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덕천리 느티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김천 덕천리 느티나무는 농촌 마을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큰 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김천 봉산면 덕천리는 왕복 6차로의 대로가 지나가면서 마을과 농지가 분리되었다.

그로 인해 마을에서 보면 느티나무는 길 건너 농지에 서 있다.

덕천리를 가로지르는 왕복 6차선 대로는 영남대로다.

조선시대에 서울과 부산을 잇는 가장 큰 길을 일컬었던 예전의 ‘영남대로’와는 다른 현대식 도로다. 

조선시대의 영남대로는 부산의 옛 이름인 동래(東萊)로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동래로’라고 불리기도 했다.

당시 영남대로는 한양의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시작하여 숭례문과 이태원을 거쳐 한강을 건넌 다음 용인, 양지, 충주, 연풍을 지난 뒤, 문경새재를 넘어 상주, 대구, 밀양을 거쳐 동래에 이르는 먼 길이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김천시의 영남대로는 김천의 남면에서 김천 덕천리 느티나무가 서 있는 봉산면으로 이어지고 영남의 관문 격인 큰 도로다.

북쪽으로는 대전광역시, 충북의 영동군과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대구광역시, 구미시로 연결되는 도로다.

조선시대의 영남대로와는 전혀 다른 길이고 김천시의 가장 중요한 도로다.

김천 덕천리 느티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동쪽으로 3km 근방에 위치한 다수동 도로 중앙에는 ‘영남제일문’이라는 현재의 영남대로 상징물이 세워져 있다.

보호수 11-26-7-4-1호인 김천 덕천리 느티나무는 영남대로가 관통하는 덕천리 한복판, 마을과 논의 경계 부분에 서 있다.

도로가 잘라낸 남쪽으로는 논이 넓게 펼쳐져 있고 살림집들은 도로 건너편에 빼꼼히 지붕을 내민 우체국 뒤편 북쪽으로 이어져 있다.

오래전에는 남전(藍田)마을과 도산(道山)마을로 나뉘었지만, 마을이 확장되면서 지금은 경계가 없어졌다.

남전과 도산은 1600년 무렵에 나주임씨 임재한(林載漢)이라는 입향조가 일으킨 마을이라고 한다.

남전은 앞들의 너른 밭에서 채소가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고, 도산은 마을에서 동제를 올리던 낮은 산의 이름이 도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천 덕천리 느티나무가 서 있는 마을 앞 넓은 들판은 땅이 비옥하여 어느 곳을 파도 맑은 물이 솟는다고 해서 천포(泉布)라고도 불렸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보호수 바로 곁에 서 있는 느티나무도 보호수 느티나무 못지않게 큰 나무이며, 연륜 또한 비슷해 보인다.

나무가 서 있는 땅은 마을에 사는 개인의 사유지이지만 나무는 잘 관리되고 있다. 나무 둘레에 돌로 낮은 울타리를 쌓았는데, 보호수 느티나무와 옆의 느티나무를 한꺼번에 모두 둘러싸고 있다. 

350년 넘게 살아온 김천 덕천리 느티나무는 여느 느티나무와 달리 나뭇가지가 하늘을 향해 20m까지 솟아올랐다.

가슴높이 둘레가 4m쯤 되는데, 나뭇가지를 사방으로 넓게 펼치며 자라는 일반적인 느티나무의 생김새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큰 도로가 생기면서 그늘이 만들어졌고, 그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위로 높이 자란 것으로 보인다.

김천 덕천리 느티나무는 옛 농촌 마을의 자취를 간직하고 높이 솟아올라 오랫동안 지켜온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김천 덕천리 느티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1-26-7-4-1
·보호수 지정 일자 1994. 10. 21.
·나무 종류 느티나무
·나이 350년
·나무 높이 20m
·둘레 4.3m
·소재지 김천시 봉산면 덕천리 635
·위도 36.133473, 경도 128.038683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