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지난 5월 14일은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다.

전국의 낮 기온이 30도를 넘었다.

강원도 영월은 5월 중순 기준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고 기상청은 전했다.

그날 나는 영월에 있었다. 줄댕강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줄댕강나무는 영월과 단양과 제천의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는 한반도의 고유식물이다.

북한에서 석회암 지대로 유명한 평안남도 맹산에도 자란다.

나뭇가지가 댕강하고 잘 부러진다고 댕강나무라 하고 땅속 뿌리줄기가 줄줄 달려서 번식하기 때문에 접두어 ‘줄’을 붙였다.

댕강나무와 줄댕강나무는 같은 식물이다.

분류학적 정보가 부족했던 과거에는 이들을 구분해서 불렀던 적이 있었다.

수피에 6개의 골이 있으면 줄댕강나무, 그 골이 뚜렷하지 않고 잎이 조금 더 크고 수술대에 털이 있으면 댕강나무로 구분했던 것.

이는 하지만 생태적 표현형이거나 변이일 뿐 과거에 구분했던 두 종을 동일한 종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식물학계의 평가다.

줄댕강나무와 댕강나무는 같은 식물이고 그 이름은 식물명명규약을 따르는 학명에 근거해서 줄댕강나무로 통일해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줄댕강나무는 영월과 단양과 제천의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는 한반도의 고유식물이다. 나뭇가지가 댕강하고 잘 부러진다고 댕강나무라 하고 땅속 뿌리줄기가 줄줄 달려서 번식하기 때문에 접두어 ‘줄’을 붙여서 그렇게 부른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전 세계 어디에도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식물 중에는 국내의 자생지마저 사라져 멸종의 위기에 놓인 식물이 제법 된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는 업무를 나는 수목원 연구부서에서 중점 과제로 진행하고 있다.

멸종의 위기에 처한 이들이 누구인지를 먼저 밝힌 후 서식지 환경을 파악하고 위협 요인을 알아내고 그들의 상황을 진단하는 일이다.

개엽과 개화와 수분과 수정과 결실의 과정, 그 일련의 과정 동안 서식지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기록 등 가능한 한 모든 일들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분석해서 그들에게 닥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과거를 짐작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다양한 식물들과 어울려 사는지 그 식물상을 파악하는 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빛은 얼마나 되는지, 어느 정도의 습도와 온도를 선호하는지, 그들이 사는 땅의 흙은 어떤 입자로 이루어져 있는지, 환경에 따라 잎의 엽록소 함량은 얼마나 어떻게 차이를 보이는지, 개체 저마다의 DNA 염기서열은 어떻게 다른지, 내부 또는 외부의 위협 요인은 무엇인지를 ……

시각을 다툴 만큼 절박한 상황에 놓인 대표 식물이 줄댕강나무다.

그래서 나는 그 더운 날에 영월의 어느 대형 시멘트 공장 근처에서 석회암을 딛고 줄댕강나무의 개화를 기록하고 있었다.

만개한 꽃은 옅은 분홍을 머금은 하얀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둥글게 모여 피어 전체적으로 두상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작은 꽃 한 송이는 앙증맞은 트럼펫을 닮았다.

꽃은 짙은 향기를 뿜었다.

트럼펫의 저 깊은 통부로부터 농축하여 밀어 올린 고혹적인 향기. 예쁜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향기라니.

호박벌과 뒤엉벌이 연신 줄댕강나무의 이 꽃과 저 꽃을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남한의 공원과 정원에 즐겨 심는 꽃댕강나무를 생각했다.

중국댕강나무를 교배하여 만든 원예품종 꽃댕강나무. 개화가 길고 자람이 까다롭지 않아 국내외 없이 조경수로 널리 쓴다.

19세기 후반에 이탈리아에서 개발되어 국내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줄댕강나무를 아는 내게 꽃댕강나무는 마치 조화처럼 느껴진다. 나를 미혹하는 향기가 없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우리의 줄댕강나무를 두고 ‘향기댕강나무(Fragrant Abelia)’라고 부른다.

우리가 공원과 정원에 꽃댕강나무 심는 일에 열중일 때 서양에서는 한반도의 줄댕강나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행처럼 대륙 전역에 번져나간 꽃댕강나무가 이미 그들에게는 진부해질 무렵 우리 줄댕강나무를 접한 것이다.

꽃도 곱고 향기도 좋은 데다가 그 희귀성 덕분에 서양의 일부 정원 애호가들 사이에서 고급 정원 소재로 대접받고 있다.

옅은 분홍을 머금은 하얀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둥글게 모여 피어 줄댕강나무 꽃은 전체적으로 두상을 이룬다. 작은 꽃 한 송이는 앙증맞은 트럼펫을 닮았다. 통부로부터 농축하여 밀어 올린 고혹적인 향기 덕분에 꽃은 짙은 향기를 뿜는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서양에서는 우리의 줄댕강나무를 두고 ‘향기댕강나무(Fragrant Abelia)’라고 부른다. 꽃도 곱고 향기도 좋은 데다가 그 희귀성 덕분에 서양의 일부 정원 애호가들 사이에서 특별한 나무로 대접받고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국내에서는 줄댕강나무의 식물학적 가치를 알아보기도 전에 그들이 뿌리내린 땅에 먼저 눈독을 들였다.

시멘트의 주된 원료인 양질의 석회암이 그 땅에 묻혀있으니까.

석회암 지대의 채굴 산업은 줄댕강나무의 터전을 꾸준히 소멸시켰다. 

줄댕강나무는 생육환경이 결코 까다롭지 않은 편이다.

그들은 석회암의 토양과 쨍쨍한 볕만 확보가 되면 왕성하게 자란다.

해발고도 200m 내외의 동산, 여느 식물들은 쉽게 뿌리 내릴 수 없는 건조한 석회암 지대, 그리하여 녹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척박한 땅의 뙤약볕 아래.

그런 곳에서 줄댕강나무는 뿌리를 줄줄 뻗어서 어깨동무하고 우르르 들이닥치듯이 무리를 이루어 자란다.

그래서 대규모 군락을 만드는 편이다.

그들이 이룩한 군락은 통째로, 순식간에, 너무 쉽게 인간에 의해 사라질 수 있다.

석회 채광산업은 그들의 터전인 석회암 지대의 언덕과 동산을 꾸준히 깎고 있으니까. 

가시가 매섭게 돋은 찔레꽃과 산딸기가 뒤섞인 5월의 덤불, 노박덩굴과 다래덩굴과 부채마가 뒤엉킨 억센 덩굴식물의 줄기 더미를 헤치고 줄댕강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이 녹록지만은 않다.

심지어 이른 무더위가 숲을 헤치고 산을 오르내리는 현장 조사를 더욱 고되게 만들었다.

그놈의 마스크도 한 몫 보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댕강나무의 핑크빛 그 말간 꽃을 단 한번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고운 꽃내음을 단 한숨 들이켤 수 있다면, 그렇게 그들의 생존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나는 하나도 힘들지가 않다. 그거면 다 괜찮다. 

영월군 석회암 산지를 헤치며 줄댕강나무 군락지를 몇 군데 만난 후에 단양군 매포읍에 도착했다. 몇 해 전에 줄댕강나무 군락지가 발견된 곳이다.

장소는 시멘트 공장의 입구로 확인되었는데 군락은 온데간데없고 길 확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시멘트 공장을 오가는 대형트럭 2대가 거뜬히 교행할 수 있도록 넓힌 너른 길이 공장이 위치한 산 중턱까지 이어져 있었다.

줄댕강나무는 그 길 가장자리에서 몇 개체가 근근이 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대형 화물차가 오가는 그 길은 원래 줄댕강나무가 줄줄이 군락을 이루던 땅이었을 것이다.

줄댕강나무의 땅만인 것도 아니었다.

줄댕강나무와 더불어 석회암 지대에서 드물게 사는 꽃꿩의다리와 꼭지연잎꿩의다리와 산조팝나무와 나도국수나무가 사이좋게 모여 동산을 이루던 곳이었다.

특히 곧게 뻗은 측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한데, 천연기념물 제62호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측백나무는 시멘트 가루만 왕창 뒤집어쓰고 초라하게 서 있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줄댕강나무와 함께 자라는 석회암 지대의 식물인 꽃꿩의다리. 오월 중순께 하얀 꽃이 핀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줄댕강나무와 함께 자라는 석회암 지대의 관목 산조팝나무는 오월 중순께 하얀 꽃이 핀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단양군 영천리 측백나무림. 천연기념물 제62호라는 명성이 무색하게도 숲 초입의 측백나무는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쓴 채 초라하게 서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국제생물다양성협약에 따라 국가의 생물에 대한 권리인 ‘생물주권’이 인정되고 있다.

일본 나고야에서 채택되어 2014년 발효된 ‘나고야의정서’는 각국의 생물과 그 유전자원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원산지에 우선한다는 것을 중점으로 다룬다.

바야흐로 생물 소재의 국산화가 국력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생물 종을 무기로 총성이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줄댕강나무를 비롯하여 우리 땅에만 자라는 고유식물은 생물이 국력이 되는 시대에 우리가 부릴 수 있는 필살기와도 같다.

우리 국가의 핵심 국력인 셈이다.

조경수나 정원수로 적합한 우리 식물들, 신약과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생리 활성 소재로서의 가능성이 우리 고유식물의 몸 곳곳에 녹아있다.

과도한 개발을 줄여 우리나라 고유 희귀식물의 서식지를 지키는 일, 불가피하게도 개발이 진행될 경우 서식지 바깥에 안전한 대체서식지를 조성하여 그들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강구하는 일, 그들을 대량으로 증식하기 위한 기초 연구 확대는 우리나라가 생물자원의 강대국이 되는 시대를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다. 

주택 보급을 늘리기 위해 아파트를 더 짓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내게 반갑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건설업의 양식과도 같은 시멘트는 석회암 땅에서 나온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한반도의 석회암 땅에만 자라는 줄댕강나무가 맹목적인 채광 때문에 다 뽑히는 건 아닐지 두려움이 앞선다.

줄댕강나무야말로 우리의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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