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보틀 세럼, 일주일째 '소비자 기만' 비판에 몸살...소비자들 "SNS·제품박스 정보 부족해"
SNS 통해 플라스틱 포함돼 있음을 알리고 제품박스에도 분리수거 가이드라인까지
"회사가 플라스틱 배출 줄이려고 한 만큼 일방적인 매도는 지나쳐"

최근 논란이 된 이니스프리의 '페이퍼 보틀'을 해부한 모습. 종이로 된 포장재 안에 플라스틱 용기가 숨어 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아모레퍼시픽 계열사 이니스프리가 일주일째 '그린워싱'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린워싱은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행위를 비판할 때 쓰는 용어다.

논란이 된 제품은 지난해 6월에 단기 출시된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 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용기를 만드는 데 플라스틱 사용량을 51.8%까지 줄였다는 게 골자였다.

수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논란이 일은 것은 지난 6일 한 페이스북 이용자의 제보 때문이다. 제보자는 친환경 종이 소재로 만든 줄 알았던 제품 용기 속에 플라스틱이 나온 것이 '소비자 기만'이라 주장하며 화장품 업계를 발칵 뒤집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비판이 다소 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니스프리 측이 포장재 내용을 의도적으로 숨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공격은 무의미하다는 지적이다.

소비자와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그린워싱으로 보기 다소 어려운 부분이 크다며, 서툰 소통과 화장품 업계를 향한 편견이 이번 사태를 더 심화시켰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기업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게 가장 문제였다고 꼬집었다.

직장인 구하정(27)씨는 "(소비자들에게) 친환경은 곧 '노 플라스틱(no plastic)'이라는 느낌이 강하다"라며 "때문에 '페이퍼 보틀' 등 직관적인 명칭만 가지고는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최근 '환경 보호'가 예민한 주제로 거론되고 있지만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각 차가 여전히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니스프리는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미디어(SNS)와 각종 플랫폼·채널을 통해 해당 제품에 플라스틱이 포함됐다는 점을 알렸다.

제품 박스에도 플라스틱과 종이 포장재를 분리배출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명시하기도 했다.

논란이 된 이니스프리의 페이퍼 보틀 제품 박스에는 플라스틱과 종이를 분리배출하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사진=페이스북 갈무리]

다만 소비자들은 국내 시장에서 생소한 '페이퍼 보틀'이라는 개념을 더 효과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보 전달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해당 제품을 구매해봤다는 김지은(28)씨는 "진짜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 이상 직접 SNS나 다른 플랫폼에 이니스프리를 검색하지는 않는다"라며 "해외에서는 종이로 겉을 감싸 만든 용기를 페이퍼 보틀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 해당 제품을 '종이'로 분류해 재활용 수거함에 배출했다. 구매 당시 매장 직원 의 구체적인 안내도 받지 못했다.

때문에 친환경 브랜드를 앞세워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던 이니스프리에 대한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을 주로 사용한다는 주부 박소담(29)씨는 "최근 업계 내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화되고 있는 만큼, 평소 환경 보호 제품과 캠페인을 이어온 일부 뷰티 기업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니스프리가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데 앞장 선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회사를 '그린워싱'이라 매도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실제 이니스프리는 페이퍼 보틀 판매를 통해 재활용 문제 해결에 나섰다. 

종이 용기가 없었던 기존의 '그린티 씨드 세럼 80ml'는 초록색 페트(PET) 용기만을 사용했다. 투명하지도 않고 위에 제품명을 표기하는 프린트물도 덧대어 있어 사실상 재활용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페이퍼 보틀은 비교적 재활용이 잘 되는 흰색 폴리에틸렌(PE)을 사용했다. 종이를 벗겨낸 플라스틱 용기에는 아무 문구도 쓰여있지 않아 재활용 가치가 높다.

녹색연합은 올해 화장품 기업을 대상으로 생산자 책임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화장품 어택'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LG광화문빌딩 앞에서 진행된 시민활동 현장의 모습. [사진=녹색연합 제공]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그동안 화장품 업계가 지적받아온 환경 불감증이 사태를 더 키웠다며 이를 반면교사 삼아 관련 기업들이 인식 개선에 돌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이니스프리의 페이퍼 보틀은 본받을 만한 '좋은 프로젝트'"라며 "업계 내에서도 용기를 별도 회수해 재활용하고, 재사용 가능한 리필 체계 등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야만 소비자도 인정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이번 페이퍼 보틀 논란 뒤에는 이러한 소비자 불신이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화장품 용기 중 90% 이상은 재활용이 어렵다.

보기에 좋고 튼튼한 용기를 만들기 위해 용기를 과도하게 두껍게 만들고, 복합재질 플라스틱재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지난 1월부터 포장재 재질과 구조를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해 기업들이 소비재 용기를 점검하고 있지만 일부 화장품 기업은 '역 회수해 재활용하겠다'라는 협약에 참여해 등급 심사를 받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녹색연합은 알맹상점과 함께 화장품 용기를 모아 업체에 반납하는 '화장품 어택' 활동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개적인 반응은 나오고 있지 않다.

소비자들도 기업 주도형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김지은씨는 "이니스프리의 친환경 행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라며 "기업들이 진지하게 환경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소비자 마음을 움직여야만 이러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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