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이번주 반도체·배터리 등 주요 제품 공급망 재편안 발표...'중국 배제' 범위에 촉각
중국 수출 의존도 높은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 관심 ... 중국도 우리기업에 "추가 투자" 압박

지난 2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난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 이번 정상회담에서 국내 4대 그룹은 미국에 44조원 투자를 약속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과의 결속을 강조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反) 중국 공급망 조사가 이번 주 내로 결론이 난다.

이런 소식에 대규모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국내 4대 그룹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와 자동차 등 핵심 공급망에서 중국을 제외하는 재편안을 내놓는다면,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이 국내 기업에게 타격을 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3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연구원 등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4개 핵심 품목을 대상으로 진행한 주요 공급망 조사가 다음달 4일(현지시간) 마무리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행정명령 서명을 통해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핵심 공급망에 대해 검토를 지시한 지 약 100일 만이다.

미 정부가 표면적으로 밝힌 조사 이유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맞물려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주요 품목의 제조 기반을 다지자는 것이었지만, 기저에는 중국을 제외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AP통신은 "중국은 4대 품목을 무기화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중국이 해외 의존도를 무기 삼아 압박을 가하기 전에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업계에서는 미 정부가 동맹국과의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중국 견제에 공감하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재편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뒤처지게 할 주요 산업으로 반도체를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2020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4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의 제재로 지난해 중국 반도체 기업의 자국 시장 점유율은 2~18%에 그쳤다.

때문에 국내 기업은 미국의 발표와 동시에 주요 수출국 중국의 눈치도 봐야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게 된다.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한 한국에게 자칫 '교역'을 무기 삼아 역공격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대기업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홍콩 포함)은 전체 수출의 60%에 달한다.

올해 상황도 비슷하다. 특히 바이든이 강조하고 있는 첨단 산업에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는 여전히 큰 편에 속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4월 우리나라의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액은 총 170억6000만달러다.

이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억4000만달러로 가장 높았으며 미국은 21억3000만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이준 산업연구원 소재산업실장은 "대미 투자를 비롯해 지금까지 중국에 크게 반하는 조치가 없었지만 미국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강력한 재편 계획을 내놓을 경우 중국의 이해관계가 명확하기 걸리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 곤란해질 소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국내 4대 기업의 실무진들이 경제 사절단으로 방미 일정을 소화했다. 사진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미 상무부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행사에 참석한 최태원 SK회장(왼쪽부터),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여기에 중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 투자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중국에 대규모 투자로 화답할 지 주목되고 있다.

다만 업계는 투자가 '파이(비중) 나누기'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또 다른 대규모 해외 투자가 나올 가능성이 적다고 보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44조 수준의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삼성전자는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구축에 총 170억달러(약 19조원)를, 현대차는 미국 내 전기차 생산 및 충전 인프라 확충에 74억달러(약 8조2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10억달러(약 1조1110억원)을 투입해 실리콘밸리에 신선장 분야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 LG에너지솔루션은 미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2025년까지 총 100억달러(11조114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여기에 기업 노조 가운데서 회사의 해외 투자가 국내 투자 및 일자리 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는 반발이 나오는 가운데 새로운 대규모 계획이 추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례로 현대차 노조는 지난 26일 본격적인 임금·단체협약(임단협)에 돌입하며 "무분별한 해외 투자는 국내 제조산업 붕괴와 노동자의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회사의 대미 투자를 비판했다.

국제통상 분야 한 관계자는 "우리 기업이 미국과의 협력을 공고히 할 수록 중국에게 줄 파이는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사태 때 중국이 이런저런 불이익을 줬던 것처럼 이번 협력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라며 "국내 기업들은 미국이 내놓을 공급망 조사 결과에 따라 미리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를 중심으로 이미 여러 차례 미중 갈등의 중심에 선 사례가 있다. 사진은 지난 2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있는 주한미군 사드 기지로 트레일러에 실린 장비가 반입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 조사 발표에 앞서 계속 한국과의 공고한 동맹 관계를 거듭 강조하는 모양새다.

바이든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을 담은 1분짜리 영상과을 게재하며 "지난주 미국과 한국은 철통(ironclad) 같은 동맹을 다시 약속했다"라고 적었다.

해당 영상에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문 대통령이 백악관 내 로즈가든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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