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소현리 팽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경주 소현리 팽나무는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 손순(孫順)의 유허비를 지켜온 노거수이며 수령이 같아 역시 보호수로 지정된 회화나무와 함께 서 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현곡면 소현리는 대부분이 평지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동쪽에는 안태봉(安胎峰)이 솟아있으며, 서쪽에는 비옥토인 관암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소현1리는 크게 한 마을을 이루고 있지만, 밖말, 중각단, 골안, 당수골 등 4개의 마을로 나뉜다.

소현(小見) 마을의 이름은 본래 ‘순우정’이었다. 신라 때 손씨(孫氏)의 시조 손순(孫順)의 이름을 딴 ‘순우정(順友亭)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후손들이 선조의 이름자를 마을 이름에 붙이는 것을 싫어해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지일(智日)을 병합하여 ‘소현’이라 고쳤다.

도성인 경주에서 보면 이 마을과 질메산이 작게 보여서 ‘소현’이라 했다고 한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이 마을에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때 효자로 칭송이 높았던 문효공(文孝公) 손순의 유허비(遺墟碑) 등의 유적들이 남아있다.

이 유허지에는 손순이 흥덕왕으로 부터 하사받은 집이 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에는 후손들이 세운 손순유허비(孫順遺墟碑, 경상북도기념물 제115호) 이외에도 손순의 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문효사(文孝祠,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15호), 그리고 소현리와 나원리에 걸쳐 있는 안태봉 위에 신라 역대왕의 태(胎)를 묻은 소현리안태총(小見里安胎塚)이 있다.

조선 말기의 학자 허전(許傳)이 쓴 유허비는 1970년께 파괴되어 이후에 지금의 비석을 새로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팽나무는 다산과 행복, 안녕을 기원하는 행운목(幸運木)이며, 회화나무는 일찍이 고결한 선비의 집안에 심어졌던 길상목(吉祥木)으로 영험한 기운을 가진 신목(神木)이다.

소현리에는 이 팽나무와 회화나무 외에도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가 마을 중앙 동남쪽에 서 있다.

이 느티나무가 마을 당산나무인데, 매년 정월 대보름날 새벽 1시에 동제를 지내왔다.

제관은 마을 사람 가운데 부정을 타지 않은 남자 4~5명을 선정한다.

손순의 효행은 '삼국유사'의 ‘손순매아(孫順埋兒)’를 비롯하여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삼강행실도', '명심보감' 등 정사지지(正史地誌)와 교화윤리서, 아동교과서 등에 수록되어 있다.

‘손순매아’에 실린 내용은 이렇다.

손순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더불어 남의 집에 품을 팔아 얻은 곡식으로 늙은 어머니를 어렵사리 봉양하였다.

그런데 어린 자식이 늘 할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너무나 민망하였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의논하기를 “자식은 또 얻을 수 있으나 어머님은 한 번 가시면 모실 수 없다”며, 더는 어머니를 굶지 않게 하려고 어린 자식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아이를 업고 취산(醉山) 북쪽 교외로 가서 땅을 파는데 그곳에서 기이한 돌종(石鐘)이 나왔다.

이에 어린 자식을 묻지 않고 돌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종을 대들보에 매달고 두드리니 맑은 종소리가 대궐까지 퍼져나갔다.

이 종소리를 들은 흥덕왕이 도대체 이 무슨 사연인지 물었다.

이에 손순이 울면서 어머니와 자식과 돌종의 사연을 아뢰었다.

그러자 흥덕왕은 “돌종의 출토는 지극한 효심에 감응한 천지조화”라며 효행에 대한 포상으로 집 한 채와 해마다 벼 50석을 주었다.

나중에 손순은 이 집을 희사하여 홍효사(弘孝寺)를 세우고 석종을 안치하였다.

그러나 신라 51대 진성여왕 시기 후백제가 쳐들어왔을 때 돌종은 도난당하고 유허지만 남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여러 효 이야기 중에 원조 격에 해당한다.

경주 소현리 팽나무는 손순 유허를 지켜온 노거수로서 같은 나이의 회화나무와 오랜 벗이 되어 서 있다.

손순의 효심을 깊이 간직한 수령 350년의 팽나무와 회화나무 모두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경주 소현리 팽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1-2-6
·보호수 지정 일자 1996. 4. 10
·나무 종류 팽나무
·나이 350년
·나무 높이 18m
·둘레 2.8m
·소재지 경주시 현곡면 소현리 623
·위도 35.892353, 경도 129.17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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