 머리를 잠시 식히기 위해 종종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둘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밤늦게 전화로 음식을 시켜먹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마치 약속이나 한듯 음식배달 사업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아주 우연한 기회에 “배고프냐?”는 의미를 가진 어러머는 탄생했다.

“그 처음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했다.”라는 말은 어러머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창업 이후 둘은 일단 기숙사 방에 놓인 전화들을 임시방편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어려운 자금 사정에도 10 명의 알바생도 직접 고용했다.

예상 외로 사업은 잘 됐다.

주로 자오퉁대 학생들로부터 직접 전화로 주문을 받은 후 식당에 가서 음식을 받아오는 식의 일은 하루 150~200건에까지 이르게 됐다.

바로 입소문이 나면서 이용자 수는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곧 일손이 딸리게 됐을 뿐 아니라 주문은 밀리기 일쑤였다.

배달업계 1위 탈환을 위한 의지가 엿보이는 어러머의 광고/제공=신징바오(新京報).

이때 장쉬하오는 공대생답게 전화로 주문을 받는 전통적 방식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인터넷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사업을 시작한지 딱 7개월만인 2009년 4월이었다.

중국 요식업계에 O2O(온라인 투 오프라인) 시대는 이렇게 시작됐다.

O2O 시대를 연 선구자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게 인터넷 도메인도 획기적이었다. ‘.net’나 ‘.com’이 아닌 어러머의 중국어 발음을 그대로 딴 ‘ele.me’로 명명된 것이다.

이후에는 진짜 승승장구가 따로 없었다.

창업한지 2년 만인 2010년 9월에는 상하이 시내에 1000개가 넘는 식당 가맹점도 확보할 수 있었다.

2010년 11월부터는 모바일 앱까지 오픈하면서 사업은 더욱 팽창하게 됐다.

1년 후인 2011년부터 베이징과 저장(浙江) 항저우(杭州)를 필두로 다른 도시에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었다.

어러머가 고작 3년여 만에 이 정도로 폭풍 성장을 할 수 있게 된 이유는 하나둘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맹 식당들과의 상생을 위해 주문액의 8~15%를 수수료로 챙겼던 초창기 모델을 과감하게 버린 것이 주효했다.

가맹 식당들이 줄을 설 수밖에 없었다.

또 자체적으로 연구 개발한 식당관리 서비스 시스템인 ‘나포스(Napos)’를 가맹 식당들에 제공하는 파격 조치 역시 거론해야 할 것 같다.

가맹점들이 어러머를 쌍수 들어 환영하지 않는다면 이상하다고 해야 했다.

배달 속도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투자자들이 몰려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급기야 나중에는 국내외 투자 자금을 가려서 받아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이르는 것이 아니었나 보인다.

2014년 말에는 하루 주문량 150만 건, 회원 수 1500만 명에 이르게 되는 성공도 거둘 수 있었다.

시장 점유율은 50%에 근접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이때 시장에서는 메이투안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메이투안은 창업 5년째인 2015년 10월 또 다른 배달 앱 다중뎬핑(大衆點評)을 흡수, 메이투안뎬핑으로 거듭나기까지 했다.

메이투안의 점유율은 일거에 65%까지 늘어나게 됐다.

어러머 입장에서는 완전 설상가상이었다.

업계 점유율이 50%를 바라보다 폭락으로 인해 졸지에 절반 가까이 추락하게 되면 어느 기업이나 할 것 없이 앙앙불락해야 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러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6년 이후부터는 과거 영광 재현을 위해 완전히 칼을 갈았다.

와신상담이라는 표현도 과하지 않을 듯했다.

2018년 4월 대주주인 알리바바에 주식 교환 형식을 통해 완전히 인수, 합병되는 운명을 감수한 것은 아마 이 때문이 아니었나 보인다.

물론 어러머가 알리바바를 등에 업고 있다고 해도 당장 상황을 역전시킬 가능성은 크게 높지 않다.

메이투안 역시 대주주 중 한 곳이 알리바바 못지 않은 텅쉰(騰訊. 영어명 텐센트)이라면 진짜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하다고 하기도 어렵다.

과거 영광 재현을 위해 노력하는 현재 모습을 상기하면 진짜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보인다.

우선 배달 혁신을 위한 획기적 발상을 꼽을 수 있다.

가능하다면 드론까지 동원, 배달이 불가능한 지역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최근 어러머의 경영 전략이다.

이에 대해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의 정보통신기술(ICT) 평론가 첸한장(錢漢江) 씨는 “어러머가 알리바바의 전폭적 지원을 받을 경우 배달에 드론을 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경우 점유율 격차를 줄이는 것은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면서 1위 추격에 나선 어러머의 의지가 보통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배달 품목을 음식 뿐 아니라 식자재를 비롯한 일반 물품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대하려는 발상 역시 거론해야 할 것 같다.

이 경우는 성공 사례도 있다.

전국의 약국 1만여 개와 제휴, 약 배달에 나서는 것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알리바바 산하의 인터넷 쇼핑몰 톈마오(天猫) 등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시너지 효과 제고 노력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업계 1위 탈환을 위한 어러머의 노력을 상징한다고 해도 좋다.

어러머의 라이더. 빈발한 오토바이 사고는 어러머가 업계 1위 탈환을 실현하기 에 앞서 확실히 개선돼야 할 문제다./제공=신징바오.

당연히 어러머가 과거 영광 재현 성공을 위해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일상화되는 임금 체불에서 알 수 있듯 라이더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대표적으로 꼽아야 할 것 같다.

임금을 받지 못한 라이더들이 분신하거나 파업에 나서는 현실을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2016년 3월 국영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불량 기업으로 낙인찍힌 전력이 말해주는 나쁜 회사라는 이미지를 쇄신하는 것 역시 시급하다.

이외에 직원들의 너무나도 잦은 이직, 라이더들에 의해 자행되는 각종 범죄나 오토바이 폭주에 따른 시민들의 불편 등 역시 방치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보인다.

만약 해결에 적극 나서면서 개선의 정황이 뚜렷해진다면 어러머의 과거 영광 재현 야심은 완전히 연목구어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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