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욕심에 돈 빌려준 투자은행들 수십조원대 손실 '울상'
잇따른 고위험 투자로 월가에서 유명...업계 퇴출 전력도
미 금융감독위원회, 이번주 회의서 '헤지펀드' 사태 주요 안건으로 논의

아케고스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펀드매니저 빌 황이 '마진콜' 사태로 월가의 공적이 됐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지난주 미국 월가에 역대급 혼란을 일으킨 아케고스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황성국)이 연일 화제다.

대규모 투자 실패로 유동성 압박에 직면한 빌 황이 돈을 빌려준 투자은행들의 유례 없는 블록딜(주식대량 매매)을 촉발하면서 월가에 수십조원대 손실을 입힌 것이다.

사건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시작됐다.

아케고스캐피털은 투자한 일부 종목의 주가가 하락해 일종의 '담보'였던 증거금이 부족해지자, 스와프 형식으로 거래관계를 맺은 투자은행에게 부족한 증거금을 추가 납부하는 일정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크레디트스위스·도이체방크 등은 아케고스 포지션 청산을 위해 뉴욕증시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대대적인 블록딜을 진행했다.

블록딜 대상은 뉴욕증시에 상장된 미국의 비아콤CBS와 디스커버리, 중국 의 바이두, 텐센트뮤직 등이었다. 규모만 해도 300억달러(약 33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에 관련 미디어·기술주들은 급락세를 맛 봤다.

비아콤CBS의 주가는 사상 최대폭인 27% 폭락했고, 디스커버리도 27%라는 역대급 급락세를 보였다. 중국의 주요 미디어·기술주인 온라인교육업체 GSX는 41.6%, 중국판 넷플릭스 아이치이(iQIYI)는 13.2% 급락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투자은행들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혼란은 계속되는 모습이다.

미 은행 JP모간체이스는 30일(현지시간) 아케고스와 거래한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크레디트스위스·노무라 등의 은행들이 입은 총 손실이 100억달러(약 11조원)까지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은행은 크레디트스위스다. JP모간은 크레디트가 약 30억에서 40억달러의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은행 노무라의 예상 손실액은 20억달러 수준이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 위기가 감지되자마자 재빨리 블록딜을 단행한 곳들의 여파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빌 황이 낳은 예기치 못한 악재가 월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는 거센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황씨는 역대 가장 큰 마진콜 중 하나의 중심에 섰고, 그의 거대한 포트폴리오는 지저분하고 고통스러운 청산 과정을 밟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진 크레디트스위스 등의 투자은행들은 아케고스캐피털과 총수익스와프(TRS)와 차액거래(CFD) 계약을 맺고 자금을 빌려줬다. [사진=EPA/연합뉴스]

증시를 뒤흔든 빌 황에 대한 관심도 과열되고 있다. 빌 황은 이미 국내외 투자업계에서 '돈벌이 천재'이자 '고위험 투자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우선 빌 황은 미국 헤지펀드계의 전설로 알려진 타이거매니지먼트를 이끈 줄리안 로버트슨의 제자로, 월가에서 '새끼 호랑이'(Tiger Cubs)로 불렸다.

2001년에는 스승 로버트슨의 지원을 받아 '타이거아시아 매니지먼트 LLC'를 설립, 이후 최고 50억달러 이상을 굴리는 아시아 최대의 헤지펀드 수장이 됐다.

2008년에는 독일 폭스바겐 주가 급등으로 큰 손실을 입었지만 이후 '패밀리 오피스' 형태의 헤지펀드를 만들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패밀리오피스는 개인의 재산을 사적으로 운용하는 헤지펀드 방식으로, 공시의무가 없어 금융당국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일종의 '투자 사각지대'다.

이후 2012년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중국 은행 주식을 거래한 혐의가 발각되면서 빌 황은 홍콩과 미국에서 동시에 퇴짜를 맞았다. 이에 관련 펀드를 청산했고, 벌금으로만 4400만달러(약 497억원)를 지불했다.

이후 2016년에는 아마존 주식을 사고 알리바바 주식을 파는 '롱숏전략'을 펼치는 등 대범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빌 황은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그는 평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투자한다"라고 주장하며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투자 수익금 일부를 기독교 교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한편 미 금융감독당국도 이번에 빚어진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9일 아케고스와 거래한 은행들을 소집해 사태 파악에 나섰고, 월스트리트의 금융산업규제국(FINRA)과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도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미 금융감독안전위원회(FSOC)는 31일(현지시간) 화상회의를 열어 주요 논의 안건 중 하나로 헤지펀드를 다룰 예정이다.

FSOC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의장으로 있는 곳인만큼 범정부적인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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