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왕신리 운곡서원 은행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운곡서원 은행나무는 풍경 사진작가들의 모델로 유명하며, 안동권씨 충신들의 기개가 살아있는 노거수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경주시 왕신리 운곡서원 은행나무는 운곡서원(雲谷書院) 내 경북문화재자료 제345호인 유연정(悠然亭) 옆에 서 있는 정자목(亭子木)이다.

수령 330년, 나무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3m로 1982년 10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운곡서원은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인 고려 공신 태사(太師) 권행(權幸)과 조선시대 참판 권산해(權山海), 군수 권덕린((權德麟)을 배향하기 위해 1784년(정조 8년)에 건립된 서원이다.

1868년(고종 5년)에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76년 재건되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권행은 원래 신라의 김씨로 고창군수였는데,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이에 고려 태조는 “권행은 기미를 잘 알아 권도를 썼으니 권(權)에 능하다”라고 하면서 그에게 권씨 성(性)과 함께 태사 벼슬을 내렸다. 

유연정으로 가는 길목에 ‘갈산처사안동권공기적비(葛山處士安東權公紀績碑)’가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의 주인공인 갈산(葛山) 권종락(權宗洛:1745~ 1819)은 권행의 30세손이다.

권종락의 공적비에는 “1784년 추원사 창건을 여러 종인들과 정성을 다하여 완수한 것, 1789년 죽림선조 신원(伸寃)을 위하여 격쟁(擊錚)하며 원정초(原情草)를 올려 복작교지를 받아온 숭조정신, 금성단 압각수를 꺾어 와서 심은 유래 등을 기념하기 위하여 비를 세운다”고 되어 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이게 무슨 말인가?

이 은행나무가 심어진 사연은 이렇다.

권종락의 12대조인 죽림(竹林) 권산해(權山海: 1403~1456)는 단종이 귀양을 가자 벼슬에서 물러났다.

세조가 그를 불러 국사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성삼문(成三問:1418~1456) 등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기에 이른다.

이에 그는 투신자살하고 만다. 

이후 숙종 때 대부분의 충신들이 복권됐지만 권산해는 누락되었다.

권종락이 1789년(정조 13)에 임금의 수레 아래 엎드려 눈물로 호소한 후에야 권산해는 복권되었으며, 순흥 금성단에 배향되었다.

그때 권종락이 경주로 오는 길에 영주의 순흥 금성단에 들러 압각수(鴨脚樹) 큰 가지 하나를 가지고 와 심었는데, 이 은행나무가 바로 지금의 운곡서원 은행나무라고 한다.

압각수는 은행나무의 잎이 오리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렇게 권종락은 추원사 창건 완수, 조상의 명예 회복, 은행나무 식수의 세 가지 일을 했다. 

이 사연을 통해서 보면 수령 370년의 운곡서원 은행나무는 ‘영주의 신목(神木)’인 수령 1200년의 순흥 압각수가 부모다. 순흥 객사 뜰의 압각수가 유명한 것은 순흥과 흥망성쇠를 함께 한 이력 때문이다.

1452년(단종 1)에 단종손위(端宗遜位)를 미리 알고 갑자기 말라 죽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순흥이 죽으면 이 나무가 죽고, 이 압각수가 살아나면 순흥도 살아나네”라는 순흥 사람들의 노래가 퍼졌다고 한다.

순흥에서 유배 중이던 금성대군이 1457년 조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돼 반역죄로 처형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때 순흥도호부는 혁파(革罷)되어 그 영역은 인근 영천, 풍기, 봉화 지역으로 분속되었으며, 순흥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압각수는 불에 탔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240여 년이 지난 숙종 때 죽은 줄 알았던 압각수에 생기가 돌더니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후 순흥도호부가 복설되고 단종과 금성대군, 사육신도 복권되었으며, 금성단을 만들어 금성대군과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희생된 선비들을 다시 모셨다고 한다.

이때 복권된 권산해도 금성단에 배향되었는데, 후손 권종락이 금성단 가까이에 있는 압각수의 나뭇가지 하나를 경주 운곡서원까지 가져와 심은 것이다. 

경주시 왕신리 운곡서원 은행나무는 해마다 10월과 11월 초에 수많은 사람을 불러들인다.

풍성한 은행잎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전국의 사진 애호가와 여행자들이 앞다투어 운곡서원 은행나무로 몰려든다.

유연정(悠然亭)은 호남의 정자와 달리 방을 하나 더 갖추어 옛날에 객들이 묵고 가기 좋게 만들어졌다.

정자 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이 쓴 시, '음주(飮酒)' 제5수(第五首)의 다음 구절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아득히 남산을 바라본다 /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경주 왕신리 운곡서원 은행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1-15-16
·보호수 지정 일자 1982. 10. 29
·나무 종류 은행나무
·나이 330년
·나무 높이 30m
·둘레 5.3m
·소재지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310
·위도 35.940820, 경도 129.30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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