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DMZ의 소모적인 산불진화 비행

국립산림과학원 관계자들의 산불 후속 조치를 보며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입사 초기 산불진화 출동비행 때는 거센 바람에 맹렬한 화마가 숲을 집어삼킬 듯 요동치면,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안전한 비행만을 생각했었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죽어가는 많은 살아있는 친구들을 생각한다.

불을 피하지 못한 동물들, 나무와 풀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곤충들과 흙 속의 미생물들이 그들이다.

그들을 생각하면 산불로 인해 수십 년 동안 멋지게 자란 아까운 나무의 피해만을 아쉬워하며 오로지 산불의 신속한 진화에만 관심이 있었던 무지함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의 동식물들과 곤충들의 치명적인 피해에는 무관심했고 외면했다. 특히 흙 속에 사는 많은 미생물이 타 죽는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그들이 다시 원래 모습으로 살아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이다.

해마다 조용하게 반복되는 동식물의 피해와 토양의 피해가 극심한 곳이 바로 DMZ(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이다.

DMZ은 1953년 7월 휴전조약에 의해 결정된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을 중심으로 남·북 각 2km 지역(총 4km)으로 정해져 있다.

DMZ 하면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비무장지대”라고 기록한 국립수목원 DMZ 자생식물원의 어느 연구원 얘기가 생각난다.

남과 북이 가장 첨예하게 군사적 대립과 갈등을 어쩔 수 없이 이어가며, 동시에 군사적 목적의 훼손이나 개발, 자연생태계의 보존 문제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리라.

이처럼 내면적으로 무수한 복잡함과 문제점을 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항상 조용하고 무거운 침묵의 공포가 전체를 지배하는 곳이 DMZ이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문제를 뒤로한 채 그 한가운데서 해마다 봄철이면 산불진화 비행을 한다.

DMZ 동부지역의 비교적 가파른 경사면의 산불을 진화하고 있는 산림항공 헬기의 모습. 이 지역을 비행할 때마다 무거운 분위기를 느낀다. 공기와 바람, 연기까지도 무겁게 느껴진다. 2020년 봄철 약 3개월 동안 DMZ 내에서 산불진화에 투입된 산림항공 헬기는 총 108대였으며 그 피해면적은 산출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DMZ 동부지역의 비교적 가파른 경사면의 산불을 진화하고 있는 산림항공 헬기의 모습. 이 지역을 비행할 때마다 무거운 분위기를 느낀다. 공기와 바람, 연기까지도 무겁게 느껴진다. 2020년 봄철 약 3개월 동안 DMZ 내에서 산불진화에 투입된 산림항공 헬기는 총 108대였으며 그 피해면적은 산출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이 DMZ 비무장지대의 남쪽경계가 남방한계선이다.

이 선 아래로는 민간인통제선이 설정되어 있어서 자유로운 왕래가 불가능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UN군 사령부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러한 허가절차는 우리가 DMZ 산불의 조기 진화를 위한 신속한 출동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다.

DMZ은 세계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특수한 지역이다.

이러한 환경을 이용한 TV 드라마나 영화,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있었지만, 코미디처럼 재미있거나 웃음을 주는 영화는 별로 없다.

기억나는 영화로 2000년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이 있다.

적절한 긴장감과 추리적인 요소가 맘에 들고 다분히 인간적이면서 잔잔한 애수(哀愁)가 남는 영화라서 좋아한다.

이 영화는 DMZ 내에서 남·북의 군인들이 순찰 도중 우연히 만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JSA라는 제한된 구역에서 실감 나게 이어가는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의 결말은 주요인물 대부분이 죽는 비극이다.

적군과의 우정이라는 설정 자체가 분단의 상황으로 보나 원만한 영화적 구조로 보나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말이다.

분단의 비극에 의한 태생적인 아픔이 배경이 된 이유가 아닐까 한다.

실제로 DMZ를 비행해 보면 영화 속 얘기처럼 군인들이 실제로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은 복잡하고 우거진 지형이다.

봄바람은 대부분 편서풍 계열의 바람이다. 그 영향으로 DMZ 내 산불은 군사분계선 남동쪽으로 확산되어 우리 쪽의 피해를 증가시킨다. 의외로 DMZ의 산불은 첨예한 지정학적 위치에 어울리지 않게 뉴스나 매스컴, 인터넷 등에서 외면당하는 느낌이다. 그만큼 생태계의 보호나 산불의 재발 방지를 위한 발전적인 대책이나 연구도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봄바람은 대부분 편서풍 계열의 바람이다. 그 영향으로 DMZ 내 산불은 군사분계선 남동쪽으로 확산되어 우리 쪽의 피해를 증가시킨다. 의외로 DMZ의 산불은 첨예한 지정학적 위치에 어울리지 않게 뉴스나 매스컴, 인터넷 등에서 외면당하는 느낌이다. 그만큼 생태계의 보호나 산불의 재발 방지를 위한 발전적인 대책이나 연구도 활발하지 못한 것 같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DMZ 부근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진화하는데 여러 가지로 힘들 때가 많다.

동부지역은 산악지형이 험난해서 비행이 어려울 수도 있고 바람과 같은 자연현상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남·북의 정치·군사적 상황이 우리를 더 어렵게 만든다.

그만큼 조종사들이 이 지역을 비행할 때 느끼는 심리적 중압감은 생각보다 크다. 비행하는 내내 손발도 불편한 느낌이다.

어떤 요인으로 DMZ 내 긴장이 증가된 상태에서 산불진화 비행을 하면 확산하는 불길에 정확히 물을 떨어뜨리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전기도 시끄럽다.

그만큼 산불보다 북쪽의 움직임에 신경이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보이는 DMZ은 조용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 느낌이 헬기의 소음을 뚫고 그대로 나에게 전달된다.

너무 평화롭고 조용해서 그곳의 동식물들에게 헬기 소리를 내며 진입하는 게 미안할 정도다.

산불이 확산되지만 않는다면 절대로 그 고요함을 깨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육군은 아니었지만 군 생활을 오래 한 사람으로서 현역시절에는 한 번도 DMZ 안에 들어오거나 남방한계선을 가까이서 본 경험도 없었는데, 전역 후 이렇게 자주 매년 많은 시간을 비행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햇빛을 가릴 정도의 짙은 연기는 산불진화 비행을 여러모로 어렵게 한다. 지형식별을 어렵게 하고 저고도 비행을 방해한다. 이따금 무섭게 올라오는 검은 연기는 지뢰나 불발탄의 폭발로 보인다. 침묵의 땅에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이 지역을 전체적으로 더 침울하게 만든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햇빛을 가릴 정도의 짙은 연기는 산불진화 비행을 여러모로 어렵게 한다. 지형식별을 어렵게 하고 저고도 비행을 방해한다. 이따금 무섭게 올라오는 검은 연기는 지뢰나 불발탄의 폭발로 보인다. 침묵의 땅에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이 지역을 전체적으로 더 침울하게 만든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민간인통제선 북쪽의 산불은 지뢰나 불발탄 등의 위험요소로 인해 사람이나 장비가 들어가서 진화작업을 하기 어렵다.

사람에 의한 DMZ 내의 산불진화 작업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군인들이나 진화작업에 투입되는 소방요원들을 보기 어려운 이유다.

그 때문에 이 지역의 완전진화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 남방한계선 철책에서 물을 뿌리는 병사들이 몇 명 보일 때도 있지만, 어떤 날은 온종일 비행해도 한두 명 보일까 말까다.

거친 불꽃 속에서 이따금 솟아오르는 짙은 검은색 연기는 결코 이곳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만이 아닌, 지뢰나 불발탄이 묻혀 있는 치열한 역사의 현장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비행하는 현장의 조종사로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바람이다. DMZ에는 갈대 종류의 풀과 잡목들이 많다.

수십 년 쌓인 낙엽과 갈대 그리고 잡목들에 붙은 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지면 순식간에 아군 초소를 집어삼킬 듯 소용돌이친다.

보이는 모든 풀과 잡목을 태우려는 화세는 생각보다 맹렬하고 남쪽 땅이든 북쪽 땅이든 가리지 않는다.

사나운 불길의 거침없는 무자비함과 잔인함에 소름이 돋는다. 헬기로도 불길의 이동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다.

DMZ 내에는 나무보다 불에 타기 쉬운 갈대와 잡목들이 많다. 수십 년 동안 쌓인 두꺼운 낙엽층은 물이 충분히 스며들지 못하게 하면서 불이 계속 탈 수 있게 연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므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런 지역에 한번 불이 붙으면 강한 불기운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가 어렵고 어지간히 물을 뿌려도 화세가 진정되지 않아 완전진화에 애를 먹는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DMZ 내에는 나무보다 불에 타기 쉬운 갈대와 잡목들이 많다. 수십 년 동안 쌓인 두꺼운 낙엽층은 물이 충분히 스며들지 못하게 하면서 불이 계속 탈 수 있게 연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므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 이런 지역에 한번 불이 붙으면 강한 불기운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기가 어렵고 어지간히 물을 뿌려도 화세가 진정되지 않아 완전진화에 애를 먹는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우리나라 기상 특성상 대부분의 바람은 편서풍이다.

특히 봄철의 편서풍은 일련 중 그 세기가 가장 강하기 때문에 DMZ 지역의 산불피해는 남쪽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지역의 편서풍은 DMZ 동쪽이 위도가 높아지는 지형특성으로 파주나 연천, 철원지역의 산불을 동남쪽으로 이동시켜 동쪽으로 갈수록 남방한계선 이남까지 피해를 증가시킨다.

이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며 ‘푄(라틴어의 favonivs에서 유래하는데 서풍이란 뜻이다. 영서지역의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며 고온건조한 바람으로 변해 대형산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푄 현상의 하나인 양간지풍襄干之風은 4월 중반 무렵 강원도 양양과 간성 사이에서 부는 강한 바람이다) 현상’으로 더 강해져 동해안 지역의 막대한 산불피해를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바람이 적은 날은 적은 대로 애로사항이 있다. 바람 방향을 따라 불길이 군사분계선 남쪽과 북쪽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니 군사분계선의 남쪽만을 비행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DMZ 산불의 완전진화에 여러 날이 소요되는 또 다른 이유다. 그럴 때는 내 마음도 타들어 간다.

DMZ 내에는 시야 확보를 이유로 큰 나무들이 환영받지 못한다. 오랫동안 나무들이 많이 제거되었고 그늘이 부족하여 수분을 오래 저장하지 못해 건조한 지역이 많다. 산불의 확산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다. 아군 철책이나 GOP의 피해를 막기 위해 맞불 작전을 펴기도 하지만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여러 대의 산림항공 헬기가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DMZ 내에는 시야 확보를 이유로 큰 나무들이 환영받지 못한다. 오랫동안 나무들이 많이 제거되었고 그늘이 부족하여 수분을 오래 저장하지 못해 건조한 지역이 많다. 산불의 확산속도가 빨라지는 이유다. 아군 철책이나 GOP의 피해를 막기 위해 맞불 작전을 펴기도 하지만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여러 대의 산림항공 헬기가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DMZ 안으로 들어가면 군사분계선을 확인하기 어렵다.

연기가 시야를 가리기도 하지만,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남방한계선과의 간격도 일정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에는 임진강 하구인 경기도 파주에서 강원도 고성군까지 총 248km에 걸쳐 1292개의 표지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현장에 들어와 보면 군사분계선 직상공 근처에서도 어떤 표지판이나 식별표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무심한 세월의 결과물이다.

최초의 표지판이 만들어진 후 70여 년 동안 한 번도 추가 공사가 없었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무리가 아니다. 레이다 상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경고해주는 관제기구의 건조한 목소리가 고마울 뿐이다.

짙은 연기 속에서 아군 초소와 동식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분계선과 GOP 사이를 장시간 비행하며 불꽃에 물을 투하하다 보면 지형적인 남·북의 개념이 모호해질 때가 있다. 피로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진 것이다.

이때쯤이면 연료보급도 필요하다.

2020년 DMZ 산불의 대부분은 연천지역에서 발생했다. 하얀 연기의 뒤쪽이 북한지역이다. 보이지 않아 멀게 느껴지지만, 소총의 사거리 안에 북한군 초소가 있다. 연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물을 뿌려도 두꺼운 낙엽층 밑에 숨어있는 불씨는 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나곤 한다. 바람이 많지 않은 날에는 군사분계선을 따라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며칠씩 소모적인 비행을 할 때도 있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2020년 DMZ 산불의 대부분은 연천지역에서 발생했다. 하얀 연기의 뒤쪽이 북한지역이다. 보이지 않아 멀게 느껴지지만, 소총의 사거리 안에 북한군 초소가 있다. 연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물을 뿌려도 두꺼운 낙엽층 밑에 숨어있는 불씨는 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나곤 한다. 바람이 많지 않은 날에는 군사분계선을 따라 남·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며칠씩 소모적인 비행을 할 때도 있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어떤 곳은 아군 초소보다 북측 초소가 더 가깝기도 하다.

물을 뿌리고 남쪽으로 선회하며 고개를 돌리면 가끔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북한군 병사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비행하는 내내 DMZ의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얽혀있는 어지러운 지형처럼 내 생각도 혼란스럽다.

연료보급을 위해 남쪽으로 비행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병사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일몰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길은 더욱 선명해진다. 반대로 지형식별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군사분계선 남쪽의 불인지 북쪽의 불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항상 그렇지만 이 시간대의 산불진화 비행에서는 좀처럼 여유를 가지기가 어렵다. 조금 더 많이 물을 담고 싶고 조금이라도 빨리 화선에 진입하려 한다. 산불을 진화하는 조종사들의 마음이 조급해지는 시기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일몰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길은 더욱 선명해진다. 반대로 지형식별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군사분계선 남쪽의 불인지 북쪽의 불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항상 그렇지만 이 시간대의 산불진화 비행에서는 좀처럼 여유를 가지기가 어렵다. 조금 더 많이 물을 담고 싶고 조금이라도 빨리 화선에 진입하려 한다. 산불을 진화하는 조종사들의 마음이 조급해지는 시기다. [사진=이경수(산림항공본부 기장)]

국립수목원이 펴낸 『DMZ 인문자연환경백서』에는 그 속에 우리나라 전체 포유류의 52%, 조류의 51%, 양서파충류의 71%, 어류의 12%가 살고 있고, 식물은 2382종류가 살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 ‘한반도 최후의 야생동식물 낙원’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곳을 비행한 경험으로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치곤 생각만큼 완벽하게 보존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동안 동물들은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으로 철저하게 차단되어 이동이 거의 불가능했고, 나무들 또한 군사적 목적의 경계를 이유로 시야 확보를 위해 벌목작업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매년 봄철이면 화공작전으로 인한 반복적인 훼손은 나무나 이름 모를 야생식물들을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불이 확산되어 더 큰 피해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 때문에 DMZ에는 20년 이상 오래된 나무가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또한 언제든지 화마에 희생될 수 있다.

몇 년 전 DMZ 인근 지역의 생태를 조사하고 그곳의 풀과 나무들의 씨앗을 하나하나 직접 받아 키우며, DMZ 부근의 식물복원에 노력해온 식물연구학자로부터 DMZ의 훼손된 땅을 보호하기 위해 로제트식물(rosette plant, 땅에 바짝 붙어서 겨울을 나는 식물로 일명‘방석식물’이라고도 한다.민들레, 냉이, 꽃마리, 질경이 등이 대표적이다)을 연구한다는 말을 들었다.

군사적 목적과도 부합되는 연구라는 생각이 들어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루빨리 그 식물학자가 DMZ 내에서 언제라도 마음 놓고 안전하게 연구 활동을 했으면 한다.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만들어진 DMZ,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으면서 천혜의 자연을 안은 채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간직하고 묵묵하게 지켜보는 DMZ, 언제까지 이 소중한 지역에서 생기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파괴행위를 지켜봐야 하는지 답답하다.

후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이경수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기장.
이경수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기장.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금지된 땅, 남과 북이 평화와 번영을 논하기 전에 서로의 삶에 있어 공존의 씨앗이 되는 동식물의 생명이 먼저 회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길 바란다.

미루고 늦어질수록 그 비용은 증가하거나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우리 후손들은 너무 늦지 않게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와 DMZ이라는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하나 된 국가에서 우리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바란다.

임무를 마치고 남방한계선을 뒤로한 채 멀어져가는 북쪽 땅과 DMZ를 바라보는 마음에는 항상 형언할 수 없는 애틋함이 남는다.

/산림항공본부 이경수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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