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CATL·파라시스, 수조원 투자와 합작사 설립 통해 글로벌 시장 선점
비토·합의·항소 3가지 선택지 두고 샅바 싸움…미 車시장은 등 터진 모양새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10일(현지시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배터리 소송 최종 판결문을 발표하며 LG의 손을 들어줬다. ITC는 “SK이노가 생산하는 리튬 이온 배터리 완제품과 셀·모듈·팩 등 배터리 부품에 대해 미국으로의 수입, 미국 내에서의 판매 및 영업 활동을 향후 10년간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3년차에 접어든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배터리 소송이 LG에너지솔루션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패소를 선고받은 SK이노베이션의 계산은 복잡해지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비토)으로 판을 뒤집거나 합의금을 협상하는 등 다양한 선택지가 거론되고 있지만 이외에도 양사의 다른 소송전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 만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업계에선 양사가 싸우는 동안 중국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양사가 기나긴 특허분쟁을 이어오는 가운데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경쟁력을 키워왔다는 것이다.

ITC는 지난 10일(현지시각) LG에너지와 SK이노 간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영업비밀 침해 혐의가 인정된 SK이노는 10년간 미국 내 배터리 수입과 생산을 전면 금지 당했다.

다만 폭스바겐과 포드에 한해 납품 차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각 2년, 4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 특허 소송에 중국기업은 ' 어부지리  아니면 반면교사? 

실제로 양사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무서운 기세로 확대해 나가고 있는 모양새다.

일례로 중국의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은 지난 2일 쓰촨성, 이빈시, 광둥성 자오칭시, 닝더시 샤푸현 등에 총 290억위안(약 5조원)을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양측이 소송전에 한창일 당시에도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업계는 현재 CATL의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감안할 때, 2025년 말 500GWh에서 2030년 말 600GWh까지 배터리 생산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제2의 CATL로 점 찍어 둔 파라시스 또한 메르세데스벤츠와 파트너십을 맺어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선두주자가 되기 위한 중국 기업의 패권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SK이노와 LG에너지 간의 싸움은 단순 소모전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만약 SK이노가 ITC가 규정한 유예기간이 지난 후에도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폭스바겐과 포드 등 자동차업체를 대상으로 한 공급망을 중국 기업에게 뺏길 수 있다.

미국 내 파나소닉 공장은 테슬라 전용이며, LG에너지도 GM과 합작법인 공장을 짓고 있어 사실상 SK이노와 중국기업 외에 타사에 대량 납품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번 양사간의 특허분쟁을 통해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특허 베끼를 자행했던 중국 기업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함부로 특허기술을 도용했다가는 천문학적인 소송전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배터리 제조업체 CATL 공장 현장 모습. [사진=신화/연합뉴스]

◇ 등 터진 미 車시장 어쩌나...바이든 비토권에 '시선'

이에 SK이노와 관련 협력사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비토'를 행사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특히 미국 현지 업계에선 이번 판결이 SK이노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미국 산업 전반에 악재를 드리울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SK이노는 포드와 폭스바겐 등 미국 내 판매량이 높은 자동차 제조업체에게 배터리를 공급할 것이라며 관련 공장을 증설해 2024년까지는 미국 내 2600명 수준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유예 발표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과 포드는 미 정부에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한국의 두 배터리 공급업체의 분쟁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봤다"며 "SK이노가 생산하는 전기 자동차 배터리를 최소 4년 동안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미 정부에 요청했다.

이어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두 공급업체 간의 자발적인 합의는 궁국적으로 미국 제조업체와 관련 근로자들에게 큰 이익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도 최근 성명을 통해 "조지아에서 진행되는 SK이노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에게 ITC 분쟁 판정 결과를 뒤집어 달라고 촉구했다.

ITC의 결정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위협을 받았던 전기차 산업을 더욱 더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전기차 제조업의 혁신을 저하시키고 청정에너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이다.

조지아주는 SK이노가 현재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고 있는 곳으로, 미국 전기차 산업의 허브로 꼽히는 미래산업 중심지다.

아직까지 바이든 행정부는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은 수입금지 조치 판결이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 ITC 최종 결정일로부터 60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폴크스바겐은 1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한국의 두 배터리 공급업체(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분쟁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피해를 봤다"며 미국 내 전기차 생산라인 운영이 SK이노베이션의 분쟁 패소 때문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사진=연합뉴스]

◇ '2조원 vs. 수천억원' 합의금 논의, 구-최 회장 협상 테이블 오르나

만약 비토권이 행사될 뚜렷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으면 SK이노가 가장 주력할 선택지는 '합의금 낮추기'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양측은 협상에 대한 '진정성'을 내세우며 각각 적절한 합의금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는 2조원대 후반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SK이노는 8000억원 정도에서 협상을 마무리 짓길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SK이노가 '5000억원도 많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합의금 간극이 큰 만큼 구광모 LG에너지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협상 테이블에 등판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조만간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취임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먼저 적극적인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최 회장은 그동안 재무적인 성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는 신념을 강조해왔다.

다만 SK이노는 연방고등법원에 항소하는 방안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업계 내 피로감도 커졌을 뿐더러, LG에너지가 유럽 등 타지역에서 SK이노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LG에너지는 ITC 결정이 나온 직후 콘퍼런스 콜을 열고 "SK이노의 기술 탈취·사용에 따른 피해는 미국에만 한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른 지역에서 소송 진행할지는 기본적으로 SK 태도에 달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9년 1월 신년회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번 ITC 소송이 일단락 된다고 해도 양사의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특허 침해 여부를 두고 국내외에서 또 다른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특허청 특허심판원(PTAB)에도 LG에너지와 SK이노는 서로의 특허가 '무효'라고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 LG에너지가 제기한 SK이노의 특허 무효 소송만이 받아들여진 상황이며, 올해 하반기 최종 결정이 나올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치열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SK이노는 2019년 10월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LG에너지를 상대로 소 취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양사가 특정 특허에 대해 쟁송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LG에너지가 어기고 ITC에 소송장을 내밀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은 "2014년 양사가 합의한 특허와 ITC에 제기한 특허는 별개"라며 LG에너지의 손을 들어줬지만 SK이노가 항소를 제기했다. 조만간 특허법원에서 재판이 시작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LG에너지는 SK이노를 지난 2019년 5월 경찰에, 지난해 6월엔 검찰에 '산업기술보호법' 등 위반 혐의로 고소하며 이 역시 관련 수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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