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56조 인프라 투자·세액공제 40%...중국도 170조 투입해 '반도체 독립' 가시화
우리 정부 대응책은 미적지근...전문가들 "모두 자체 생산하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전세계에서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화되면서 미국과 중국이 양보 없는 '반도체 독립' 전쟁에 돌입했다.

양국은 반도체 부족 사태를 완화하고 반도체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 확대·인프라 증설 등 각자의 방법으로 적극적인 대책을 꾀하고 있다.

반면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은 한 발 늦고 있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는 'K-반도체벨트'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반도체 업계에서 요구하는 투자 확대와 세액공제에 대한 답변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을 '안보 문제'로 규정하며 각자의 해법을 공격적으로 내놓고 있다.

먼저 미 백악관은 12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대만 TSMC, HP, 인텔, 마이크론,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반도체 기업들을 초청해 '반도체 화상회의'를 열었다.

이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중국의 기술 굴기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며 기업들에게 공격적인 투자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지난달부터 바이든 대통령이 공들이고 있는 인프라 경기부양책의 연장선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올 하반기에 2조달러(2245조원) 규모의 지원책 중 500억달러(약 56조원)를 반도체 산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 내에 19개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고 현재 12% 수준인 미국의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4%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앞서 미 의회는 반도체 투자액의 최대 40%를 세액공제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자국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 자발적인 생산·기술·인력 확대 효과를 낳겠다는 취지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들며 '국가 안보'를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은 이미 6년전부터 반도체 육성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중국 당국은 지난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면서 반도체에만 1조위안(17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10년 안에 독일과 일본 등 제조 산업 강국에 맞설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주 목표다. 해외 기업에 대한 의존도도 줄이고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러한 노력은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반도체 제조장비 매출은 187억2000만달러(약 21조원)으로 전년 대비 3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EMI에 따르면 중국이 연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매출액 기준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매출 집계 내용을 살펴보면 해외기업의 공장을 자국에 짓게 하는 중국의 오랜 전략이 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자료에는 중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SMIC 뿐만 아니라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는 해외기업들의 실적도 포함됐다.

현재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는 대표적인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다.

한편 미국과 중국 당국의 지원에 현지 기업들도 무세운 기세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은 일본의 낸드플래시 업체 키옥시아(전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 엔비디아도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예고한 인텔에 맞서 팹리스계 1위 ARM과의 협업을 꾀하고 있다.

중국의 샤오미, 오포, 비포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이미 일찌감치 반도체 개발에 돌입했다. 이들과 같은 첨단 산업분야 기업들은 중국 정부로부터 매해 7%씩 확대된 연구개발(R&D) 투자 지원을 받고 있다. 

중국은 올해 개최한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 전체회의에서 '14·5계획 및 2035년까지의 장기 목표'를 공개하며 반도체뿐만 아니라 희토류와 같은 신소재, 스마트 제조 및 로봇 기술, 신에너지 등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사진=베이징 신화/연합뉴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 미적지근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성윤모 장관 주재로 반도체협회 회장단 간담회를 개최해 반도체 공급망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민간투자 확대와 인력 양성 등이 주요 안건이었다.

당시 회장단은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처럼 우리나라에도 산업 발전을 위한 공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장단은 ▲연구개발(R&D) 및 제조시설 투자 비용의 50%까지 세액공제 확대 ▲반도체 제조시설 신·증설시 각종 인허가 및 전력·용수·폐수처리시설 인프라 지원 ▲원천기술개발형 인력양성 사업의 조속한 추진 등의 내용을 담은 산업계 건의문을 전달했다.

하지만 반도체 공급난이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올 하반기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업계 우려가 불거지는 가운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도 가만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반도체 시설 투자에 30조 안팎을 쏟아붓고 있고,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연구개발에 133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지난 1차 회의에서 나온 신속통관 등 단기 지원 방안이 일부 성과를 냈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정부 차원의 종합정책(K-반도체 벨트전략)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민간의 노력에 비해 국가 차원의 장기전략이나 투자가 미국과 중국에 비해 허술해, 자칫하면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 중국, 유럽 모두 반도체 내재화에 총력을 쏟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라며 "이번에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 자체의 위험성을 경험한 만큼 시스템반도체 등 우리 산업에 필요한 반도체를 모두 자체 생산한다는 각오로 정부 차원에서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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