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농담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개그 중에 ‘굴뚝 없는 청정산업’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는 종교를 빗대 이렇게 말한다.

교회나 사찰 중에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것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보면 반드시 틀린 말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제한적으로 있는 중국은 다르다.

아마도 종교보다는 교육 사업이 청정산업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다.

시장 규모가 2020년 기준으로 3조 위안(元. 517조 원)에 이르니 이렇게 단언해도 좋다.

한국의 1년 예산에 해당한다.

동남아의 신흥 경제 강국 베트남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무려 2000억 달러나 더 많다.

이 황금알을 낳는 시장에서 신둥팡교육과기그룹(EDU. 약칭 신둥팡)은 단연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힌다.

하기야 미 나스닥과 홍콩 증시 모두에 상장돼 있는 현실을 상기하면 분명히 그렇다고 해야 한다.

시가총액도 경악 수준이라고 해도 괜찮다.

각각 243억 달러와 1863억 홍콩 달러(238억 달러)에 이른다.

둘을 합치면 580억 달러가 넘는다.

삼성전자보다는 훨씬 못하나 200억 달러 남짓인 LG전자보다는 훨씬 많다.

매출액 역시 대단한 위용을 자랑한다.

2020년 기준으로 250억 위안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 최대 교육 기업 중 하나인 메가스터디의 10배 전후의 규모라고 보면 된다.

한국의 30배 가까운 중국의 인구를 감안할 때 앞으로 양사의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신둥팡은 약 30여 년 전인 1993년 베이징의 8학군으로 불리는 하이뎬(海澱)구 중관춘(中關村)의 한 작은 빌딩에서 영어 사교육업체로 출발했다.

지금의 성공만 놓고 보면 창업자 위민훙(兪敏洪. 59)은 대단한 사업 수완을 가진 기업인 겸 교육자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실패와 좌절의 아이콘, 이른바 루저였다고 할 수 있다.

진짜 그런지는 그의 인생 역정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무엇보다 베이징 출신이 아니다.

저장(浙江)성 장인(江陰)시의 보통 농촌 가정에서 출생했다.

완전 흙수저에 가깝다.

그랬으니 중학 졸업 후 고등학교에도 바로 진학하지 못했다.

대학 진학은 완전 언감생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겨우 진학한 고교를 졸업한 후에도 그의 비극은 이어졌다.

두 번이나 대학 입시에 보기 좋게 실패한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절치부심했다.

결국 학원을 다니면서 칼을 간 끝에 1980년 겨우 명문 베이징대학 스페인어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무려 93점으로 좋았던 영어 성적이 합격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불행은 2년 후 다시 계속됐다.

폐결핵에 걸려 1년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85년 겨우 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해 토플 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점수가 너무 낮았다.

고작 663점에 불과했다.

장학금과 유학 비자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연목구어라고 할 수 있었다.

베이징 차오양(朝陽) 신위안리(新源里) 소재의 한 신둥팡 영어 어학원. 원어민이 가르치고 있다./제공=징지르바오(經濟日報).

그는 할 수 없이 유학을 포기하고 모교에서 강사로 일했다.

남는 시간에는 불법 과외지도를 하기도 했다.

이때는 법을 위반한 탓에 몇 개월 동안 경찰에 쫓기면서 도피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좌절을 경험한 그는 1993년 마지막 도전에 나선다는 정신으로 중관춘에 유학 컨설팅을 병행하는 영어 학원을 차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놀랍게도 이 선택은 정말 탁월한 신의 한 수였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얻은 ‘노하우’에 탁월한 영어 교육 실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수강생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늘어난 것이다.

이후 그에게는 30세도 채 되기 전에 겪은 온갖 실패와 좌절이 무색할 만큼 탄탄대로만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한국어 등까지 포함해 가르치는 종합 어학원을 넘어 종합교육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사업이 직업 및 온라인 교육, 유학 컨설팅, 도서출판 등의 영역으로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억 위안을 투자해 설립할 신둥팡대학의 출범도 앞두고 있다.

2006년과 2020년 말 나스닥과 홍콩 증시 상장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신둥팡과 실패 및 좌절의 아이콘 위민훙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간단하다.

무엇보다 실력 뛰어난 인재들을 강사진으로 끊임없이 확보하면서 잘 가르쳤다는 사실을 먼저 꼽아야 한다.

이는 초창기 영어 강사들 중에 위민훙의 단짝 친구이자 창업 멤버인 왕창(王强)과 쉬샤오핑(徐小平)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1000여 개 가까운 학원의 소재지 선정에도 뛰어난 탁월한 노하우 역시 꼽지 않으면 안 된다.

전국 거의 모든 대도시의 8학군에 신둥팡 학원이 존재하는 사실을 보면 정말 그렇다고 해야 한다.

여기에 지난 세기 말부터 거세게 불기 시작한 유학과 어학 붐 역시 거론해야 할 것 같다.

사회 공익적 차원에서 시작한 장학 사업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한마디로 신둥팡과 위민훙의 성공은 천시(天時. 시기), 지리(地利. 장소의 이점), 인화(人和)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결과인 것이다.

베이징 하이뎬구 중관춘에 소재한 신둥팡의 본사. 3세기를 이어갈 대형 교육 기업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제공=징지르바오.

당연히 신둥팡이 더 큰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도 많다.

알리바바와 텅쉰(騰訊) 등과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공룡들이 업계에 뛰어들면서 불러오고 있는 치열한 경쟁을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 같다.

그저 살아남는 것에서 몇 걸음 나아가 보다 빠르게 치고 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에 대해 대학 시절 신둥팡에서 유치원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친 바 있는 쑹치(宋琦) 씨는 “어학원 같은 교육 사업은 완전 블루 오션이라고 해도 좋다.

대기업들이 뛰어들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신둥팡의 라이벌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때문에 신둥팡은 이들과의 경쟁을 적극적으로 선도해야 한다. 그래야 추격을 뿌리치고 더 클 수 있다.”면서 신둥팡이 공격적 경영을 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으로 야기된 서방 세계와의 갈등이 가져올 수도 있는 유학 및 어학 학습 열기의 급냉 가능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든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유도, 시장이 지속 성장 가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외에 말실수로 인한 구설이 유난히 잦은 창업주 위민훙의 가벼운 입도 문제가 아닐까 싶다.

오너 리스크도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는 그가 2018년 11월 18일 한 강연에서 “여성의 타락이 국가의 타락을 부르고 있다.”라는 망언에 가까운 말을 토한 사실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중국의 교육 시장은 당분간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이로 볼 때 신둥팡이 3세기 동안 이어질 교육 기업이 될 가능성은 분명히 높다.

그러려면 현재의 어려움을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해야 한다.

이 경우 3세기에 걸쳐 이어질 신둥팡의 장수 기업의 꿈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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