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 협상 중단후 각자도생...기아는 전동화 가속, 애플은 묵묵부답

송호성 기아 사장이 9일 온라인 채널을 통해 개최된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송호성 기아 사장이 9일 온라인 채널을 통해 개최된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전기자동차 풀 라인업(Full Line-up)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애플카 협상’을 두고 기아와 애플이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9일 기아는 오는 2026년까지 전용 전기차 7종을 출시하고 2030년까지 연간 160만대의 친환경차를 판매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애플카 없이도 괜찮다’는 자신감을 보인 것.

애플의 생각은 아직까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애플인사이더는 8일(현지시간) 투자은행 웨드부시 보고서를 인용하며 “애플이 상반기 중 애플카 제조 파트너를 발표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애플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일각에선 애플카 협상이 단순히 멈춘 것이 아닌 사실상 ‘최종 결렬’된 것이 맞다며, 양측이 의견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애플의 끝없는 간보기…'초기 단계' 언급도 문제 삼은 것일까

이번 협상이 중단된 데에는 애플의 ‘주도권 잡기’가 크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애플은 이제까지 하드웨어와 운영체제(OS), 서비스 등 타 업체와 협력에 나설 때마다 항상 ‘모두 우리가 주도한다’는 폐쇄적인 생태계를 추구해왔다.

현대차·기아와 애플카 프로젝트를 두고 협상할 때에도 사실상 프로젝트를 '누가 이끌 것인가'를 두고도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 협상 비밀권 유지에 대해서도 양측의 의견이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주요고객은 물론 협력사에도 엄격히 비밀유지계약(NDA)을 준수해줄 것을 강요해온 업체로 유명하다. 

과거 디스플레이 협력사였던 ‘GT어드밴스드테크놀로지스’가 파산 신청을 내면서 애플을 고소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GT가 법원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애플은 비밀유지 계약 1건이 깨질 때마다 5000만달러(약559억원)를 물어야 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이후 애플은 GT와 350만달러 지불에 합의하면서 사건을 일단락 시켰지만, 사실상 협력사에 과도한 비밀유지를 요구한 것이 합당한 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이에 현대차가 지난달 ‘초기단계라 결정된 게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에도 애플이 불편한 감정을 느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의 주요 경제매체들은 “현대차는 이번에 애플과 비즈니스를 할 때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면 안 된다는 점을 배웠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애플의 간 보기는 끝이 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일시 중단된 것일 뿐 아직 완전히 협상이 끝난 상황은 아니다”라고 가능성을 열어 뒀다.

이에 애플인사이더는 애플이 상반기 중으로 애플카 제조 파트너를 공식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고 자신했다. 만약 현대차와 협상이 무산된다면 폭스바겐이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사진=애플허브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애플허브 인스타그램 캡처]

◇ "꼭 애플카에 목 맬 필요 없다"

이에 일각에선 현대차·기아가 굳이 애플카 프로젝트에 탑승하려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고 조언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올해부터 자체 개발한 전기차 플랫폼 ‘E-GMP’를 앞세워 전기차 1위 테슬라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만큼, 당장은 자사 주도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기아도 애플카 협상 중단설이 나온 다음날인 9일 온라인채널을 통해 ‘최고경영자 인베스터 데이(CEO Investor Day)’를 열고 전기차 전환을 구체화하고 모빌리티 사업을 확대하는 등 핵심 사업을 확장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우선 전기차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2030년까지 연간 160만대의 환경차를 판매하고 전체 판매 중 환경차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2030년 연간 88만대 이상의 판매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또한 기존 계획보다 1년 먼저 앞당긴 2026년까지 전용 전기차 7개를 출시해, 파생 전기차 4종과 함께 총 11개의 전기차 풀(full) 라인업을 구축할 방침이다.

자율주행 기술도 꾸준히 접목한다. 기아는 다가오는 3월 최초 공개를 앞둔 전용 전기차 CV에 자율주행 기술 2단계에 해당하는 ‘HDA2(Highway Driving Assist 2)’ 기술을 탑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023년 출시될 전용 전기차에는 3단계 자율주행기술 HDP(Highway Driving Pilot)’을 적용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차 '애플카' 생산과 관련해 애플과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며 현대차와 기아차 주가가 동반 하락한 8일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서 한 관계자가 양사의 주가 변동 그래프를 살펴보고 있다.
8일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차 '애플카' 생산과 관련해 애플과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직후 현대차와 기아차 주가가 동반 하락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런 기아의 발표에도 투자자들의 실망감은 계속되고 있는 모양새다.

9일 현대차그룹주 가운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는 각각 1.07%, 1.09% 오른 채 장을 마감했지만, 기아차는 -1.62%로 여전히 하락세를 보였다. 기아차 주가가 전날 14.98%가 떨어진 이후 또 다시 하락세를 맛보며 8만4900원에 거래를 끝낸 것이다.

다만 증권가는 애플카와의 협상이 결렬된다 하더라도 현대차·기아의 사업성에는 큰 충격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투자자들에게 큰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9일 보고서를 통해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위상 확대는 애플카 논의가 중단돼도 유지될 것”이라며 “현대차그룹이 미래차 경쟁력을 강화해 멀티플(수익성 대비 기업가치)을 높여가는 와중에 애플카가 촉매제가 돼 그 시점이 앞당겨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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