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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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행동경제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게 되는 점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이 받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심리학과 경제학의 결합이다.

허나 행동경제학은 다른 학문들과도 굉장히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과학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함에 따라 뇌과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다 깊게 고민하다보면 생물학, 그 중에서도 진화론에 맞닿게 된다.

뿐만 아니라 경영학 측면에서 기업의 조직이론과 마케팅에서도 행동경제학적 관점을 공유하고 활용하고 있다.

경제학에서도 신경경제학, 실험경제학, 진화경제학 등 분화된 이름들이 최근 회자되고 있는데, 이러한 개별 경제학의 결과물들이 행동경제학에서 쓰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각설하고, 보통 인간의 행동이나 성품 등에 관해 얘기할 때, 타고났을까 아니면 환경의 영향일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운 듯이 행동경제학에서 바로 본 인간의 행동은 진화에서 각인된 유전자와 우리를 둘러싼 여러 환경요인들의 영향이 합쳐진 모습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달로 비대면으로 세상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상황에서 네트워크로부터 받는 행동의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과학 혹은 네트워크 분석도 행동경제학을 구성하는 다양한 연구 방법 중의 하나로 들어와야 한다.

아주 오래 전, 이를테면 그리스 시대부터 같은 것은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현상은 그냥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를 이른 바 동종선호 (HomoPhily) 현상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이러한 현상은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실제로 증명되고 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 연구에서도 같은 카스트들끼리 호의를 베풀 가능성은 다른 카스트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 가능성보다 15배 높게 나타났으며, 미국 고등학교에 관한 연구에서도 같은 인종의 학생들이 친구 관계일 가능성은 다른 인종일때보다 15배 높게 나타났다.

만약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교류하는 친구관계 – 아주 깊은 우정 관계 – 만 따졌을 경우에는 다른 인종 간 친구관계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결과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동종 선호는 위에서 본 인종 외에도 종교, 나이, 직업, 교육 수준, 성별 등 다양한 차원에서 나타난다.

이를 온라인 매칭 프로그램이나 데이터 사이트에서 검증을 해봐도 역시 같은 결과 즉, 이성을 찾을 때 자기와 유사한 조건을 가진 이성을 찾는 비중이 월등하게 높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학력자가 몰려 사는 실리콘밸리의 성공도 당연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럼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동종효과는 어떠한 결과를 낳을까?

마치 마이클 샌델이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 (원제: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에서 능력주의의 민낯을 파헤쳤듯이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서도 집단 간 확연한 구분과 그에 따른 능력주의의 허구를 알 수 있다.

최근 발간된 매튜 O.잭슨 교수의 ‘휴먼 네트워크’ 책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사회에 대한 네트워크 분석 결과, 두 개의 집단 간 허브와 허브의 연결이 없는 경우 (노드 간에는 연결 자체가 없으므로) 집단 간에는 교류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는 활발한 네트워크라 할지라도 집단과 집단 사이 네트워크에서는 비유동성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이러한 비유동성은 본질적으로 불평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득, 학력, 교육의 기회,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관여 등 동종 선호로 뭉쳐진 집단의 행동과 고급 정보에 대한 네트워크는 동종이 아닌 이질적 집단과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집단 간 유동성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집단 내에서만 활성화하게 되고 이는 사회적 불균형을 일으키게 된다는 내용이다.

아이들 장래의 불평등의 본질이 부모의 불평등으로부터 나온다는 결과와는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동종선호하지 않는 부모 간 네트워크의 비유동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자.

우리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과학기술 하에 살고 있어서 많은 출처로부터 얻은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살고 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와 점점 복잡해지는 정보들로 인해 단순한 정보 외에는 처리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까지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며 선사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 뇌는 다양한 채널에서 반복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옳은 정보, 고급 정보, 필터링된 정보라고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다양한데서 들었다고 생각하는 정보가 같은 곳으로부터 나온 정보라면 우리의 판단은 전혀 오판이 된다.

얼마 전 기사에서 나온 ‘라면형제’라고 불렀던 사건에서 살펴보자.

실제 라면을 끓이다가 화재가 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수사초기부터 경찰은 라면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에 짐작만 가지고 기사를 썼던 한 매체의 기사를 다른 매체들이 그대로 여과 없이 받아 쓴 결과, 10살짜리 형이 라면을 끓이다가 실수로 화재를 낸 사건으로 온 국민이 받아들였다.

이런 일은 앞으로 일어날 확률이 점점 더 커진다.

이러한 경향이 동종선호 현상과 결합하게 되면 결국 한 집단이 자기들만의 방에 갇혀 자기들 목소리의 울림을 지속적으로 듣게 되는 반향실 효과 (Echo Chamber Effect)가 나타나게 되어 결국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네트워크 상에서 정보가 확산되는 방식의 복잡함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보의 수용성, 그리고 우리가 정보를 수집하고 발견한 후 뇌에 저장하는 일련의 프로세스 모두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왜냐하면 진실을 보도하는 노력에 비해 그에 따른 보상은 점점 줄어들지만 (예: 진실한 뉴스 탐사에 대한 비용과 매체의 매출), 가짜 뉴스를 만드는 비용은 0에 수렴하는데 비해 그에 따른 보상 (예: 가짜뉴스에 따른 유튜브 수익)은 점점 커지는 오늘날이기 때문이다.

진짜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을 공익 광고 정도로 개인에게 맡기는데 그치지 말고, 정부가 개입을 해서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사회적 비용을 대폭 줄여야 하는 시점이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회, 인간에 대한 연구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매우 부족하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물은 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넛지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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